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enHendry

출생 : 1969년 1월 13일(45세)
국적 : 스코틀랜드
별명 :  킹 오브 크루시블, 골든 보이, 마에스트로, 아이스맨, 위대한 자
프로 활동 기간 : 1985~2012년
최고 랭킹 : 1위(9년)
우승 상금 : 10,000,000 파운드
최고 브레이크 : 147(11회)
센추리 브레이크 : 775회

토너먼트 우승
랭킹 토너먼트 : 36회
비랭킹 토너먼트 : 38회
월드 챔피언 : 1990, 1992, 1993, 1994, 1995, 1996, 1999

스티븐 고든 헨드리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프로 스누커 선수로, 1985년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프로 스누커 선수로 데뷔한 후 1990년 스물한 살 때  스누커 역사상 가장 어린 스누커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총 일곱 번의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그중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동안 연속으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 그 누구도 그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또한 그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8년 동안 계속해서 스누커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그 후 좀처럼 재탈환을 못하다 결국 2006/2007 시즌에 다시금 월드 랭킹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그의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775개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하며 스누커 선수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임을 증명하였다.

그는 12개의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로니 오설리번 다음으로 11개의 맥시멈 브레이를 기록하였으며, 2012년 5월부터는 은퇴 후 BBC 스누커 해설자로 변신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스티븐 헨드리가 스누커 당구를 접하게 된 계기는 열두 살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어린이 사이즈 스누커 테이블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후 그는 그 테이블에서 스누커를 치기 시작했으며, 스누커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어린이 사이즈의 스누커 테이블을 선물받은 지 2년 만에 그는 U-16 챔피언십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BBC의 주니어 버전 Pot Black에도 출연했다.

그다음 해 그는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참가해 우승을 손에 넣었으며, 세계 아마추어 챔피언십의 최연소 참가자이기도 했다.

1985년 다시 한번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한 그는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로 전향해 스누커 선수로서의 그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그는 단지 열여섯 살이었으며, 최연소 프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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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프로 스누커 선수

그는 프로로 전향한 첫 시즌에 Mercantile Credit Classic에서 32강에 올랐고, 최연소 스코틀랜드 프로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또한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최연소 선수기이도 했는데, 이 기록은 2012년 루카 브르셀이 17살 하고도 한 달이 되어서 자격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그의 첫 월드 챔피언십에서 그는 윌리 쏜에게 8-10으로 패했으나 경기장 밖에서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다음 시즌에도 그는 스코틀랜드 프로페셔널 챔피언십 타이틀을 유지했고, 그랑프리와 월드 챔피언십의 준준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으며,  작년에 32강 진출로 만족해야 했던 Mercantile Credit Classic에는 준결승전까지 올라갔다.

마이크 홀레트와 한 팀을 결성해 올해의 세계 복식 챔피언십에 참가한 헨드리는 2년 연속으로 타이틀을 유지했으며, 1987/88 시즌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데니스 타일러를 10-7로 물리친 그는 그의 생애 첫 월드 랭킹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연이어 그는 브리티시 오픈과 다른 3개의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스코틀랜드 프로페셔널 챔피언십과 호주 마스터스의 타이틀을 계속 유지해 시즌이 끝날 무렵 그는 세계 랭킹 4위에 올랐고, 올해의 BBC 스코틀랜드 스포츠인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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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 & 세계 랭킹 1위

1989/90 시즌이 되자 스누커는 스티븐 헨드리의 통치 아래 들어왔다. 그해 그는 UK 챔피언십, 두바이 클래식, 아시아 오픈, 스코틀랜드 마스터스, 웸블리 마스터스 우승을 싹쓸이했으며,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지미 화이트를 18-12로 이기며 21살의 나이로 그의 첫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고 월드 랭킹 정상에 올랐다.

