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E WOO SUNG

권혁민 선수는 신인이다. 당구선수가 된 것도 지난 3월. 그런데 이 신인 권혁민의 기세가 매섭다. 황득희, 강동궁, 김행직 등의 세계 톱 클래스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경기도권 토너먼트에서 최근 다섯 번 열린 토너먼트 중 네 번을 3위 이내에 입상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순식간에 강자로 수면 위에 떠올라 지난 전반기에 가장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과연 권혁민의 돌풍이 앞으로 3쿠션의 변화를 이끌어 낼 전초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를 주목해 보자.

 

선수등록 첫 대회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긴 선수들도 뭐, 화려하다.

운이 좋았다. 솔직히 처음에 선수등록을 서울, 인천, 경기 어디서 해야 할까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경기도와 부천시당구연맹을 선택한 것은‘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선수등록하자마자 첫 토너먼트인 경기도 3쿠션챌린지에서 꿈에 그리던 방송경기를 할 수 있었고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신인에게 방송경기는 오히려 부담되지 않나?

맞다. 카메라 앞에 서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더라. 진이섭 선수와의 경기였는데, 애버리지 1.00도 못 치고 질질 끌려갔다. 공보다 환경에 신경이 더 쓰이니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만해져서 두께도 안 맞고 시선도 겉돌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도권을 내주었다. 이걸 중간에 회복하지 못하면 100% 지는 거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극복했나?

경기를 하다가 문득,‘아니,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더라. 인기 있는 선수들은 주변에 따라다니는 팬이 당연히 신경이 쓰일 테고, 방송 카메라도 신경 쓰일 것이고, 거기다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나 같은 신인 선수는 그보다 편하고 전혀 잃을 게 없는 상황인데도 카메라 앞에 처음 서 본다는 이유로 스스로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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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어떤 주문을 외웠나?

그게 주문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합리화일 수도 있다. 선수 첫 대회에서 4강까지 간 것만 해도 충분히 잘한 것 아닌가.

어차피 난 잃을 게 없다. 물론 욕심은 더 났지만, 마음을 비우자는 생각을 하며 내 플레이에만 집중해서 공 하나하나 즐겨 보자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부터는 어깨가 많이 가벼워지고 부담이 덜어지더라. 18:33이었는데, 3이닝 동안 8점, 3점, 11점을 쳐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그 경기 전에 8강전을 강동궁이랑 하지 않았나? 그때도 파이팅이 좋아 보였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경기다. 원래 그 경기가 첫 방송경기였다. 그런데 아침에 와보니 스케줄이 바뀌어 있더라. 방송경기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방송 스케줄이 선수에게 통보도 없이 바뀌나?

빅매치를 다뤄줘야 하니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동궁 선수와 내 경기는 뭐로 봐도 내가 질 확률이 높은 경기 아닌가.

무명의 선수에게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방송경기였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실망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기가 더 생기더라.

이겨야겠다는 투지가 더 타올랐다.


참 재미있는 경기였다.

시작부터 마음의 준비가 달라서인지 내내 경기가 잘 풀렸다. 계속 10점 이상 리드를 지켰는데, 막판에 강동궁 선수에게 11점을 맞고 오히려 35:38로 역전됐다.

그러나 거기서 결정적인 뒤돌려치기 난구를 풀어서 5점을 모두 쳤다.

어차피‘모 아니면 도’였기 때문에 난구를 못 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강동궁 선수가 이전에 11점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 내용이 너무 좋아서 만약 내가 뒤돌려치기 난구를 풀지 못하면 무조건 2점은 맞는 거다.


신인이 챔피언을 넘는 이런 경기가 빅매치인데, 오히려 방송을 못 찍은 게 아쉽다.

스포츠의 힘은 도전이라는 두 단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스포츠 정신의 바탕이고, 스포츠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챔피언에 도전하는 도전자의 과정과 결과에 모두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계자, 팬 모두가 이런 부분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당구가 더 재미있어지고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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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토너먼트에서 준우승, 두 번째 토너먼트에서 3위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실 좋은 것보다 아쉬운 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두 번째 토너먼트 준결승전에서 김행직 선수와 경기를 했는데, 26:38로 지고 있다가 39:38로 역전을 시켰다. 연속 결승 진출에 1점 남았다.

