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조재호의 시간 ...'나는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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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조재호의 시간 ...'나는 슈퍼맨'
  • 김민영 기자
  • 승인 2021.11.25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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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NH농협카드 그린포스의 주장 조재호(NH농협카드)가 PBA 팀 리그 출전 단 3라운드 만에 팀을 포스트시즌에 안착시켰다.

비록 개인 투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조재호지만, 팀리그에서 만큼은 든든한 기둥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라고 이 인터뷰 기사를 시작했으나 기사가 나가기 직전 '휴온스 PBA 챔피언십' 결승전에 오른 조재호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PBA 팀 리그에 이어 개인 투어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지난 9월 열린 TS샴푸 PBA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NH농협카드의 응우옌후인프엉린(베트남)은 대회 직후 인터뷰를 통해 주장 조재호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며 팀 리더로서의 조재호를 높이 평가했다.

위기마다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이 있다면, NH농협카드에는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하는 ‘슈퍼맨’ 조재호가 있음을 지난 팀리그 전기 리그 경기 동안 확실하게 보여준 조재호.

이제 예열은 끝났다. ‘슈퍼맨’ 조재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최근 PBA 팀 리그에서 전기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축하한다. 이제 부담을 좀 덜었을 것 같다.

이전 시즌 다른 팀들의 경기를 보면서 팀 리더로서 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하는지 공부하고 분석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우리 팀의 첫 팀리그 목표는 ‘편안하게 1~3라운드 안에 2등 안에 들고, 4~6라운드에는 개인의 당구 실력을 키우자’ 였다.

정규리그에서도,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면 선수들의 부담이 더 커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우승하자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계획대로 된 셈이다. 하지만 크라운해태와 3라운드 마지막 경기까지 경쟁해야 했다.

팀 리더로서 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하면서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팀원들에게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최선만 다해 달라고 부탁했다.

 

팀리그와 개인 투어 중 어떤 경기가 더 부담이 되나?

팀리그가 더 부담도 되고, 더 재미있기도 하고, 더 눈물 나기도 하고, 더 열 받기도 한다. 내가 못 쳐도 팀이 이기면 내가 못 친 건 상관없다. 팀만 이기면 된다. 똑같은 무승부라도 이기고 있던 게임을 무승부로 끝내면 기분이 너무 안 좋고, 지고 있던 경기를 무승부로 비기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후기 리그 목표는 무엇인가?

전애린 선수가 전기 리그에서 희생을 많이 했다. 후기 리그에는 전애린 선수를 더 많이 기용할 생각이다. 전기 리그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성적을 내기 위해 김민아 선수가 많이 출전했는데, 후기 리그에는 전애린 선수가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예정이다. 여자 프로선수들이 더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팀리그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응우옌후인푸엉린 선수가 지난 TS샴푸 PBA 챔피어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직후 인터뷰에서 조재호 선수 덕분이라고 하던데, 자신의 노하우를 팀원들에게 아낌없이 다 알려주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팀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프로 당구가 성공하려면 팀리그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더 많은 기업들이 당구 리그에 참가한다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잘 모르는 공은 동료선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내가 제일 많이 공을 물어보는 선수가 이충복 선수다. 될 때까지 알려주고 옆에서 공을 놔주는 동료 선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거다. 서로 받고, 받은 만큼 또 돌려주는 거다.  

 

사람들이 조재호를 ‘슈퍼맨’이라고 부른다. 처음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 기억 나나?

2014년 터키 이스탄불 월드컵 32강전에서 딕 야스퍼스를 16이닝 만에 40:39로 꺾고 밖으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나를 슈퍼맨이라고 부르면서 환호했다. 왜 그런가 봤더니 마침 입고 있던 옷에 슈퍼맨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대회에서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4년 터키 이스탄불 월드컵은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른 대회다. 32강전에서 딕 야스퍼스와의 경기가 내 인생 게임이다. 우승도 너무 기쁘지만 그 경기가 정말 인상적인 경기였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이 경기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정말 내가 어떤 공을 쳤는지, 왜 이겼는지, 뭘 놓쳤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몰입해서 경기를 했다. 그렇게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게임하는 게 쉽지 않다. 끝나고 나서 실수한 공 개수를 세니 딱 한 개였다. 야스퍼스도 겨우 2개 에러를 냈는데 진 거다.