다음 시즌에도 그는 한 시즌 동안 5개의 월드 랭킹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마이크 홀레트를 7-0, 8-2, 9-8로 이기며 마스터스 대회의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하지만 월드 챔피언십의 준결승에서 스티브 제임스에게 패하며 월드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992년 그는 다시금 월드 타이틀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지미 화이트에게 8-14로 지고 있던 그는 10프레임을 연속해서 이기며 18-14로 화이트를 꺾었으며 그 기세를 몰아 그랑프리와 웨일스 오픈의 승리도 쟁취하였다.

그다음에 열린 마스터스에서 또 우승한 그는 그 대회에서 그의 첫 147 맥시멈 브레이크를 성공시켰다.

1년 후, 그는 자신의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과 다섯 개의 연속된 마스터스의 왕관을 모두 차지했고, 아무도 그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다음 시즌 역시 그는 월드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 그는 여전히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1997년 리버풀 빅토이라 자선 챌린지 결승전에서의 로니 오설리번과의 경기는 단연 최고의 경기였다.

100, 129, 136의 브레이크로 리드하던 스티븐 헨드리가 6-1, 8-2로 리드해 나가자 로니 오설리번이 다음 프레임을 연속해서 이기며 8-8 동점을 만들어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결국 게임을 결정지은 것은 마지막 프레임이었다.

헨드리는 빨간 공을 포팅하려고 했지만 블랙까지 같이 떨어뜨렸으나 결국 147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하며 대회의 승자가 되었다. 많은 스누커 팬들은 이 결승전을 두고두고 최고의 스누커 경기라고 평가했으며, 윌리 쏜 역시 “그동안 내가 본 경기 중 단연 최고의 경기”라고 평가하였다.

1994년 UK 파이널에서 헨드리는 7개의 센추리를 만들며 켄 도허티를 5-0으로 이겼으며, 그의 성공은 1995/96 시즌에도 계속되었다. 월드 챔피언십을 포함해 그는 6개의 월드 크라운을 달성했다.

이것은 레이 리어든과 스티브 데이비스가 낸 업적과 같은 것이었다. 1997년 그는 올해의 BBC 스코틀랜드 스포츠인으로 두 번째 선정되었고, 또 다른 3개의 랭킹 타이틀을 그의 컬렉션에 추가했다.

하지만 1997/98 시즌에 접어들자 스티븐 헨드리의 지배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시즌 동안 대만 마스터스 단 한 대회에서만 우승했을 뿐이었다.

1998년에 열린 웸블리 마스터스의 결승전에서 그의 절친인 마크 윌리엄스를 9-6으로 리드하고 있었고, 그는 승리를 위해 단 한 프레임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기회를 허비했고 결국 시합은 9-10으로 마크 윌리엄스의 승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그는 1990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1위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StephenHendry

헨드리의 1998/99 시즌은 UK 챔피언십의 첫 라운드에서 비시드자인 마커스 캠벨에게 0-9로 패하며 당황스럽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내 제 기량을 찾은 헨드리는 스코틀랜드 오픈과 그의 일곱 번째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쥐며 다시금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준결승전에서 로니 오설리번을 17-13으로 꺾었으며 미래의 더블 월드 챔피언이 될 마크 윌리엄스를 18-11로 확실히 제압하고는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헨드리는 점점 그의 기량을 잃어가고 있었다. 비록 첫 세 개의 토너먼트 중 2개 토너먼트 우승, 다섯 번째 147 브레이크 작성, 랭킹 파이널에서 첫 맥시멈 브레이크 등을 기록하며 1999/2000 시즌을 강력하게 시작했지만 의외로 2000년 월드 챔피언십 첫 라운드에서는 대회 첫 출전자인 스튜어트 빙햄에게 패하고 말았다.

2000/2001 시즌 역시 별다를 바 없었다. 헨드리의 높은 수준에 비하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1988/89 시즌 이래 처음으로 랭킹 이벤트 우승을 놓쳤으며 단 한 번의 결승 진출이 유일한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러피언 오픈에 우승하며 다시 한 번 8번째 월드 챔피언이 되기를 꿈꿨다. 월드 챔피언십의 준결승전에서 비록 디펜딩 챔피언인 오설리번을 17-13으로 꺾었으나 결승전에서 피터 엡돈에게 17-18로 아깝게 지고 말았다.

