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국가대항전 ‘팀챔피언십’... 세계 최강 한국의 여정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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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쿠션 국가대항전 ‘팀챔피언십’... 세계 최강 한국의 여정①
  • 김도하 기자
  • 승인 2022.04.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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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3쿠션 세계 최강'으로 성장하는 과정... '팀챔피언십 역사'에 담겨

2008년 '김경률-최성원'의 팀챔피언십 4강 이후 한국과 세계 캐롬 무대 '지각변동'
세계팀3쿠션선수권대회는 1981년 멕시코에서 처음 대회가 열렸고, 1990년부터 독일 피어젠에서 연 1회 개최되는 세계선수권으로 2019년까지 매년 개최되었다.  사진=Ton Smilde
세계팀3쿠션선수권대회는 1981년 멕시코에서 처음 대회가 열렸고, 1990년부터 독일 피어젠에서 연 1회 개최되는 세계선수권으로 2019년까지 매년 개최되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93년 열린 세계팀3쿠션선수권대회 전경, 개회식, 레이몽 클루망, 네덜란드 대표 딕 야스퍼스(왼쪽), 팀챔피언십에서 스웨덴 대표로 활약한 '부자' 레나르트 블롬달과 토브욘 블롬달. 사진=Ton Smilde

[빌리어즈=김도하 기자] 세계캐롬연맹(UMB)에서 주최하는 캐롬 3쿠션 종목 국가대항전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이하 팀챔피언십)’에서 한국은 모름지기 세계 최강국이다.

최근 5년간 성적을 합산해 산정하는 랭킹에서 한국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고, 최근 10년 동안 벨기에, 터키,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강호들과 치열한 대결을 통해 한국 당구의 위세를 전 세계에 떨치고 있다.

팀챔피언십의 역사에는 한국 3쿠션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은 한국에 3쿠션이 전파되는 것과 동시에 캐롬 3쿠션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처음으로 팀챔피언십 3위에 입상한 2008년 이후 한국에서는 서서히 3쿠션 붐이 일어났고, 고 김경률과 최성원 등 국가대표 선수들의 맹활약이 견인차 역할을 하며 3쿠션의 세계적인 중흥을 이끌었다.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팀챔피언십의 역사와 함께 한국이 세계 최강에 오르는 여정을 돌아보자.
 

팀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일본... '블롬달 부자'와 초기 팀챔피언십 우승 다퉈

고바야시 노부아키와 고모리 준이치 등 7, 80년대를 대표하는 당대 스타플레이어를 앞세워 일본은 팀챔피언십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멕시코시티에서 1981년 열린 제1회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은 ‘황제’ 레이몽 클루망과 루도 딜리스의 벨기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4년 후 일본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2회 대회에서도 2연패를 달성했다. 결승에서 일본과 대결한 스웨덴은 훗날 ‘3쿠션 사대천왕’으로 성장한 토브욘 블롬달(당시 23세)이 그의 아버지 레나르트 블롬달과 함께 출전해 준우승을 합작했다.

‘블롬달 부자’는 초창기 팀챔피언십에서 일본과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2회 대회부터 5회 대회까지 블롬달 부자는 4차례 연속 결승에 올라 2번 우승을 차지했다.

198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3회 대회에서 블롬달 부자는 미국을 꺾고 우승했고, 3년 후인 1990년 독일 피어젠에서 열린 4회 대회 결승에서는 일본의 가이 조지-요시하라 요시오에게 져 준우승에 그쳤다.

다음해 1991년에 다시 결승에 오른 블롬달 부자는 덴마크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1993년에 3위를 차지한 이후에는 입상하지 못했고, 쌍두마차를 이루었던 초대 챔피언 일본도 1992년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일본은 1996년 준우승, 1997년에 3위를 차지한 이후 세계 무대에서 완전히 뒤로 물러났다.