그 경기를 끝내고 밖에 나왔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고 4강까지 올라갔는데, 결승 한 경기 남겨두고 4강까지 애버리지가 2.6대였다. 오히려 최성원 선수와의 결승에서 애버리지를 다 깎아 먹어서 2.3이 됐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첫 월드컵 우승하기까지 결승전은 어땠나?

그날 최성원 선수가 진짜 공을 안 주더라. 잔인할 정도로 공을 잠가 댔다. 성원이 형도 최초로 월드컵 2승을 앞두고 있었으니 엄청 열심히 친 거다. 성원이 형이 먼저 40점을 획득하고 32:40으로 경기가 끝났다. 근데 진 기분이 안 들었다. 후구인 내가 행운의 샷을 포함해서 8점을 모두 치고 승부치기에 들어갔다.

성원이 형이 1점을 치고 나한테 기회가 왔는데, 2득점째 공이 득점 되는 순간 온 힘을 다해 환호했다. 그러다 우진이 형이 등을 쓱 만지고 지나갔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어떤 감정이었나?

서러움이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월드컵 우승이 없다고 나를 국내파라고 한정 지었다. 세계대회 나가서 2등, 3등은 밥 먹듯이 했는데, 악플러들은 또 2등이냐며 결승에서 연달아 졌다고 새가슴이라고 표현했다.

외국 사람들은 또 결승에 나갔다고, 준우승을 했다고 축하해주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우승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런 말들이 가슴 한쪽에 쌓여 있었다. 우승을 하고 나니 그 서러운 감정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원래 당구선수가 꿈이었나?

아니다. 원래는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어서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태권도 도장에 다녔다.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히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때 관장님이 국가대표 만들어 줄테니 태권도를 해보라고 하셨다.

아마도 잘 못 하는 아이가 매일 제일 끝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제일 먼저 와서 연습하는 걸 보시고는 노력형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거기에 ‘넌 안돼, 넌 못해’ 이렇게 살짝 자극을 주면 끝까지 해낸다는 걸 아셨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당구에 미쳐서 다 그만두고 당구만 치겠다고 한 거다.

 

왜 갑자기 당구를?

여느 중학생들처럼 친구들과 코인노래방에 자주 갔었다. 하루는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는데 노래방 사장님이 기다리는 동안 옆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으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딱 한 번 당구 치는 자세를 배운 적이 있어서 그 기억으로 당당하게 칠 줄 안다며 당구장에서 친구들한테 알려주면서 놀았다.

그러고 나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는데 당구가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아른한 거다. 노래방 끝나고 친구들하고 주머니 다 털어서 당구를 치고 놀았다. 그 뒤로는 노래방에 안 가고 당구장을 갔다.

중 2 여름방학 전까지 두 달을 친구들이랑 당구장에서 놀았는데 50 놓고 치면 끝이 안 났다. 여름 방학 때 늦잠 자고 싶은 친구들을 설득해서 오전 9시에 속셈학원을 갔다가 학원이 끝나면 10시 반쯤 당구장으로 갔다. 사장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장님이 나오면 바닥 청소해주고 멀뚱히 기다리고 있으면 연습해보라며 공을 주셨다.

연습구 치다가 점심때 손님들이 오면 잘 치는 손님들 게임 치는 걸 구경했다. 그러고 다음 날 오전에 그 손님이 친 공을 연습했다. 그렇게 아저씨들 어깨너머로 공을 배웠다. 

 

그래서 실력이 좀 늘었나?

그때 하루 용돈이 500원이었는데, 게임을 쳐서 지면 게임비가 3~4천원이 나왔다. 사장님한테 첫날 500원 드리고, 다음 날 또 500원 드리고. 그렇게 다 갚을 때까지는 연습구만 치고 다 갚고 나면 또 게임을 쳤다. 질 때까지.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되니까 200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당구 잘 치는 친구로 유명해졌다. 더 이상 그 당구장에서 배울 게 없다고 느껴질 때쯤 집에서 가까운 데에 1000 당구가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거기 가보니 300, 400, 500, 잘 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서 당구를 치면서 중3 때 4구를 한 300 정도 치게 되니까 학교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 됐다.

