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전한 월드챔피언십에서 다비드 사파타와 강동궁 등 타이틀홀더들을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간 이영훈.  사진=고양/김민영 기자
처음 출전한 월드챔피언십에서 다비드 사파타와 강동궁 등 타이틀홀더들을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간 이영훈. 사진=고양/김민영 기자

끝판 대장은 이영훈(32)이었다. 월드챔피언십 우승, 준우승 등 화려한 타이틀을 보유한 우승 후보들이 '시즌랭킹 18위' 이영훈에게 모두 무너졌다.

이영훈이 9일 밤 9시 30분에 경기도 고양시 JTBC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로당구 투어 왕중왕전 'SK렌터카 PBA 월드챔피언십 2023' 8강에서 '월드챔피언십 준우승자' 강동궁(SK렌터카)을 세트스코어 3-2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변 중의 이변이 일어난 셈이다. 이영훈은 시즌랭킹 18위로 처음으로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했고, 이번 대회에서 4강에 올라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앞서 32강 조별 리그전에서 '월드챔피언십 우승자'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는 등 3전 전승을 거두며 활약해 주목을 받고 있었다.

B조 1위로 본선 토너먼트에 올라온 이영훈은 16강전에서 오태준을 세트스코어 3-2로 제압하고 강동궁과 이번 8강전을 치렀다.

H조 1위(2승 1패)로 16강을 밟은 강동궁은 이번 16강에서 사파타와 리벤지매치를 벌였다. 그리고 2년 전 월드챔피언십 결승에서 4-5로 쓰라린 패배를 안겼던 사파타에게 통쾌한 복수에 성공하며 8강에 진출했다.

사파타는 그동안 월드챔피언십에서 가장 활약이 컸던 선수다. 앞서 두 번의 월드챔피언십에서 사파타는 모두 결승에 진출했다.

1대 월드챔피언에 올랐고 다음 대회에서는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에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2년 연속 결승에 올라가면서 프로당구(PBA) 무대의 대세로 떠올랐다.

이번 시즌에는 우승과 준우승을 한 차례씩 해 시즌랭킹 2위로 세 번째 월드챔피언십 무대를 밟았다. 월드챔피언십 직전에 열린 팀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소속 팀 블루원리조트를 챔피언에 올려놓으면서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파타는 리그전에서 이영훈에게 당한 첫 패배의 파장이 컸다. B조 2위로 어렵게 토너먼트에 올라온 사파타는 H조 1위 강동궁을 16강에서 만나면서 본선 첫 관문부터 큰 부담을 안았다.

결국, 2년 만에 월드챔피언십에서 다시 사파타를 마주한 강동궁에게 0-3으로 철저하게 복수를 당했고, 사파타는 16강에서 짐을 쌌다.

이렇게 월드챔피언십의 사나이를 돌려세운 두 선수가 8강에서 만났다. 물론, 큰 경기 경험에서 앞선 강동궁의 승리 확률이 더 높았다.

게다가 강동궁이 8강전 시작부터 11점 하이런을 터트리면서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영훈이 매섭게 반격에 나서면서 승부의 반전이 일어났다.

이영훈은 1이닝부터 5-2-2-1 연속득점을 올리며 10:12로 쫓아갔다. 6이닝에서 2점을 보태 12:12 동점을 만든 이영훈은 7이닝에서 다시 2점을 득점해 세트포인트에 선착했다.

하지만, 이영훈이 세트포인트 득점에 실패하면서 강동궁이 곧바로 남은 3점을 득점, 1세트는 7이닝 만에 14:15로 끝났다. (0-1)

준결승전에서 이영훈과 대결하는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   사진=고양/김민영 기자
준결승전에서 이영훈과 대결하는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 사진=고양/김민영 기자

1세트를 아깝게 내줬지만 이영훈은 2세트 1이닝부터 7득점을 올리며 기선을 잡았다. 9:4로 앞선 8이닝에서 2점을 보탠 이영훈은 강동궁이 11:9까지 쫓아오자 9이닝 공격에서 4점을 득점하고 15:9로 승리, 세트스코어 1-1 동점을 만들었다.

3세트 초반에 8:3까지 앞섰던 이영훈은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9:9 동점에 이어 9:12로 역전을 허용했다. 다행히 14이닝에서 5점을 득점하면서 14:13으로 다시 뒤집었고, 16이닝에서 세트포인트를 득점하며 15:13으로 신승을 거뒀다.

이영훈은 3세트까지 모두 강동궁보다 먼저 세트포인트에 도착할 정도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세트스코어 2-1로 앞서기까지 해 조심스럽게 승리가 점쳐지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영훈은 4세트 4이닝에서 8점짜리 한 방으로 12:5를 만들어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 준결승전까지 3점이 남은 상황. 

그러나 물러설 곳 없던 강동궁이 5이닝부터 1-5-1-3 집중타를 터트려 15점을 먼저 마무리하면서 8이닝 만에 13:15로 4세트를 내주고 아쉽게 2-2 동점을 허용했다.

마지막 5세트 승부는 더 치열했다. 이영훈이 1이닝 2득점과 2이닝 6득점으로 8:0으로 치고 나가자 강동궁이 곧바로 하이런 10점을 맞받아쳤다. 순식간에 8:10으로 전세가 뒤집혔지만, 이영훈은 곧장 3이닝 공격에서 대거 6득점을 올려 14:10을 만들었다.

이영훈은 1, 2, 3세트에 이어서 5세트 역시 세트포인트에 먼저 도달했고, 4이닝 타석에서 매치포인트를 득점, 15:10으로 5세트를 승리하고 끝내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영훈은 아마추어 시절 20대 중반의 나이로 3쿠션 당구월드컵 8강에 올라가면서 촉망을 받던 기대주였다. 당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큐를 잡아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몇 년 전에는 당시에 대대 28점을 쳤던 아버지 이철호 씨와 함께 김경률 추모배 클럽팀 3쿠션대회에 나가 공동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프로당구 원년에 전향한 이영훈은 첫 시즌에 두 차례 8강에 올라가며 활약했고, 이듬해 시작된 팀리그 첫 시즌에 크라운해태에서 뛰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팀에서 나오게 된 이영훈은 이번 시즌 4차 투어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데 힘입어 처음 월드챔피언십에 입성하게 됐다.

월드챔피언십 준결승 진출에 성공한 이영훈은 10일 오후 4시에 옛 팀 동료인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와 결승행을 다툰다. 마르티네스는 앞서 열린 8강전에서 김영섭을 3-2로 꺾고 준결승에 올라왔다.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사파타와 강동궁을 꺾은 이영훈이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또 한 번 이변을 연출하며 결승에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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