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5월 18일생
국적 : 스코틀랜드
닉네임 : 위쇼의 마법사
프로 데뷔 : 1992년
최고 랭킹 : 1위(3년 9개월 동안)
현재 랭킹 : 10위(2014년 6월 기준)
상금 : 5,962,885파운드
최고 브레이크 : 147(7회)
센추리 브레이크 : 556회
월드챔피언십 우승 : 1998, 2007, 2009, 2011
랭킹 토너먼트 우승 : 25회
마이너 랭킹 토너먼트 우승 : 3회
비랭킹 토너먼트 우승 : 13회

존 히긴스는 현대 스포츠 역사 상 가장 성공한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75년 스코틀랜드의 위쇼에서 태어난 그는 1992년 십대 시절 프로페셔널 스누커 선수로 데뷔한 이래 네 번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1998, 2007, 2009, 2011)을 손에 넣었으며, 세 번의 UK 챔피언십 타이틀(1998, 2000, 2010)과 두 번의 마스터스 타이틀(1996, 2006)을 따내며 명실공히 최고의 스누커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스티븐 헨드리가 36개, 스티브 데이비스가 28개, 로니오설리번이 26개의 랭킹 타이틀을 확보한 이래로 25개의 랭킹 타이틀을 기록한 네 번째 선수이다.
 
히긴스는 다작하는 브레이크-빌더로서 프로페셔널 토너먼트에서 550회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했으며, 이는 스티븐 헨드리와 로니오설리번에 이은 세 번째의 기록이다.

그는 또한 로니 오설리번의 12개의 맥시멈 브레이크와 스티븐 헨드리의 11개의 맥시멈 브레이크 기록에 이어 세 번째로 7개의 멕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한편, 2010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블로이드 신문에 의하면 존 히긴스가 승부 조작 함정 수사에 걸려 스포츠 베팅 룰을 위반하는 유혹에 동의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고 보도가 되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WPBSA는 존 히긴스에게 6개월간 대회 출전 금지와 7만 5천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했다.

존 히긴스는 월드 랭킹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랭킹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6/1997 시즌부터 2011/2012 시즌까지 연속 16시즌 동안 세계 랭킹 6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네 차례에 걸쳐 1위를 지냈다.

하지만 2011년 네 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얻은 이후 폼 때문에 슬럼프에 빠진 그는 결국 월드 랭킹 톱10에 진입한 이후 처음으로 12위까지 떨어졌다.

 

유명세

존 히긴스는 1992년에 프로페셔널 선수로 정식으로 입단하여 프로페셔널 투어 첫 시즌에 브리티시 오픈 준결승전에 올랐으며, 첫 랭킹 토너먼트인 그랑프리 결승에서 데이브 해롤드를 9-6으로 꺾고 그의 나이 19세인 1994/1995 시즌에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브리티시 오픈과 인터내셔널 오픈 두 개의 랭킹 타이틀에서 계속 승리하며 한 시즌 동안 세 개의 랭킹 대회에서 우승한 첫 틴에이저 선수가 되었다.

그는 마스터스와 웨일스 오픈의 결승전에도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월드 랭킹 51위의 그는 시즌 말이 되자 11위까지 단숨에 뛰어올랐으며 다음 시즌에 두 개 이상의 랭킹 타이틀과 결승에 오른 이력으로 그는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첫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

1998년 존 히긴스는 그의 첫 월드 챔피언십에서 제이슨 퍼거슨과 안톤 해밀토, 존 패럿, 로니오설리번을 차례로 이기고 결승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캔 도허티마저 18-12로 꺾고는 우승을 차지했다.

히긴스는 그 대회에서 14개의 센추리를 기록했으며, 월드 챔피언십에서 승리한 후, 히긴스는 처음으로 월드 랭킹 1위 자리에 올랐고, 이로써 스티븐 헨드리의 8년간의 1위 수성 역시 끝났다.

이후 1998/1999 시즌 동안 히긴스는 UK 챔피언십과 마스터스에서 매튜 스티븐스와 캔 도허티를 각각 10-6, 10-8로 꺾으며 데이비스와 헨드리 이후 월드 챔피언십과 UK 챔피언십, 그리고 마스터스 타이틀을 한 시즌에 동시에 따낸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동안 같은 해에 월드 챔피언십과 UK 챔피언십 두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네 명의 선수(스티브 데이비스, 스티븐 헨드리, 존 패럿, 로니 오설리번) 밖에 없었으며, 히긴스가 그 다섯 번째 선수가 되었다.

히긴스는 1999/2000 시즌까지 2년 동안 계속해서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1999년 그랑프리에서 마크 윌리엄스를 만난 히긴스는 2-6으로 지고 있었지만 결국 9-8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으나, 2000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에서는 14-10의 스코어를 지키지 못하고 15-17로 지고 말았다.