스티븐 헨드리는 월드 챔피언 타이틀과 세계 랭킹 1위 재탈환을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수많은 도전 끝에 2007/2008 시즌 39살의 헨드리는 예상치 않게 그의 12번째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에 올랐고 1992년 테리 그리피스 이후 토너먼트 준결승에 오른 가장 나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

2009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헨드리는 우승과 상관없이 뜻깊은 기록을 남겼는데, 바로 크루시블에서 1000프레임의 경기를 이긴 것.

헨드리는 숀 머피에게 11-13으로 패하며 월드 챔피언십에서 탈락했지만 147 맥시멈 브레이크를 작성해 40세의 나이에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헨드리는 결국 랭킹 10위로 밀려나게 되었고, 1987/88 시즌 이래 처음으로 톱 8위 밖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2010/2011 시즌 UK 챔피언십 도중 헨드리는 자신의 기량에 대해 좌절감을 표했으며, 그는 지난 10년 동안 ‘입스증’으로 고통받고 있어 큐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입스증은 골프에서 유래된 증상으로 퍼팅이나 샷을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증세로,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기도 한다. 그동안 간단한 샷에서도 미스가 나는 이유가 이 증상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헨드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 웨일스 오픈에서 그의 열 번째 147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하지만 모든 대회의 두 번째 라운드 이상 올라갈 수 없었던 헨드리는 결국 랭킹 17위에 랭크되었다.

톱 16위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87/88 시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호주 골드필드 오픈의 두 번째 라운드에 오르며 다시금 톱 16위 재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9월에 열린 상하이 마스터스의 첫 라운드에서 로버트 밀킨스에게 1-5로 패한 그는 랭킹 21위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특히 이것은 헨드리가 23년 만에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며, 더불어 모든 랭킹 이벤트에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예선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지막 대회

27회 연속으로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게 된 그는 개막식 날 스튜어트 빙햄과의 경기에서 그의 크루시블에서의 세 번째 맥시멈 브레이크이자, 그의 총 11번째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이는 로니 오설리번이 2004년 웨일스 오픈에서 12번째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공동 기록으로 남았다.

빙햄을 10-4로 이긴 그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존 히긴스를 13-4로 물리치며 준준결승에 올랐지만 맥과이어에게 2-13으로 지자 즉시 그 자리에서 은퇴를 발표하였다.

최근 몇 년간 그의 경기 수준에 대한 불만과 대회와 상업적인 것, 그리고 개인적인 것들 사이에서의 균형잡기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이미 3개월 전부터 준비된 은퇴 발표였다.

그는 연속적인 싱글 토너먼트 우승, 가장 긴 연속 우승 기록, 한 대회에서 최대 센추리 브레이크 기록(7), 한 토너먼트에서 최고 센추리 작성(16), 최장기간 월드 랭킹 1위 수성, 가장 많은 센추리 기록(775), 그리고 가장 많은 대회 상금과 크루시블에서 1개 이상의 맥시멈을 기록한 두 번째 선수이며, 선수권 대회에서 맥시멈을 기록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또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가장 오래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기록(27회)을 가지고 있으며, 23시즌 동안 월드 랭킹 톱 16위에 오른 깨지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헨드리는 안정적인 페이스로 경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는 포팅의 보편적인 전략을 소개했다. 헨드리의 롱 포팅 기술은 그의 성공의 핵심 기술로, 그는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는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포팅을 선호했으며, 레드가 오픈 되기를 기다리기 보다 브레이크에서 이미 레드를 오픈하는 것을 시도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700개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 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으나 그의 경력 말기 무렵에는 브레이크-빌딩 수준과 롱 포팅이 감소했으며, 그의 공격적인 본능은 상대편에게 과거보다 더 많은 기회를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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