그런데 4구로 300을 치는데, 4구 200~250 치는 형들이랑 3쿠션을 치면 한 게임을 못 이겼다. 하루는 당구장 사장님이 2만원을 주시면서 형들 3쿠션 내기 당구 치는데 같이 해보라고 하시는 거다. 질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다 끝나고 보니 2만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다음 날은 심지어 1만원을 땄다.

4구를 잘 치니 원하는 위치로 1쿠션은 잘 보낼 수 있었다. 1쿠션만 잘 맞아도 공이 알아서 맞았다. 안 맞으면 기억해뒀다가 수정해서 다시 쳐봤다. 그렇게 고등학교 갈 때 500을 쳤다. 결국 고1 때 학교를 그만두고 당구만 치기로 결정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을 텐데?

물론. 절대 안 된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부모님은 어린 조재호가 당구를 잘 치는 걸 언제 아셨나?

중학교 3학년 때, 진로 상담 때문에 면담을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부모님께 재호 당구 치는 거 아시냐고 물어보셨다. 심지어 전교에서 제일 잘 친다고. 사실 아버지가 당구를 잘 치셨다. 아버지가 안 보이시면 어머니가 당구장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실 정도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당구를 잘 치는 것도 너무 싫어하셨다.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나?

나에게 당구 자세를 처음 알려준 사람이 아버지였다. 5학년 때 딱 한 번 아버지가 형이랑 나를 당구장에 데려가신 적이 있었다. 평소 형이 당구를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셨는데, 그때 딱 한 번 브리지하고 자세 잡는 법을 알려주셨던 거다. 자퇴 문제로 시끄러울 때 아버지가 한 게임 쳐보자고 하시더라. 그때 나랑 당구를 친 아버지가 학교 그만두는 걸 허락해 주셨다.

 

누가 이겼나?

내가 이겼다. 그때 아버지랑 나랑 둘이 4구를 40개씩 놓고 쳤는데, 2-1로 내가 아버지를 이겼다. 둘이 전부 합쳐서 열 큐를 안 쳤다.

 

그럼 그때부터 당구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 건가?

그건 아니다. 고등학교 자퇴 후 한동안 김철민 선배에게 당구를 배웠는데, 7개월 만에 도망쳤다. 당구장 일을 하면서 당구를 배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도망치고 나서는 내기 당구를 치러 다녔다. 19살 때부터 20살에 선수 등록하기 전까지.

하루는 임태수 형이 “재호야 너는 그러지 말고 선수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옆에서 듣던 다른 형들이 “얘가 지금 이렇게 내기 당구를 잘 치는데 무슨 소리냐”며 말렸다. 하지만 태수 형이 끝까지 “돈 좇지 말아라”라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선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내기 당구로 한 달에 500만원씩 벌던 때였는데, 선수를 하려고 내기 당구를 그만두고 시급 2500원 받고 한 달에 월급 60만원 받으면서 당구장 알바를 시작했다. 그러다 20살 때 선수 추천을 받게 됐다.

 

어느덧 22년차 당구선수다. 수많은 대회 중에 본인에게 가장 의미가 큰 대회는 어떤 대회였나?

2011년에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결승 갔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록 블롬달에게 졌지만 그 대회 결승 진출로 와일드카드 없이 시드권 선수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와일드카드 없이 월드컵 시드권 진입이 쉽지 않다. 와일드카드가 랭킹 점수로 80점인 셈인데, 그 80점을 얻으려면 32강에 10번 올라가야 한다.

그 80점이 없는 상태에서 아시아대륙별 시합이랑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으로 겨우 점수를 조금 모았다. 이 대회에서 4강까지 가도 시드권에 못 올라가고 결승에는 올라가야 시드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는데, 딱 필요한 그때 결승에 올라서 월드컵 시드를 받을 수 있는 랭킹이 된 거다. 와일드카드 한번 없이 시드권 선수가 됐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조재호가 늦었지만 작년에 결국 대학교 졸업장을 결국 땄다. 의지가 대단하다.

