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는 딩준후이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누커 선수로 손꼽힌다.

마르코 푸. 사진제공 세계스누커협회
마르코 푸는 홍콩을 대표하는 프로 스누커 선수로, 딩준후이와 함께 아시아 최고의 스누커 선수로 꼽히고 있다. 2007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로니 오설리번과의 대결에서 로니 오설리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는 2011년 2월에 홍콩의 명예 훈장 MH(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돌아가면서 영국의 명예 훈장 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짐)를 받기도 했다.

푸는 2008년 UK 챔피언십과 2001 마스터스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3년 호주 골드필즈 오픈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랭킹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같은 해 독일 마스터스 대회와 2013 인터내셔널 챔피언십에서 준결승에 올라 그의 최고 랭킹인 월드 랭킹 6위에 올랐다.

2006년 월드챔피언십 준결승에 오른 그는 딩준후이와 제임스 와타나와 함께 월드 챔피언십에서 최고의 결과를 낸 아시아 선수이다. 마르코 푸는 프로 대회에서 300번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와 세 번의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하고 있다. 
 
데뷔

9살 때부터 스누커를 치기 시작한 푸는 15살 때까지 규칙적으로 스누커를 치지는 않았다.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과 함께 12살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한 그는 15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누커를 치기 시작해 18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홍콩빌리어드스포츠규제의회의 회장 조셉 로의 초청으로 홍콩으로 돌아와 선수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프로로 전향하기 전 푸는 1997년에 열린 월드 아마추어대회와 U21 세계스누커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놀라운 첫 시즌 성적
 
1998년 프로로 전향한 그해, 푸는 로니 오설리번과 피터 엡돈을 각각 5-2, 5-3으로 이기며 단숨에 그랑프리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최고의 컨디션의 스티븐 리를 꺾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스티븐 리는 9-2로 마르코 푸를 이기며 그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증명했다. 

푸는 결승전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월드챔피언십을 포함한 나머지 1998/1999 시즌에 열린 4개의 랭킹 토너먼트 예선에 통과하며 다음 시즌(1999/2000)에는 월드 랭킹 35위까지 올라 대부분의 랭킹 토너먼트의 주요 대진에 자동적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다음 시즌 그랑프리 대회에서 전 대회처럼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준준결승전에 진출한 그는 좋은 경기를 펼치며 단순히 그가 운이 좋은 선수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몰타 그랑프리와 스코티시 오픈의 준결승에 올라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2001 시즌에는 월드 랭킹 15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톱 16위 진입에 성공했다. 처음 프로로 데뷔했을 때 377위였던 그가 단 두 시즌 만에 15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그의 빠른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회마다 16강에서 연속된 패배를 겪은 그는 크리스 스몰에게 월드챔피언십 첫 라운드에서 패하며 다음 시즌에는 톱 16위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월드챔피언십을 포함한 3개의 랭킹 토너먼트에서 예선 진출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다음 시즌 동안 그의 랭킹은 27위까지 하락하고 말았으며, 이는 두 시즌 동안 그의 가장 낮은 랭킹이었다.

2002/2003 시즌은 전 시즌보다 좀 더 운이 좋았다. UK 챔피언십에서 그는 비록 세 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로니 오설리번을 9-7로 물리쳤으며 웰시 오픈의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마르코 푸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만난 스티븐 리를 5-0으로 이겼으며, 8강전에서는 로니 오설리번을 다시 한 번 5-2로 꺾었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대회 우승자인 스티븐 헨드리와 만나 4-6으로 패하고 말았다. 2003 월드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전 푸는 유러피언 오픈과 스코티시 오픈에서 모두 첫 라운드에 떨어졌고 그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게다가 월드 챔피언십의 첫 라운드에서 만난 그의 상대는 월드 랭킹 1위이자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로니 오설리번이었다. 스누커신 매거진은 그때의 경기를 ‘스누커 대회 사상 가장 위대한 예상 밖의 승리’라고 묘사했다. 시드도 받지 못한 25세의 선수가 첫 라운드에서 로니 오설리번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다.

푸는 경기 시작부터 게임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푸는 끝까지 틈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10-6으로 로니 오설리번을 꺾었다. 월드 챔피언십에 처음으로 8강까지 진출한 푸는 스티븐 리에게 7-13으로 패하며 아쉽게 발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한편, 마르코 푸는 인비테이셔널 프리미어 리그(비랭킹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랭킹 타이틀

지난 시즌 월드 챔피언십에서 8강전까지 진출한 결과 그는 2003/2004 시즌에 다시금 19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한 번의 예선전만 통과하면 대회의 메인 대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는 월드챔피언십을 제외한 모든 랭킹 토너먼트의 예선에 통과했다.

그 결과 그는 LG컵의 세 번째 라운드 진출과 웰시 오픈 준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16위로 랭크되며 2004/2005 시즌 동안 다시금 톱 16위의 위치를 회복했다.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마르코 푸는 2006 월드챔피언십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앨런 맥매너스(10-3), 스티븐 맥과이어(13-4), 캔 도허티(13-10) 등 세 명의 시드 선수를 파죽지세로 물리친 그는 준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피터 엡돈에게 마지막 세션을 빼앗긴 마르코 푸는 16-17 간발의 차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32위까지 떨어진 그를 22위로 올려놓았다. 2006/2007 시즌 동안 그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UK 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두 개의 메달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월드챔피언십에서 전년도의 기량을 다시 보여주지 못한 푸는 결국 첫 라운드에서 앤서니 해밀턴에게 3-10으로 패하고 말았다.

