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본인 소개 부탁한다.
대항병원이라는 대장항문클리닉에서 외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혜정이라고 한다. 남편과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현재 김정규당구스쿨에서 3쿠션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3쿠션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됐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제 3개월 조금 넘었다.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자주 당구장에 갔었다. 그때는 주로 4구를 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당구를 전문적으로 배울 만한 곳도 없었고, 기회도 없어서 계속 당구에 목말라 있었다. 더군다나 여자 혼자 당구장에 가기도 어렵고, 같이 당구장 다닐 파트너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고, 아이들도 제법 컸고, 하고 있는 일에서도 여유가 생기고, 또 하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찾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당구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여전히 당구를 치고 싶어도 주위에 같이 칠 사람이 없더라. 서로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고.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당구를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솔직히 당구를 가르쳐 주는 학원 같은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당구스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집에서도 굉장히 가까워 망설이지도 않고 등록을 하게 됐다.
용감하다. 그래도 여자 혼자 당구를 배우겠다고 처음 왔을 때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남자들이라 낯설고 어색했을 텐데.
원래 당구장도 여자가 가면 어색하다. 그래도 재밌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선들이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당구장에 다녔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재밌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데 그런 어색함과 낯선 기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구장도 다녀봤는데, 당구스쿨은 당구장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배우고 연습하러 오는 곳 아닌가. 다 똑같은 회원이다.
대학교 때부터 4구를 쳤다는 것이 의외다. 보통 여대생들은 포켓볼로 당구를 시작하지 않나?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포켓볼 문화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당구장에 포켓볼 당구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당구장에 여자들이 없었다. 여자들은 당구장에 아예 안 다니는 분위기였다. 나도 당구장에서 나 외의 여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처음부터 4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오히려 포켓볼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포켓볼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나는 4구나 3쿠션에 더 흥미를 느꼈다. 지금 직장에도 포켓볼 동호회가 있는데, 당구를 너무 치고 싶은데도 왠지 포켓볼 동호회는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지금은 3쿠션을 배우고 있는데, 3쿠션은 언제부터 쳤나?
김정규당구스쿨에 와서 3쿠션을 처음 배웠다. 4구는 제대로 배워서 친 게 아니라 친구들이랑 큐부터 잡고 놀면서 친거였다. 직장에 3쿠션을 잘 치시는 선배들 따라서 당구장에 가서 3쿠션 치는 걸 보면 3쿠션과 4구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지금도 차라리 4구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분리각 같은 걸 먼저 익히고 나중에 3쿠션을 배우라고 조언해주시는 회원분들이 계신 데, 과감히 뿌리치고 3쿠션을 배우고 있다.
3쿠션과 4구는 어떤 점이 다른가?
3쿠션은 먼저 공을 어떻게 보낼지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대로 공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샷을 하는데, 4구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재미다.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당구를 배운다고 말하고 시작했나?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아직 아는 사람들이 없다. 특히 가족들은 내가 이렇게 당구를 좋아하고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시작할 때 그때만큼 재미가 있을지, 또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흥미를 가지고 배울지 몰랐기 때문에 섣불리 이런 걸 한다고 주위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드님들께서 같이 배우겠다고 따라올까 봐 살짝 걱정도 됐다.(웃음) 아직은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더 커서 같이 칠 수 있을 때쯤 얘기를 해줄 생각이다. 엄마가 실은 3쿠션을 좀 친다고.
멋지다. 나중에 대학생이 된 아들들과의 게임도 기대가 된다.
남동생들이 있는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집에 내려가면 동생들과 같이 당구를 치곤 했다. 남동생 둘과 함께 당구를 쳤던 기억들이 특별한 추억처럼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만나서 당구를 치자고 하는데 서로 바쁘고 또 배우자들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아 아쉽다.
당구를 배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일단은 시간을 좀 더 많이 투자해야 실력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 점이 지금으로선 가장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금방 뭐가 막 될 것 같은데, 썩 잘되지 않을 때. 물론 어느 분야나 다 처음 배울 땐 똑같을 거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조금 비웠다.
어렸을 적에 만화책을 봤는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림의 고수인 적을 꺾으려고 훌륭한 스승님을 찾아 산으로 가서 무술을 전수해 달라고 하고는 물 한 3년 긷고, 방 한 3년 닦고 나서야 겨우 뾰족한 나무에 앉아 명상 몇 번 하더니 하산하라고 하지 않나.
지금 딱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 물긷는 마음으로 한 3년 연습하고, 방 닦는 마음으로 또 한 3년 연습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하산해도 될 날이 오지 않겠나.
이제 4개월째니 아직 한참 남았다. 당구를 배워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일단 무엇보다 재밌다. 삶의 활기를 되찾은 기분이다.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걸 하다 보니 기분도 좋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물론 즐거운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막 재밌는 일은 아니다.
점점 똑같은 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해져서 뭔가 좀 더 재밌는 일이 없을까 하고 찾은 게 바로 당구다. 덕분에 다시금 삶에 활기를 느끼게 되었다. 당구를 배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일이 끝나면 빨리 당구 치러 오고 싶다.
4개월 동안 3쿠션을 배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
얼마 전에 당구스쿨 회원들과 게임을 했는데 30이닝 동안 단 1점도 못 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운으로라도 한두 개 맞는 게 있는데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고스란히 30이닝 동안 점수판에 동그라미만 친 게 아주 충격적이었다. 대신 그 다음 날 18이닝에 점수를 모두 쳐서 나름 혼자서 설욕을 했다.
앞으로 목표는 어디까지로 잡고 있나?
가끔 직장 동료들과 당구를 치러 가면 굉장히 잘 치고 싶은데 한 번도 공이 내가 원하는 대로 가지를 않는다. 두 시간을 쳐서 한두 번 정도 그나마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처음 당구스쿨에 왔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그림 그리는 데로 최소한 80%는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목표는 너무 높은 목표라고 하셨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공을 다 치면 그게 선수지 아마추어가 아니라며, 선수들도 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못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당구가 재밌는 거라고. 그래서 다시 세운 목표가 핸디 점수 20점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20점 정도 칠 때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해볼 생각이다.
당구를 배우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당구문화가 대체적으로 음주 후에 스포츠라기보다 오락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부분 때문에 부모님들 중 아이들이 당구 치는 것에 부정적인 분들이 많고, 지금도 당구스쿨이 아닌 대부분의 당구장은 흡연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여기 당구스쿨에 와서 당구를 배우면서 당구가 정말 스포츠가 맞구나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러하듯 당구도 마음가짐이라든가 하는 것이 당구를 치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하고, 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며 머리를 굉장히 많이 써야 하는 특별한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당구를 배우러 올 때는 여자 혼자 당구 배운다고 하면 주위에서 제가 무슨 생각으로 당구를 치나 하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말 못한 부분도 있다.
어렸을 때는 배드민턴이나 탁구도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체육센터에서 배드민턴과 탁구를 배우고 스포츠로서 즐기듯이 당구도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즐기는 스포츠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런 당구스쿨을 통해서 당구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당구가 더 이상 오락이 아닌 운동이고, 굉장히 집중을 요하는 스포츠, 자기 수양의 스포츠임이 부각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당구클럽도 동네 아줌마들이 거리낌 없이 다닐 수 있는 그런 곳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