하지만 2000 UK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히긴스는 10-4로 승리를 거두며 두 번째 UK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2001/2002 시즌이 시작하자 히긴스는 챔피언스컵과 스코틀랜드 마스터스, 그리고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며 세 개의 오프닝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1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결승까지 올랐으나 로니오설리번에게 14-18로 패하고 말았다. 히긴스는 이후 2004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할 때까지 메이저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했다.

2005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존 히긴스는 9-2로 로니오설리번을 꺾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랭킹 토너먼트에서 네 번 연속으로 센츄리를 기록하는 첫 선수가 되었다.

히긴스와 오설리번은 2005 마스터스 결승전과 2006 마스터스 결승전에서도 격돌했다.

2005년 마스터스에서는 히긴스가 3-10으로 패했으나 2006년에는 뺏고 빼앗기는 게임 끝에 마지막 프레임에 승부를 걸었다.

오설리번이 60점 브레이크에서 빨간공을 놓치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히긴스가 64점으로 점수를 벌이며 10-9로 아슬아슬한 우승을 거둬 두 번째 마스터스 타이틀을 차지했다.

 

승승장구

2007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준결승전에서 스티븐 맥과이어를 만난 그는 10-14로 지고 있던 스코어를 17-15로 뒤집었다.

이 과정에서 히긴스는 122 브레이크를 쳤으며 이 브레이크는 1977년 크루시블에서 월드 챔피언십이 개최된 이래 1천 번째 센추리였다. 결승전에서 마크 셀비에게 12-4로 크게 앞섰으나 마크 셀비의 끈질긴 추격에 스코어는 14-13까지 좁혀졌다.

히긴스는 이후 네 번의 연속된 프레임에서 승리하며 18-13로 게임을 매듭지으며 두 번째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으며, 다시금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히긴스는 스누커의 월드 시리즈 수립을 돕고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열리던 스누커 대회를 새로운 장소에서 개최할 생각이었던 그는 최근 극동 시장을 개발했다.

이와 더불어 히긴스는 그의 매니저인 팻 무니와 함께 새로운 선수 조합인 스누커선수협회(SPA)를 창안했다.

그는 2008년 그랑프리에서 네 번째 승리를 거뒀으며, 2009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짜릿한 역전승으로 마크 셀비를 준준결승전에서 이기고 준결승전에서는 마크 앨런을 17-13으로 꺾었다.

결승전에서 숀 머피를 만난 그는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18-9로 더블 스코어 차이로 승리를 차지해 세 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 시즌 역시 세계 랭킹 1위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승부조작

2010년 5월, 히긴스와 WPBSA 이사인 그의 매니저 팻 무니는 세계 언론의 불명예 뉴스에 의해 진행된 함정수사 이후 승부조작 혐의 문제에 놓였다.

매저 마흐무드가 이끄는 신문의 위장 취재에서 마흐무드는 프로모터인 척하면서 히긴스와 그의 매니저를 만나 스누커 월드 시리즈와 연관된 조직인 척 접근, 총 300,000유로를 받는 대신 4개의 개별 대회에서 4개의 프레임을 져주기로 히긴스가 동의했다고 혐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프레임을 고정할 방법과 어떤 대회에서 어떤 상대를 선택할 것인지, 또 돈을 히긴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도 의논했다고 주장했다.

이 일로 인해 히긴스는 출장 정지를 당했으며, 무니는 WPSBA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히긴스는 승부 조작 연루를 부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 일이 러시아 마피아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해 자신의 안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WPBSA는 히긴스에게 6개월 자격 정지와 75,00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했다.


리턴 투 스누커

2010년 5월에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던 히긴스는 2010년 11월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유러피언 플레이어 투어 챔피언십(EPTC) 다섯 번째 게임에서 숀 머피를 4-2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복귀 후 EPTC 여섯 번째 게임인 프라하 클래식의 결승전에 오른 그는 이후 영국에서 열린 UK 챔피언십까지 연달아 3개의 대회의 결승에 올랐다.

특히 UK 챔피언십에서는 마크 윌리엄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경기를 펼치던 히긴스는 7-9 스코어 이후부터 강력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10-9로 짜릿한 승리를 연출했다.

그는 그렇게 세 번째 UK 챔피언십 타이틀을 확보했으며, 스티브 데이비스와 스티븐 헨드리, 로니오설리번의 뒤를 이어 스누커에서 두 번째로 큰 랭킹 토너먼트에서 세 번 이상 우승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스누커 대회로 돌아오자마자 19경기 중 18경기에서 이겨, 이로 인해 다시금 세계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는 충분한 점수를 벌었다.

하지만 독일 마스터스에서 오랫동안 암과 싸운 아버지의 건강 악화 소식으로 철수한 그는 결국 2주 후 웨일스 오픈에서 스티븐 맥과이어에게 9-6으로 승리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였고,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작고한 아버지에게 바쳤다.

