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 투어 시즌 4차전 '휴온스 PB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사진=이용휘 기자
프로당구 투어 시즌 4차전 '휴온스 PB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사진=이용휘 기자

모든 당구선수에게는 막연한 꿈이 있다. 

토너먼트를 즐기고 상대방과 경쟁에서 이겨 좋은 선수로 인정을 받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만족감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선수들이 꾸는 꿈이다.

목표를 이룬다 해도 주어지는 보상이 크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이 꿈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 큐백을 어깨에 메고 때마다 전국을 다녔다.

이렇게 한 번 시작된 꿈은 쉽게 지지 않는다. 현실의 부대낌으로 인해 잠시 큐를 놓기는 해도 대부분 완전히 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생활이 안정되면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와서 큐를 잡고 경쟁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대부분의 당구선수가 그렇다.

어떤 선수들은 만나보면 당구가 그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련과 경쟁에 몰입한다.

응당 선수라면 '올인'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안타깝게도 당구계의 환경이 모든 것을 내던질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현실은 그렇다고 해도 꿈을 위해 큐를 놓을 수 없는 선수들은 지금까지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 

70년대부터 활동했던 원로 당구선수부터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는 반세기 동안에 큐를 잡은 모든 당구선수가 이 '보상 없는 꿈'에 평생을 바쳤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선수 활동의 시작점부터 발생하는 대회 출전 비용부터 모든 경제적 부담은 오롯이 선수에게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운동선수는 어느 정도 수준의 실력이 되면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서 애초에 토너먼트와 경쟁이라는 일차적 목표에서 발생하는 지출은 상쇄돼야만 선수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당구는 선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적인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전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몇 명의 선수만 연명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수십 년을 버텨왔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두 선수의 몫이었다.

사상 첫 준우승을 차지한 김영섭.  사진=이용휘 기자
사상 첫 준우승을 차지한 김영섭. 사진=이용휘 기자

지난 밤에 만 47세의 노장 김영섭 선수가 프로당구(PBA) 투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5년이나 꾼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지난 세월 겪었던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파이널까지 올라갔기에 감동이 느껴졌다.

19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얻었던 그는 몸이 아파도 쉬지 않았고,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도 결코 큐를 접지 않았다.

갓난아기를 양육해야 하는 순간에는 잠시 꿈을 뒤로 미루고 어머니와 함께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현실을 극복했고, 이후 당구클럽을 운영하거나 매니저로 일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프로 출범과 동시에 PBA로 이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4년간 22번 투어에 출전하며 4강에 한 차례 오르고 이번에 준우승까지 차지하며 총 54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비록 억대 상금은 받지 못했지만, 일차적인 비용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는 있게 됐다는 점은 다행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룸에서 그가 말한 "환경이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당구가 좋아서 친 거다. 단지 사고를 당해서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있고,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점이 힘들었을 뿐이다"라는 말은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실제 당구선수들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선수 생활을 한다. 어려워도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해법을 찾아 꿋꿋하게 훈련하고 경쟁한다.

한국 당구의 전설로 남은 고 이상천 회장이나 고 김경률 선수, 현역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선수들 모두 이렇게 성실하게 생활하며 막연한 꿈을 현실로 이루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 당구는 이렇게 스스로 움직인 선수들의 희생으로 성장했고, 지금의 프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4차 투어 우승자 다비드 마르티네스(오른쪽)와 준우승자 김영섭.  사진=이용휘 기자
4차 투어 우승자 다비드 마르티네스(오른쪽)와 준우승자 김영섭. 사진=이용휘 기자

이번 김영섭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지난 2019년에 PBA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대한당구연맹(KBF)은 해마다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지만, 일종의 투자자나 다름없는 선수들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PBA로 이적한 선수나 KBF에 남아 있기로 한 선수나 당구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했다.

당시 KBF가 징계를 결정하자 어떤 고참 선수는 "우리가 먹고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체계나 잡아 주고서 징계를 해야지. 연맹이 자기 밥그릇 뺏길까 봐 이제 선수들 생명까지 끊는다"라고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선수 입장에서는 상금이 큰 PBA 투어나 상금이 적어도 꿈을 이뤄가며 만족할 수 있는 KBF와 UMB(세계캐롬연맹) 모두 뛰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양측의 투어를 모두 참가하면서 발생하는 비용도 당분간은 연맹의 지원이 아니라 선수 자신이 모두 부담하게 되지만,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두길 원했다.

선수가 체력과 경제적인 여력이 된다면 양측을 모두 활동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한쪽에 집중해서 나름대로 목표를 향해가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체계가 잡힐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또한, 양 협회가 인력과 예산을 나눠서 현재 1부 투어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를 2부와 3부, 4부까지 넓히는 방향의 시스템 구상도 기대됐다.

그러나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내부적으로 우려와 불신을 낳으면서 안타깝게도 출범 당시와 출범 이후 1차 상생협약이 모두 결렬됐다.

이제 PBA와 KBF의 상생을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협회는 선수가 훈련할 수 있는 체계와 보상에 집중하고, 당구계는 '프로당구'라는 브랜드 메이킹에 모두 힘을 보탤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롭게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당구의 선순환 시스템이 완성돼서 김영섭 선수처럼 꿋꿋하게 경쟁하는 많은 선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체계가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기를 바란다.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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