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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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되게 온순해요”

인터뷰 내내 배시시 웃던 진혜주(27, 대구)는 그동안 대회장에서 봤던 진혜주가 아니었다. 테이블 앞에서 긴장된 얼굴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던 진혜주는 없었다. 

진혜주의 별명은 ‘하이에나’다. 기회만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주워 먹고야 만다. 그래서 진혜주 앞에서는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된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진혜주가 순식간에 대회를 휩쓸며 또다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올해 열린 두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것.

7월에 개최된 ‘2022 정읍전국당구선수권대회’와 8월에 열린 ‘2022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에서 각각 서서아(전남)와 임윤미(서울시청)를 꺾고 최종 우승을 거뒀다. 

포켓볼을 너무 사랑하는 반전매력의 진혜주를 <빌리어즈>에서 만나 샅샅이 파혜쳐 보았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먼저 연속 우승 축하한다. 기대했었나?

솔직히 운이 좋았다. 언제든 1등은 '실력+운'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얼마전까지 슬럼프로 너무 힘들어서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8강을 목표로 대회에 출전했다. 8강 가면 한 번만 더 이겨보자, 4강 가면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러면서 나를 다독여서 결승까지 갔다. 다음 대회도 목표는 8강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자 포켓볼 선수 중 한 명이다. 진혜주는 매 대회마다 강력한 우승 후보다. 오히려 이런 편견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맞다. 그런 부담감 때문에 슬럼프도 길었던 것 같다. 꼭 입상해야 된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실제로는 예선 탈락을 하기도 하니 더 불안했던 것 같다. 

진혜주한테 슬럼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쩌다?

25살 때 갑상샘항진증 판정을 받았다. 그때 수치가 일반인보다 5배가 높았는데, 몸이 떨려서 당구를 칠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 또 그 시기에 서서아나 이우진 같은 동생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적은 또 성적대로 안 나오고.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약을 안 먹으면 심장이 빨리 뛰어서 불안이 심해진다. 그렇다보니 안 좋은 생각이 또 먼저 들고, 그게 습관처럼 되면서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이 됐다. 26살 때까지 진짜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극복했나?

지금은 약을 먹으면서 조절하고 있다.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서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데, 다행히 약으로 조절하면서 좋아져서 다시 대회도 나가게 됐다. 몸이 안 떨리니까 멘탈적으로도 좀 좋아졌고, 혼자서 책도 보고 심리 상담도 받으면서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렇게 대화할 때와 시합할 때의 눈빛과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시합이 아닐 때는 되게 온순한 성격인데, 당구 칠 때는 눈빛이 아예 변한다. 아마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온순? 우리가 아는 진혜주와 잘 안 어울리는 단어다. 

시합 직전까지는 웃기도 잘하고 다른 선수들하고도 잘 지내는 편이다. 오히려 시합 전에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덜 예민한 것 같은데, 시합만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변하는 것 같다. 

승리욕이 강한 만큼 지면 스트레스도 클 것 같은데. 

맞다. 6학년 때 처음으로 애니콜대회에 나갔는데 20점인가 점수를 내야 하는데, 내가 9점밖에 점수를 못 냈다. 1년 동안 연습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9점밖에 못 냈다는 거에 너무 크게 상심을 해서 1시간 동안 울었다. 

코리아당구그랑프리 때 이우진이 다 이긴 경기를 내가 뒤집어서 뺏은 적이 있다. 그때 우진이가 주저앉아서 울었는데,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시합에서 지면 많이 우나?

시합 끝나면 엄청 운다. 내 자신에게 너무 속상해서 그런거다. 연습한 만큼, 그동안 준비한 만큼 다 못 했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마음이 크다. 한번은 대회에서 국빈 언니한테 졌는데, 너무 속상해서 코피를 10분 넘게 쏟으면서 운 적도 있다. 바닥이 피로 흥건해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시합에서 지면 혼자 속이 많이 상한다. 

코리아당구그랑프리에서도 두 번 우승을 했다. 말 나온 김에 그때 이야기도 듣고 싶다. 

그때가 슬럼프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당구를 계속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참가하게 됐다. 더군다나 두 번이나 우승을 하면서 아직은 내가 당구를 놓을 때가 아닌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포켓볼은 방송에 노출이 거의 안 되고 있는데 TV로 중계되면서 대중에게 포켓볼의 재미를 보여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때 코리아당구그랑프리에서 포켓볼 선수들이 정말 즐기고 있는 게 보였다. 단순히 경쟁을 하는게 아닌거 같았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3쿠션 선수들보다 포켓볼 선수들이 더 끼가 많은 것 같다. 등장 때부터 서로 재밌게 하려고 경쟁이 치열했다. 그때 여자 대회만 해서 남자 선수들이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우리나라 포켓볼 남자 선수들이 멋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보여줄 기회가 없어서 너무 아쉽다. 

여자 포켓볼 서바이벌 대회가 여자 3쿠션 대회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아마도 평소에 포켓볼이 수비가 치열한데, 서바이벌 특성상 공격 위주의 경기를 하다보니 보는 재미가 더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진혜주가 무려 두 번이나 우승을 했다. 

우진이한테 엄청 미안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우진 선수가 큰 차이로 1위를 하고 있었는데, 경기 룰 때문에 내가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한 명이 탈락하면 점수가 2배가 되고, 또 한 명이 더 빠지면 3배가 되는 방식이었다. 우진이가 공을 한 다섯 개 정도 실수를 했는데, 하필 그게 다 점수볼이라 내가 마지막 세트를 다 가져오면서 점수가 한 순간에 뒤집혔다. 