공익 끝나기 6개월 전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때 20명을 모아서 공부방을 만들었다. 후임 중에 좋은 대학 다니는 애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우리가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은 농수산물공사 직원분들이 일과 끝나고 아예 수업을 해주시기도 했다. 20명 중 5명이 중간에 포기하고 15명이 시험을 봤다.

이장희 선배가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 대학교 공부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서 전액 장학금 받고 4년동안 엄청 열심히 공부했다.

 

프로당구협회로의 이적도 좀 늦은 감이 있다. 이유가 있나?

서울시청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공만 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게 서울시청이다. 먹고 살기 막막했던 시절 후원사가 생기면 살기 좀 수월해졌는데, 서울시청 소속이 되면서 선수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구장에서 알바를 안 하고 공만 치면서 살 수 있는.

그런데 프로에 가겠다고 중간에 서울시청과의 계약을 해지할 수 없었다. 배신하는 기분이었다. 10여 년을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열리는 100회 전국체전에는 꼭 서울시청 대표로 뛰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PBA 측에도 100회 전국체전 치르고 그 다음 해에 가겠다고 약속이 된 상태였다. 결국 101회 전국체전이 코로나19로 열리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시청에 양해를 구하고 PBA로 이적했다.

 

처음 경험해 본 PBA 투어는 어땠나?

일단 서바이벌이 너무 큰 변수였다. 서바이벌은 4명이 같이 치는데, 그중 한 명은 나랑 전혀 상관없는 선수다. 그런데 내 앞뒤 선수가 아닌 그 선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경기가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서바이벌은 이전에도 이미 경험해 본 대회 방식이지 않은가?

그때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나와 관계없는 제3의 선수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기를 한다. 예를 들면, 수비된 공 중에 내가 풀 수 없는 공은 공격하지 않는다. 만약 어설픈 공격으로 수비가 풀려서 다음 선수가 장타를 치고 또 수비를 하고 빠지면 그 실수로 3번째 선수가 피해를 보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그게 암묵적인 합의고 게임 매너다.

나랑 프레데릭 쿠드롱, 에디 멕스, 다니엘 산체스 4명이 한 경기에서 1점 때문에 내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점수가 다 2점씩밖에 차이가 안 났다. 네 명 다 애버리지는 2점대가 넘었다. 사람들은 이런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PBA에서 처음 경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무조건 2점 뱅크샷만 치는 게 이해가 안됐다. 넣어치기가 아니라 비껴치기를 해야 포지션이 되는 공을 무조건 넣어치고 본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은 나도 빈쿠션치기를 많이 시도한다. 대결이라 어쩔 수 없다. 15점제 경기에서 2점은 경기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PBA 투어가 이전 대회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

복장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옷이 바뀌고 확실히 공 치기가 편해졌다. 반면 헬릭스 공은 아직도 좀 더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한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아무리 쳐도 공이 안갔다. 그러니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헬릭스 공이 이전에 사용하던 공보다 무거운데 큐를 바꾸면서 무게를 오히려 줄인 거다. 공이 무거워진 만큼 내 큐도 그만큼 무거워져야 하는데 그걸 놓친 거다. 시합을 3개나 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큐 무게를 조절했다. 이제야 공이 내가 그리는 대로 다니기 시작했다.

 

조재호는 어떤 사람인가?

MBTI 검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라고 하더라. 뭘 해도 규범을 어기는 걸 싫어하고 남한테 피해 주는 걸 싫어한다. 팀 선수들에게도 인성에 대한 것을 많이 강조하고, 실수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프로당구협회로 이적하면서 외모도 많이 바뀐 것 같다.

프로선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당구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행동이나 외모나 선수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시즌의 후반기가 시작된다. 임하는 각오는?

이번 시즌에는 뭐라도 하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시합이 지속적으로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합 자체가 연습이고 감각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곧 그런 아쉬움을 지울 수 있게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

 

‘슈퍼맨’ 조재호의 팬들에게 한 마디.

조재호, 곧 돌아옵니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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