숀 머피

출생 : 1982년 8월 10일
소속 : 잉글랜드
별명 : 마술사(The Magician)
데뷔 : 1998년
최고 랭킹 : 3위
현재 랭킹 : 8위
우승 상금 : UK·2,240,765
최고 브레이크 : 147(3번)
센추리 브레이크 : 301회

<토너먼트 우승>
랭킹 토너먼트 : 5회
마이너-랭킹 토너먼트 : 2회
비랭킹 토너먼트 : 7회
2005 월드챔피언십 우승

숀 머피는 2005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영국의 프로페셔널 스누커 선수로 곧은 큐 액션과 긴 포팅으로 유명하며‘마술사’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는 1998년 프로 스누커 선수로 데뷔 후 월드 챔피언십에서 이렇다 할 성적 없이 세 번의 예선 통과 만에 2005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는 또한 2007 멜타 컵과 2008 UK 챔피언십, 2010/2011 플레이어즈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2009년 두 번째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 오르기까지 비랭킹 토너먼트에서 7개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그는 그동안 2백만 파운드가 넘는 상금을 획득했으며, 그의 프로 경력 중 250회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그는 월드 랭킹 3위를 세 시즌 동안 유지했으며, 현재 랭킹은 8위다.

 

숀 머피


Start

영국 할로에서 태어난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스누커 테이블을 선물 받고 8살 때부터 스누커를 치기 시작했다.

10살 때 그의 첫 번째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한 그는 13살 때 닥터 마틴 회사로부터 5년 동안 연간 5천 파운드의 후원 계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2년 후 1998년 15살의 나이로 프로에 입문한 머피는 1998년 UK투어로 프로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1997/1998 시즌 동안 UK투어의 네 번째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으며, 2000/2001 시즌 챌린지 투어 3번째, 4번째 대회에서 우승해 랭킹 리스트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00년 올해의 월드 스누커 신인상을 받았으며, 월드 프로페셔널 빌리어드(WPB)와 스누커협회에서 올해의 우수한 여섯 명의 영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0 영국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숀 머피는 2000 벤슨&헤지스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마크 데이비스를 6-1로 꺾고 결승에 올라 스튜어트 빙햄을 9-7로 이기며 그의 첫 프로페셔널 토너먼트 우승을 손에 넣었다.

그로 인해 그는 마스터스 예선 토너먼트의 우승자와 제한된 수의 와일드카드로 구성된 톱 16위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비랭킹 인비테이션 토너먼트에 출전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2001 토너먼트에서 월드 랭킹 15위인 마르코 푸를 격파하고 7번이나 세계 챔피언에 오른 헨드리를 4-1로 리드하는 등 시합에서 지기 전까지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2001 벤슨&헤지스 챔피언십에서 그의 첫 맥시멈 브레이크를 달성했다.

2003/2004 시즌 동안 머피는 월드 랭킹 64위에 올랐고, 3개의 랭킹 토너먼트의 파이널 스테이지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특히 LG CUP에서 머피는 세 번째 라운드에서 존 히긴스에게 2-5로 지기는 했지만 두 번째 라운드에서 스티브 데이비스를 5-4로 꺾은 그는“이것은 내 스누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날 중 하나”라며 기뻐했다.


2005 World Championship

2005 월드 챔피언십은 숀 머피의 경력 중 가장 중요한 대회다. 그는 2005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두 번의 예선전에서 이겨야 했다.

그는 본선에 올라 전 월드 챔피언이었던 존 히긴스를 13-8로 이겼으며, 데이비스를 13-4로 꺾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터 엡돈을 17-12로 꺾은 그는 결승에서 세계 6위인 스티븐스를 만났다.

이틀 동안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의 결승전에서 그는 첫날 마지막 경기에서 스티븐스에게 6-10으로 졌지만, 결국 둘째 날 16-16의 스코어를 기록했으며, 그 후 두 프레임을 위닝 브레이크로 2005 월드 챔피언십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의 열한 번의 센추리 브레이크는 그 해 토너먼트 최고의 기록이 되었다.

사실 숀 머피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사전 토너먼트 확률은 150-1이었고, 그는 낙제생이었다.

고작 세 번의 예선 통과가 기록의 전부였던 그의 갑작스러운 우승은 톱 랭커들과 관계자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는 1972년 알렉스 히긴스와 1979년 테리 그리피스 이후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혹은 결승에 오르는) 세 번째 예선 통과자가 되었다.

22세의 숀 머피는 21살에 타이틀을 들어 올린 헨드리 다음으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두 번째 최연소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는 월드 랭킹 48위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가장 낮은 랭킹의 선수였다.