나는 경기가 끝난 줄도 모르고 한 세트를 더 준비하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이겼다고 알려줘서 그때서야 이긴 줄 알았다. 그런데 우진이가 갑자기 주저앉아서 우는 바람에 너무 미안했다.

같은 선수 입장에서 내가 너무 운 좋게 이긴 경기라 우진이 마음을 너무 잘 알 수 있어서 우진이가 우는 모습에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이겨서 좋긴 좋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포켓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내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이 우연히 TV를 보는데 포켓볼이 나오고 있었다. 마침 옆에 있던 분이 포켓볼이 여자가 하기 좋은 스포츠고, 또 앞으로 더 성장할 것 같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저와 제 쌍둥이 남동생 주영이에게 포켓볼을 배우게 하셨다. 

쌍둥이 남동생이 있나?

형제가 4남매다. 같이 시작한 동생은 스무살이 되면서 당구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더니 그만 두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은 다른 전문직업을 갖고 있다. 

진혜주가 너무 잘해서 스트레스를 받은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동생은 부모님이 레슨도 받게 해줬는데 오히려 혼자 연습한 내가 성적을 잘 내니까 비교가 많이 됐던 것 같다. 

그렇다고 주영이가 포켓볼을 못 치는 건 아니었다. 실력은 좋은 데 시합에서 실력을 다 못 보여주는 게 좀 아쉬웠다. 둘이 게임을 치면 내가 질 때가 많아서 맨날 걔 때문에 울고불고하는데, 정작 대회에서는 주영이가 너무 성적이 안 나와서 진짜 아쉬웠다. 

의외로 세계대회 입상 경력이 없다. 

세계 대회는 한 10번 정도 나간 것 같다. 그 중에 암웨이배에서 16강, 세계10볼대회에서 16강에 들었던 게 최고 성적이다. 세계대회는 시드가 없으면 개인 비용으로 참가해야 해서 많이는 못 나가고 시드 받을 때만 나갔다.

형제가 4명이나 되니까 집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오히려 동생이 레슨을 받을 때도 나는 괜찮다고 레슨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의외다

게임을 이기는 것에 대한 욕심은 굉장히 많은 데, 그 외에는 욕심이 없는 것 같다. 

포켓볼이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서 부모님이 실망하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국내대회에서 성적을 많이 내니까 부모님은 그걸 자랑하는 재미로 사시는 것 같다. 대학도 포켓볼 덕분에 한체대에 가고, 또 대학원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부모님은 나름 만족하시는 것 같다. 

3쿠션이 프로화되면서 상금도 많고, 이슈도 많이 되고 있다. 덩달아 포켓볼 선수 중에 몇몇은 프로 3쿠션 선수로 전향을 하기도 했는데, 전향을 생각하거나 회의가 들거나 하지는 않나?

그러기에는 내가 포켓볼을 너무 사랑한다. 돈 때문에 종목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남아서 포켓볼을 치는 선수들은 진짜 포켓볼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종목을 바꾸는 것보다 포켓볼이 잘 되는 게 우리한테는 제일 좋은 일이다. 포켓볼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27살이면 경제적인 것도 생각해야 할 나이다. 

맞다. 27살이 되고 미래를 더 생각하게 됐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이유도 지도자의 길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대회가 한 달에 한 번씩은 있고, 또 대구당구연맹 소속 선수여서 월급도 나온다. 그걸로 일단 해결은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랭킹 10위 안에는 들어야 이런 기회도 얻을 수 있어서 선수들끼리 나름 엄청 치열하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진혜주의 장점은 무엇인가?

장점은 승부욕과 근성이다. 연습을 최대한 안 빠지려고 하는 근성과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단점은?

약한 마음이다. 잘 흔들리고, 이겨도 미안할 때가 많다. 특히 상대 선수가 울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한번은 대만에서 하는 세계대회 선발전을 하는데 김보건 선수와 대결 중에 내가 4-1로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보건이가 내가 치는 도중에 인공눈물을 넣었는데, 무심코 뒤돌아봤다가 보건이가 울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는 그 정도로 속상했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스코어가 뒤집히고 말았다. 

선수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면?

자스민 오스천이라는 여자 세계선수권에 이름이 있는 유명한 선수가 있는데, 암웨이배에서 한 번 이긴 적이 있다. 그때 5-1로 이기고 있었는데, 한 순간 방심한 사이 5-5까지 따라잡혔다. 너무 순식간이라 너무 당황했는데, 다행히 기회가 와서 이겼다. 그 시합에서 정말 단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꼭 경기를 해보고 싶은 선수는?

첸시밍.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다. 구리에서 열린 세계대회 때 처음으로 눈 앞에서 치는 모습을 봤는데, 확실히 공을 잘 알고 있어서 포지션이 그려지는 게 달랐다. 힘 조절이나 수비, 초이스 이런 게 확실히 한 수 위였다. 

어떤 당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실력이 좋은 선수. 거기에 인성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아닐까. 

앞으로의 목표는?

일단 세계대회에서 다시 본선에 들어가는 것. 본선에 들어가면 1등이라고 목표가 바뀔 것 같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서 한 단계씩 올라가 보고 싶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도전해볼 예정이다. 올해는 국내대회에 좀 더 집중하고 내년부터는 세계대회에 도전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구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혜주가 아직 살아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다. 당구에는 포켓볼이라는 매력적인 종목도 있으니 포켓볼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좀 더 나눠주시면 좋겠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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