초창기 팀선수권 최강국이었던 일본과 90년대부터 유럽의 강세로 끌어온 선수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본의 고모리 준이치, 고바야시 노부아키, 프레데릭 쿠드롱, 마르코 자네티, 토브욘 블롬달.  사진=Ton Smilde
초창기 팀챔피언십 최강국이었던 일본과 90년대부터 유럽의 강세로 끌어온 선수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본의 고모리 준이치, 고바야시 노부아키, 프레데릭 쿠드롱, 마르코 자네티, 토브욘 블롬달. 사진=Ton Smilde

90년대부터 매년 1회씩 개최... 독일·덴마크·네덜란드·스웨덴 등 4파전

팀챔피언십은 1990년부터 피어젠에서 매년 1회씩 열리기 시작했다. 현재의 팀챔피언십 기틀이 만들어진 것은 이때부터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2019년까지 30년 동안 매년 꼬박 대회가 열렸다.

90년대에는 블롬달의 스웨덴과 크리스티안 루돌프가 이끈 독일, 디온 넬린의 덴마크, 딕 야스퍼스의 네덜란드가 4파전을 벌였다.

독일은 1993년과 1994년, 1997년에 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1998년과 1999년에 우승한 네덜란드와 1995년, 1996년 챔피언 덴마크가 각각 두 차례씩 우승했다.

1991년 대회에서 우승했던 스웨덴은 1993년 3위, 1995년과 1999년 준우승 등의 성적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첫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클루망의 벨기에는 2004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과 함께 1, 2위를 다투고 있는 터키 역시 이 당시에는 입상 기록이 없고, 20대 초반의 유망주 다니엘 산체스가 출전한 스페인은 1996년에 3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팀챔피언십 트로피를 받았다.

산체스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1998년에 스페인은 처음 팀챔피언십 결승 무대를 밟았다. 아쉽게도 스페인은 당대 최강의 듀오인 네덜란드 딕 야스퍼스-레이몽 버그만에게 져 준우승에 그쳤다.

2000년대 세계 당구계의 중심이 된 선수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팀선수권 5연패 듀오' 스웨덴의 토브욘 블롬달과 마카엘 닐손, 대회 장면, 터키의 세마 사이그너와 아드난 윅셀, 벨기에 요제프 필리품과 프란시스 포톤, '당구 황제' 레이몽 클루망과 3쿠션 사대천왕.  사진=Ton Smilde
2000년대 세계 당구계의 중심이 된 선수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팀챔피언십 5연패 듀오' 스웨덴의 토브욘 블롬달과 마카엘 닐손, 대회 장면, 터키의 세마 사이그너와 아드난 윅셀, 벨기에 요제프 필리품과 프란시스 포톤, '당구 황제' 레이몽 클루망과 3쿠션 사대천왕. 사진=Ton Smilde

2000년대 블롬달과 닐센의 스웨덴 '독주'... 터키·벨기에·한국 신흥 강국 출현

스웨덴은 2000년대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경쟁국을 모조리 제압하고 팀챔피언십 최강국에 올라섰다.

블롬달과 미카엘 닐손 듀오는 1999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합작한 후 2000년과 2001년에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스웨덴의 독주를 예고했다.

당시 팀챔피언십은 2명의 선수가 상대방과 일 대 일 15점 치기 세트제로 동시에 경기를 치르고, 더 많은 세트를 따내거나 애버리지가 앞서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블롬달과 닐손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블롬달이 지면 닐손이 더 많이 세트를 획득했고, 반대로 닐손이 부진할 때는 블롬달이 잘했다.

스웨덴은 블롬달-닐손의 활약에 힘입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연속 팀챔피언십을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터키는 세미 사이그너와 타이푼 타스데미르가 나온 2003년과 2004년에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으나 스웨덴을 넘지 못했고, 2002년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독일도 스웨덴, 네덜란드의 벽을 계속 넘지 못했다.

이 시기에 터키는 스웨덴과 견줄 만한 세계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도 터키당구연맹 내부의 문제로 인해 선수 선발에 갈등을 빚어 팀챔피언십 성적이 저조했다.