이후 그는‘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 대회의 우승으로 인해 그의 전 경력 우승 상금의 두 배가 넘는 상금을 손에 넣어 이것으로 그는 벤츠와 집을 구입했고, 우승 직후 2005년 7월, 그의 약혼녀 클레어와 결혼식을 올렸다.

2005/2006의 새 시즌 동안 그는 랭킹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21위까지 자신의 랭킹을 올렸다.

물론 세계 챔피언인 그는 시즌 동안 모든 토너먼트에 자동으로 초청되었다. 그는 2005년 12월에 BBC 이스트 미들랜드 스포츠 어워드에서 주는 올해의 스포츠맨 상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 월드 챔피언십에서 피터 엡돈에게 7-13으로 패하며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실패해 크루시블 저주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그는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 크루시블 극장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지 못한 첫 번째 챔피언이 아니었다.)


TOP 16

그는 월드 랭킹을 다섯 계단이나 뛰어올라 처음으로 엘리트 톱 16위에 진입했다. 그로 인해 자동으로 랭킹 토너먼트의 파이널 스테이지 출전 자격을 얻었으며 마스터스에 자동으로 초청되었다.

그는 몰타컵의 결승전에서 9-4로 라이언 데이를 물리쳤으며, 다음 대회인 웨일스 오픈에서 제이미 쿠페를 이긴 그는 2005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히긴스 이후 연이은 4개의 프레임에서 센추리를 기록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고, 9개 경기의 베스트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Highest Ranking

2007/2008 시즌 동안 그는 이제까지 중 가장 높은 랭킹인 월드 랭킹 3위에 올랐다. 그 시즌 동안 5개의 랭킹 대회에서 최소한 준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UK 챔피언십 전에 일시적으로 1위에 오른 그는 몰타컵 결승전에서 9-3으로 도허티를 이기며 몰타컵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나 아쉽게도 몰타컵은 랭킹 대회가 아니라 곧 1위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이후 차이나 오픈 준결승전에서 마크 셀비에게 6-3으로 이긴 그는 결승전에서 만난 맥과이어에게 1-9로 지고 말았다.

월드 챔피언십 전 다시 한 번 임시로 랭킹 1위에 오른 그였지만, 그가 좋아하는 대회 중 하나인 월드 챔피언십에서 알리 카터에게 4-13으로 패하기 전 두 번째 라운드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머피는 2008/2009 시즌에도 월드 랭킹 3위를 유지했다. 아내와의 별거로 네 번 연속으로 첫 라운드에서 패배한 그는 절치부심 끝에 UK 챔피언십에서 그의 세 번째 랭킹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승리는 그를 데이비스, 알렉스 히긴스, 그리피스, 존 패럿, 헨드리, 오설리번, 윌리엄스, 존 히긴스, 엡돈을 이어 월드 타이틀과 UK 타이틀 모두 따낸 열 번째 선수로 그를 이끌었으며, 세계 엘리트 톱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어 월드 챔피언십에서 아내와의 이혼 압박 속에서 히긴스를 10-8로 꺾은 그는 계속해서 푸를 13-3으로, 헨드리를 13-11로 이기며 준결승에 올라 로버트슨을 17-14로 패배시키며 그의 두 번째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번의 월드 챔피언을 지낸 히긴스를 상대하기 벅찼던 그는 첫날 5-11로 끌려다니다 결국 9-18로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이후 머피는 2009/2010 시즌에도 랭킹 3위를 세 시즌 동안 유지했다. 그는 화이트를 결승전에서 4-0으로 물리치며 성공적으로 폴 헌터 클래식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프리미어 리그 스누커에서 오설리번에 맞서 7-3으로 이기며 우승을 손에 넣었다.

UK 챔피언십 디펜딩 챔피언인 그는 세컨드 라운드에서 그 대회 최종 승자인 딩준후이에게 5-9로 패하고 말았다.

경기 후 그는“나는 어느 누구도 매 프레임마다 화장실을 갈 필요가 있다고 믿을 수가 없다”며 프레임 후 너무 자주 경기장을 떠나는 딩준후이에 대해 불평했다.

이후 웨일스 오픈과 차이나 오픈의 첫 라운드에서 스티븐스와 나이젤 본드에게 각각 패한 그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제라드 그린과 딩준후이를 물리 쳤지만 준결승전에서 카터를 8-4로 리드하고 있었으나 결국 12-13으로 패하고 말았고, 이로 인해 2003/2004 시즌 이래로 그가 랭킹 토너먼트에서 준결승과 결승에 오르지 못한 첫 시즌이 되었다.