더블레일과 뒤돌려치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됐다. 뒤돌려치기를 치면 디펜스가 가능했는데, 난 더블레일을 선택했다. 아쉽게도 안 맞았다.

김행직 선수가 2점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내가 후구에서 초구를 놓쳤다. 최소 이기거나 비겨서 다시 승부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썼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후구나 승부치기는 보는 사람도 심장이 떨리는데.

긴장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난 당구는 격투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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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구는 격투기다. 무슨 의미인가?

당구는 최고의 스포츠다. 가장 신사적인 스포츠이면서 룰과 매너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지 않는 암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눈에 보일 만큼 액션이 크지는 않지만, 격투기처럼 치고받아야 승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고, 상대방이 아파할 수 있는 공을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본인 경기가 다이내믹한 것인가?

내 공이 풀리면 상대방이 절어서 확 치고 올라갈 수 있게 된다. 그런 데미지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하면 분위기는 잘 안 넘어간다. 또 상황이 긴박하면 효과는 더 크다.


언제부터 당구선수가 목표였나?

오래됐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중학교 때 당구를 처음 쳤는데, 4구 500점을 쳐서 친구 중에 같이 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96년도 즈음에 유니버설코리아 박석준 대표가 경희대 앞에서 운영하던 자이언트클럽에서 본격적으로 공을 치기 시작했다. 거기서 업그레이드를 많이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보다 그때는 당구선수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했던 때라, 군대에 가게 되면서 큐를 접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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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다시 당구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나?

근 14년 동안 제대로 공을 치지 않았다. 명절 때 가족들과 한 번씩 가는 정도? 그런데 언젠가 당구클럽에 갔는데, 테이블이 대대밖에 없었다.

거기서 나는 22점을 놓고 25, 26점 동호인들이랑 쳤다. 그날 경기를 전패했다.

재미도 있고 승부욕도 생기고 해서 그 일을 계기로 줄기차게 당구클럽을 드나들게 됐다. 일주일 만에 같이 치는 사람들이 30점을 놓으라더라.

그 뒤로 인천 주안에 있는 캐롬클럽으로 옮겼다. 그때부터는 선수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겼다.


아마추어로 전국체전에 나간 적이 있는데?

2011년에 인천지역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해서 인천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갔다. 캐롬클럽을 다니면서 김재근 선수의 도움으로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다.

그런데 선수 등록은 부천에서 했다.

몇 년이 지난 시점에 선수등록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 인천, 경기 세 지역을 놓고 고심을 했다.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인천은 전국체전 대표도 했으니 당연히 고려하게 됐고, 그 당시에 선수를 목표로 당구를 치고 있는 경기도 부천도 대상이었다.

홍석태 선수를 만나면서 끝내 경기도 부천으로 선수 등록을 하게 됐다.


당구선수가 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도와주었나?

부천시당구연맹에 등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바로 홍석태 선수다. 홍석태 선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당구선수가 되는 것은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난 직업이 중고차 딜러다. 홍석태 선수도 같은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됐고, 홍석태 선수가 부천에서 당구클럽을 하고 있어서 일이 끝나면 마음껏 당구를 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고 6시 이후에는 12시까지 당구클럽에서 연습을 한다. 홍석태 선수는 내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었다.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작년에 결혼했다. 와이프는 당구를 잘 모른다. 그런데 내 꿈이 당구선수라는 것을 알고 이해를 많이 해주고 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아무 걱정 없이 공만 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기 때문에 와이프의 의사는 절대적이다. 와이프가 너무 고맙다.

당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홍석태 선수, 최근철 코치, 김재근 선수 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얼마 전부터 큐를 지원해 주신 (주)한밭 권오철 대표이사님에게도 감사드린다는 말을 지면을 빌어 드리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경기도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고, 전국대회에서도 입상하는 것이 목표다. 너무 텀이 길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얼마 후 열리는 구리 3쿠션월드컵에 처녀 출전하는데, 좋은 성적을 올려서 와이프에게 소중한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봐 달라. 좋은 당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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