세미 사이그너와 타이푼 타스데미르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내세워 두 차례 팀챔피언십을 우승했던 터키는 연맹 집행부와 선수간의 불화로 번져 성적이 좋지 못했다.

터키는 2006년 4강에 한 차례 오르긴 했지만, 2009년까지 대부분 8강에서 패해 고배를 마셨다.

터키처럼 최강 군단을 자랑하던 벨기에도 유독 팀챔피언십 성적이 좋지 않았다. 프레데릭 쿠드롱이 본격적으로 3쿠션 세계무대에 나오기 시작한 벨기에는 2002년에 클루망-쿠드롱의 ‘황제팀’을 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예선리그에서 일본에 패해 탈락했다. 벨기에는 쿠드롱을 비롯해 에디 멕스, 롤랜드 포툼, 에디 레펜스, 피터 더베커 등 가장 많은 우수 선수를 보유하고도 2010년 전까지 준우승 2회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터키와 벨기에는 2010년 이후로 넘어가면서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선다.

2000년대에 계속되던 스웨덴 전성시대는 터키, 벨기에, 그리고 아시아의 신흥 강국 한국이 등장하면서 지각변동이 크게 일어났다.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 3쿠션 무대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국가대표 김경률, 황득희, 최성원, 독일의 마틴 혼, 스페인의 다니엘 산체스,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사진=Ton Smilde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 3쿠션 무대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국가대표 김경률, 황득희, 최성원, 독일의 마틴 혼, 스페인의 다니엘 산체스,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사진=Ton Smilde

韓 2000년에 처음 팀챔피언십 출전... 2008년 '김경률-최성원' 첫 4강 입상

한국은 2000년부터 팀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홍기와 김석윤이 국가대표로 처음 팀챔피언십에 데뷔했지만 예선 리그에서 탈락했고, 2002년에 이승진-임윤수를 선발해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예선 리그에서 한국은 같은 조에 편성된 페루가 불참하면서 강호 터키와 두 경기를 치러 본선 진출을 다투었다.

첫 경기에서는 터키에 0-2(이승진 0-2 윅셀, 임윤수 0-2 타스데미르)로 완패했던 한국은 두 번째 경기에서 2-0(이승진 2-1 타스데미르, 임윤수 2-1 윅셀)으로 승리를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트 전적에서 4-6으로 뒤지면서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3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황득희와 김석윤이 출전해 첫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에 0-2(황득희 0-2 기르하드 코스티스탄스키, 김석윤 0-2 안드레아스 에플러)로 패했고, 다음 경기에서는 이집트를 2-0(황득희 2-0 이합 엘 메저리, 김석윤 2-0 마지드 엘리아스)으로 이겼다. 본선에는 오르지 못해 종합순위 13위로 대회를 마쳤다.

2005년에 다시 출전한 한국은 강호 스웨덴, 덴마크, 포르투갈 등과 대결해 이홍기와 최재동이 비교적 선전을 펼쳤지만 역시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첫 경기에서 덴마크와 대결한 한국은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홍기가 토니 칼센을 2-0(15:11, 15:13)으로 꺾었고, 최재동은 세트스코어 1-1에서 마지막 3세트를 13:15로 아깝게 졌다.

두 번째 상대는 스웨덴. 2005년 팀챔피언십은 스웨덴의 독주가 시작되었던 대회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스웨덴과 세트 전적 3-3 동점을 이루었다.

이홍기는 닐손에게 2-1(15:9, 12:15, 15:8)로 승리했고, 최재동은 블롬달과 팽팽한 접전 끝에 1-2(1:15, 15:13, 12:15)로 아쉽게 패했다.

최강팀과 모두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했던 한국은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아쉽게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포르투갈전에서 이홍기가 마누엘 코스타에게 1-2(6:15, 15:7, 4:15)로 패하고 최재동도 호르헤 데리아가에게 0-2(11:15, 13:15)로 지면서 종합순위 12위로 마무리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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