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은 다시 제한되는가.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당구장’이라는 곳을 가보았다. 골프채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잡았으니, 첫 당구는 빨라도 한참 빠른 셈이다. 공부를 아주 잘했던 모범생이 아니었다면 대부분 중고등학교 시절에 일찍이 당구장 문을 두드리게 된다. 주변에 당구장이 많이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청소년 시절에 접했던 당구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새로운 멘탈 스포츠의 세계를 알게 해주었다. 스포츠라면 마땅히 땀 냄새 풍기며 뛰어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린 당구는 글자 그대로 신세계였다. 당구대 위에서는 마치 음악, 미술, 체육, 그리고 수학까지 온갖 교과서를 다 집어넣은 것처럼 복잡다단했고,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패자의 몫을 피하기 위한 치열한 승부의 세계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던 사바나 초원 같은 사회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기도 했다.

가끔 동창들과 만나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당구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하며 그때를 되돌려보곤 한다. 당구 덕에 우리는 참 즐거웠던 기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첫 당구를 배웠던 중학교 시절 당구장 출입문에는 ‘18세 미만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무시무시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친구들과 용기를 내어 처음 당구장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구를 한 번 치게 해달라는 어린 학생의 당돌한 부탁에 “당구 치는 게 나쁜 게 아니지만, 담배 피우지 않고 너무 자주 오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한 번 치게 해주마”라고 선뜻 허락했던 당구장 주인아저씨의 얼굴도 잊히지 않는다.

만약 그때 당구장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사정없이 내쫓았다면 아마 당구를 영원히 멀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2년 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18세 미만 청소년 출입금지’가 풀려서 당구장을 마음 놓고 떳떳하게 다녔다. 그전까지는 당구장에서 큐 한 번 잡아 보려면 많은 눈치를 봐야 했다.

준법정신이 투철했던 동네 어떤 아저씨가 파출소에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고, 당구장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 다음날 부모님을 학교에 모셔가기도 했다. 비행 청소년도 아닌데 당구를 쳤다는 이유로 비행 청소년으로 오해받아 매도 맞고 혼도 많이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구를 치는 것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당구장 안의 담배 연기가 무척 안 좋기는 하지만, 학교 근처 당구장 주인아저씨는 학생들이 오면 최대한 담배 연기가 없는 쪽에서 당구를 치게 했다. 만약 그때 당구장이 금연이 되었더라면 더 떳떳하게 당구를 칠 수 있으리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우리가 당구장을 갈 수 있었던 시간은 저녁 식사를 빨리 끝내고 오후 5시 30분부터 6시까지 딱 30분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당구장 출입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구장은 안 된다”는 학생주임 선생님은 허구한 날 당구장을 찾아와 큐를 빼앗고 벌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저녁 식사 후에 가끔 당구장에 갔다.

이런 통제가 부당하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당시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통제에 잘 따랐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나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박탈당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은 없었다.

“당구를 치는 학생은 나쁘다”라는 인식을 만든 것도 어른들이고, 학생이 당구를 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당구를 치는 학생은 전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부당한 주장을 위해 학생들은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억울한 일아닌가. 당구가 정말 나쁜 것이라면 어린 학생들을 당구와 단절시키는 것이 맞다. 청소년에게 당구가 정말 해롭다면 술, 담배처럼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맞다. 그런데 당구는 엄연히 스포츠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할 일인데, 아직도 어른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웃지 못할 기사를 보았다. 당구장을 금연시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법안이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이 올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에 곧바로 시행되게 된다.

소수의 당구장 주인아저씨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해 다수의 청소년은 앞으로 당구라는 스포츠를 접할 기회를 다시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 어른이라면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의 권리를 먼저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시대에 청소년의 권리를 반강제적으로 박탈하는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 과거로 회귀하여 2015년에 다시 일어나고 있다.

당구가 술, 담배처럼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당구를 청소년이 치지 못하게 법을 만드는 것이 맞고,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당구를 청소년이 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앞뒤가 바뀌어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으니 당구장에 청소년을 출입시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아울러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에 준한 모든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당구장 주인아저씨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도 입법기관은 물론 국가기관의 권한과 의무를 저버린 참 무책임한 판단이다. 입법의 근본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3년 5월 13일, 헌법재판소는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당구장 출입 금지’와 관련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5조’에 대해 청소년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미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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