그 후 2011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히긴스는 첫 라운드에서 스티븐 리를 10-5로 꺾었으며,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로리 맥그로드를 13-7로, 그리고 준준결승에서는 로니오설리번을 13-10으로 물리쳤다.

준결승전에서 마크 윌리엄스와 붙은 그는“당신 30만을 삼킨 거야, 존? 당신은 스누커의 망신이야!”라는 관중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17-14로 이겼으며, 마침내 결승전에서 주드 트럼프를 18-15로 꺾고 당당히 그의 네 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스티브 데이비스는“존 히긴스는 내가 지금껏 봐온 선수 중 최고의 선수”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월드 챔피언십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마크 윌리엄스에게 월드 랭킹 1위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슬럼프

히긴스는 2011년에 네 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후부터 혹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
그는 2011/2012 시즌을 아주 힘들게 보냈다.

단 두 개의 메이저 랭킹 대회의 준준결승에만 올랐을 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그의 시즌 베스트는 숀 머피를 4-6으로 꺾고 마스터스 준결승에 오른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를 하기에 충분히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토너먼트 첫 라운드에서 리앙 웬보를 6-8에서 10-9로 역전한 그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스티븐 헨드리와 만났다.

이것은 이 둘의 월드 챔피언십에서의 첫 만남이었다.

헨드리는 보란 듯이 디펜딩 챔피언을 13-4로 격파했고, 히긴스는 크루시블 최악의 경기라는 오명을 얻었다. 결국 히긴스는 월드 랭킹 5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2/2013 시즌은 전 시즌보다 비교적 출발이 좋았다.

상하이 마스터스에서 그의 25번째 랭킹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그는 결승전 동안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했고, UK 챔피언십에서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마크 데이비스를 상대로 147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그는 또한 마이너 랭킹 대회인 케이 수잔 메모리얼 트로피도 손에 넣었다.

단 한 가지 실망스러운 것은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랭킹에도 못 오른 아마추어 조던 브라운에게 3-4로 패한 것이었다. 

히긴스는 이후의 대회에서 한 개의 메이저 랭킹 대회의 준결승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월드 오픈에서는 마크 앨런에게 2-6으로 졌고, 월드 챔피언십은 첫 라운드에서 마크 데이비스에게 6-10으로 져 탈락하고 말았다. 그는 17시즌 만에 처음으로 월드 랭킹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11위로 시즌을 끝냈다.

히긴스는 새 큐를 가지고 2013/2014 시즌을 의욕적으로게 시작했다. 불가리아 오픈에서 일찌감치 숀 머피와 로니오설리번을 꺾고 결승전에서 닐 로버트슨을 4-1로 이겼으며 덕분에 잠시 다시금 랭킹 톱 10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는 시즌의 첫 메이저 랭킹 대회인 우시 클래식 결승에 올랐으나 닐 로버트슨에게 이번에는 7-10으로 지고 말았다.

그의 폼은 그 후 다시금 변질되기 시작했다.

결국, 또 큐를 바꿨지만 별다른 효험 없이 계속 게임에서 지기만 했다. UK 챔피언십을 앞두고 히긴스는 다시금 큐를 바꿨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UK 챔피언십 이후 그는 12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마스터스 대회가 시작되기 전, UK 챔피언십 이후 혼란의 상태로 몇 달을 보내고 지금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도달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다른 큐로 바꾸고 그의 템포를 다시 찾는 듯 보였다.

그는 스튜어드 빙햄을 6-2로 첫 라운드에서 이겼으나 준준결승전에서 5-3으로 디펜딩 챔피언인 마크 셀비를 리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5-6으로 패하고 말았다.

독일 마스터스 32강에서 도미닉 데일에게 3-5로 진 그는 웨일스 오픈 16강에서 주드 트럼프를 4-3으로 꺾고 준준결승에 올라 슬럼프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였으나 로니오설리번에게 1-5로 처참히 깨지며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후로 대회마다 16강전에서 탈락한 존 히긴스는 현재 세계 랭킹 10위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의 삶

2000년에 결혼한 그는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셀틱 FC의 열렬한 서포터인 그는 종종 팀의 대회를 찾아다닌다.

2006년 몰타컵 결승전에서 캔 도허티에게 패한 뒤 술에 취해 비행기로 호송된 그는 2007년 월드 챔피언십을 준비하면서 절대 금주 처방이 내려져 결국 승리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08년 대영제국 작위를 수여받은 그는 2010년 아내와 함께 출연한 ITV의 미스터&미세스에서 9 문제 중 9 문제를 모두 맞춰 우승해 30,000유로를 상금으로 받았으며, 그는 그 상금을 아버지와 같은 환자들을 돌보는 달지엘센터에 모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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