Currently

2013년 8월부터 2014년 1월 사이에 머피는 19kg을 감량했다. 테이블 위에서의 집중력과 체력 향상을 위한 그의 목표 중 하나였다.

그는 2014 챔피언십 리그 두 번째 그룹에서 마크 데이비스를 상대로 그의 리그전에서 공식적인 두 번째 최대 브레이크를 달성했다.

마스터스의 첫 라운드에서는 딩준후이를 2-4에서 6-4로 역전해 이겼으며, 준준결승전에서는 마르코 푸에게 1-4로 끌려가다 다섯 프레임을 연속으로 이기며 6-4로 극적으로 이겼다.

2014년 3월 마이너 랭킹인 그디니아 오픈의 마지막 16강 제이미 존스와의 경기 동안 머피는 이 시즌 두 번째로 147 브레이크를 만들어 그의 경력 중 세 번째 기록을 세웠다. 그는 퍼갤 오브라이언을 4-1로 이기며 29개월 만에 그의 첫 번째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다음 달, 그는 월드 오픈 결승전에서 마크 셀비를 10-6으로 이기며 3년 만에 랭킹 타이틀 우승을 손에 넣어 자신의 경력 중 다섯 번째 랭킹 타이틀을 차지했다.

 

숀 머피


Rivalry

머피는 스테판 맥과이어를 비롯해 다른 뛰어난 젊은 플레이어들과 몇몇 대회에서 부딪혀 왔다. 특히 2004 그랑프리에서 맥과이어가 프레임을 잃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합을 막 시작하려고 악수를 나눈 후 맥과이어는 그가 자신의 초크를 안 가져온 것을 깨달았고, 심판에게 경기장을 떠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맥과이어가 떠난 동안 머피는 심판에게 토너먼트 디렉터인 마이크 갠리를 불러달라고 했고, 갠리는 기술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안 된 맥과이어에게서 한 프레임을 빼앗았다.

이 사건으로 맥과이어는 화가 났고, 결국 5-2로 이긴 그는“규칙은 규칙이다. 하지만 난 전에 어떤 대회에서도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이후 2006 월드 챔피언십에서 맥과이어는“나는 뚱뚱한 월드 챔피언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며 앞선 챔피언인 머피를 언급했고, 2007 웨일스 오픈에서 머피를 이긴 후 맥과이어는 초크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는 항상 경쟁해 왔다. 그런 경쟁이 승리를 더욱 확고히 한다. 나는 그를 싫어하고 내 생각에 그도 나를 싫어한다. 나는 항상 모두를 이기려고 노력하지만 만약에 내가 머피에게 진다면 나는 더 많이 실망할 것이다.”

맥과이어는 현재 8-7로 근소한 차이로 머피를 리드하고 있다.

머피는 그동안 몇몇 그의 라이벌들에 대해서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거나 테이블 컨디션에 대해 불평해 왔다.

특히 그는 로니 오설리번의 냉혹한 비평가로 오설리번이 전문성이 부족하고 게임에서 그의 인기는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등 머피의 이런 솔직한 방식은 선수들 사이에서 그를 인기 없게 만들었다.


Playing Style

데이비스가 언젠가 머피의 긴 포팅과 브레이크-빌딩을 본 후 ‘내가 본 최고의 큐 액션’이라고 말했을 만큼 머피는 스트레이트 큐 액션으로 유명하다.

필 예이츠는 2008년 <타임스>에 머피가 그의 월드 챔피언십 승리 이후 전술적인 게임이 향상되었다고 언급했으며, 머피는 250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와 3번의 최대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그는 2백만 파운드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Personal life

머피는 할로에서 태어나 어슬링보로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후 13살 때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으며, 그가 14살에 그의 부모가 이혼했다.

그는 전직 프로 골퍼였던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19살 때까지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2007 월드 챔피언십 동안 월드 스누커 이사회 멤버인 그의 아버지와 사이가 많이 틀어져 1년 이상 말을 안 했다고 하나 만약 아버지가 부른다면 다시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할 마음이 있었다.

17살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그는 매 경기 전 그의 드레싱룸에서 항상 기도를 하며, 그의 수입의 10분의 1을 교회에 기부한다.

그는 신뢰, 헌신, 말 잘하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05년 7월에 결혼한 그는 부인과 함께 그해 여름을 짐바브웨에서 구호 작업을 하며 보냈다.

이후 3년 만에 이혼한 그는 2012 월드 챔피언십 전 그가 기록하는 모든 센추리마다 100파운드씩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로 선언하였다. 한편, 머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