2007/2008 시즌 동안 마르코 푸는 드디어 첫 랭킹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998년 프로 데뷔 후 첫 출전한 그랑프리의 결승까지 진출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푸는 이후 9년 만에 다시금 그랑프리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전설적인 챔피언 존 히긴스를 녹아웃 라운드에서 5-4로 이긴 그는 8강전에서 리우 송을 5-0으로, 준결승전에서 제러드 그린을 6-5로 이긴 후 결승전에서 로니 오설리번과 맞붙었다. 첫 세션을 3-4로 끝낸 그는 마지막 프레임에서 브레이크 76점을 내며 9-6으로 승리, 처음으로 랭킹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남은 시즌 동안 푸는 UK 챔피언십 8강과 마스터스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비록 월드챔피언십 첫 라운드에서 딩준후이에게 9-10으로 졌으나 전 시즌보다 무려 13계단이나 오른 14위에 랭크되며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이는 마르코 푸가 다음 시즌 동안 시드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고, 예선전 없이도 상금 라운드에 자동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8/2009 시즌은 첫 시작부터 그리 좋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트로피에서는 32강에서 베리 호킨스에게 패하였고, 상하이 마스터스에서는 마크 셀비에게 8강에서 패했다.

게다가 그랑프리에서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만난 로니 오설리번에게 복수를 당했고, 바레인 챔피언십에서도 도미닉 데일에게 첫 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UK 챔피언십에서는 첫 라운드에 베리 호킨스를 물리치더니 매튜 스티븐스와 조 페리도 줄줄이 마르코 푸에게 패했다.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푸는 준결승전에서 2008년 월드챔피언십 준우승자인 알리 카터를 상대로 세 개의 센추리를 만들며 그를 녹아웃시키고 결승에 진출해 숀 머피와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결국 10-9로 숀 머피의 승리로 끝이 났다. 높은 긴장감으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마르코 푸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푸는 개인전 결승에서 딩준후이를 4-2로 이기고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이후 우승과 준우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푸는 2007년 톱 16위에 진입한 이래 처음으로 16위에서 떨어지며 32위까지 밀려났다. 
 
다시 시작
 
톱 16위 재진입을 목표로 2012/2013 시즌을 시작한 마르코 푸는 시즌 초 모든 대회의 예선에 통과했다. 호주 골드필즈 오픈에서는 세 개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하며 제러드 그린을 5-2로 이겼다.

이후 조 페리와 제이미 베넷, 스티븐 리를 모두 5-1로 꺾은 푸는 준결승에 진출하여 비록 피터 엡돈에게 2-6으로 패했으나 희망을 보았다. 이후 2013 독일 마스터스에 참가한 푸는 리키 월든과 피터 라인, 매튜 스티븐스를 모두 5-3으로 이기며 2008년 이래 처음으로 랭킹 대회 결승전에 올랐다.

푸는 자정이 지나서야 준결승전을 6-4로 이기며 시합을 마무리지었다. 알리 카터와 결승전을 펼친 푸는 5-3으로 리드하고 있었으나 결국 6-9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이었다. 2013 호주 골드필즈 오픈에 참가한 그는 켄 도허티를 5-2로, 숀 머피를 5-2로, 도미닉 데일을 5-1로 이기며 준결승까지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로버트 밀킨스와의 준결승전에서도 4-1로 앞서 나가던 푸는 밀킨스의 반격으로 4-4 동점까지 이루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야 했으나 이후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해 6-4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푸는 월드 랭킹 1위이자 홈 관중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닐 로버트슨과 결승에서 맞닥뜨렸다.

일방적인 홈 관중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푸는 9-6으로 닐 로버트슨을 잠재우며 그의 두 번째 랭킹 대회 우승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대로 다시금 톱 16위에 오를 수 있었다. 같은 해 중국의 청두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십의 8강에 진출한 푸는 마크 셀비와 대결을 벌였다.

푸는 마지막에 연속으로 84 브레이크, 112 브레이크를 치며 6-5로 이기며 준결승에 올랐다. 조 페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푸는 9-8 간발의 차이로 이기며 2013년 세 번째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다. 딩준후이와의 결승전에서 9-8로 먼저 매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우위를 차지했지만, 푸는 우승까지 남은 단 한 프레임을 얻지 못해 결국 9-10으로 딩준후이에게 우승을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이 대회 이후 그는 자신의 최고 랭킹인 월드 랭킹 6위에 올랐다.  마르코 푸는 센추리 브레이크를 많이 기록한 선수 중의 한 명으로 스누커 역사상 300번 이상의 센추리를 기록한 열 번째 선수이며, 현재까지 센추리 리스트의 6위에 올라있다.

세 번의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푸는 마크 셀비와의 UK 챔피언십 준준결승전에서 한 프레임을 77분 동안 치르며 방송 대회 사상 가장 긴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같은 차이나 오픈에서 숀 머피와 데이브 헤럴드의 93분 기록에 의해 깨졌다.

1998년 데뷔와 함께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마르코 푸는 재능에 비해 많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을 자신의 테크닉에 대해 고민하며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한 번의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시즌 중 최고의 시즌을 맛본 그가 이제 본격적으로 상금 사냥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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