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本色] 포기하지 않은 40년의 도전... '52살의 챔피언' 에디 레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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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本色] 포기하지 않은 40년의 도전... '52살의 챔피언' 에디 레펜스
  • 김주석 편집장
  • 승인 2021.11.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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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에 큐 잡고 18살에 벨기에 주니어 챔피언 등극... 캐롬 전 종목 잘하는 '멀티플레이어'

93년 벨기에컵 우승 후 3쿠션 세계 무대 진출... 96, 97, 98년 3쿠션 월드컵 결승 올라

2010년 세계선수권, 2011년 팀선수권 등 5차례 결승 도전해 모두 준우승에 머물러

지난 23일 '휴온스 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조재호 4-1로 꺾고 40년 만에 '목표 달성'
결승에서만 다섯 번의 패배에도 지치지 않고 40년을 달려 온 에디 레펜스(SK렌터카)가 마침내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휴온스 PBA 챔피언십 2021'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결승에서만 다섯 번의 패배에도 지치지 않고 40년을 달려 온 에디 레펜스(SK렌터카)가 마침내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휴온스 PBA 챔피언십 2021'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에디 레펜스(52, SK렌터카)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는 수십 년 동안 3쿠션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캐롬 종목 베테랑 선수다. 또한, '당구 왕국'이라 불리는 벨기에에서 레펜스는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에디 멕스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이며, 주 종목인 3쿠션 외에도 1쿠션, 보크라인 등 여러 종목에서 우승을 한 '캐롬 멀티플레이어'로 유명하다.

일찌감치 한국에도 수없이 방문해 여러 대회에 출전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2000년대 후반에 레펜스는 우리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의 구질을 구사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케 한 선수 중 한 명이다. 그가 타석에 서 있으면 190cm에 달하는 큰 키로 남들보다 긴 팔다리를 휘둘러 당구대 위에 놓은 공들을 수월하게 다루는 모습이 마치 축구 골대 앞을 장신 골키퍼가 지키고 있어서 빈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왠지 모를 강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레펜스의 경기를 보면 "역시 벨기에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한 샷과 포지션 플레이가 일품이다. 당구선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소년 시절부터 훈련을 받은 레펜스는 구력 40년의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노련함까지 더해져 이제는 어떤 선수에게나 버거운 상대다. 국내 최강이라 불리고, 과거 3쿠션 당구월드컵을 제패한 조재호(NH농협카드)에게도 레펜스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지난 23일 밤 9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고양에서 열린 '휴온스 PBA 챔피언십 2021' 결승전에서 레펜스는 조재호를 세트스코어 4-1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첫 번째 PBA 우승타이틀임과 동시에 무려 40년 만에 처음 국제대회에서 우승의 한을 푼 감격적인 승리였다. 게다가 상금으로 1억원이라는 거금을 차지하며, 40년 동안 당구선수 '한길'만 걸어온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레펜스가 40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는 말이 선뜻 이해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당구 PBA 투어가 출범하기 이전에 레펜스가 여러 번 준결승, 결승에서 경기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국제대회에서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일찌감치 18세에 벨기에 주니어 3쿠션 챔피언에 오르고 1993년 벨기에컵에서 우승한 후 30년 가까이 세계 무대를 두드렸지만, 매번 마지막 결승 고비를 넘지 못했다.

프로 데뷔 이전에 국제대회에서 레펜스가 결승에 올라간 것은 모두 다섯 번이다. 첫 결승전은 1996년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3쿠션 당구월드컵이었다. 레펜스는 결승전에서 당시 실력자였던 호르헤 데리아가(포르투갈)에게 져 첫 도전은 실패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가장 성적이 좋아 우승도 기대되었다. 레펜스는 그해 포르토, 우글레드, 헤르네에서 열린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3회 연속 4강에 진출했고, 그중 마지막 헤르네 대회에서 두 번째 결승에 올라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크리스티안 루돌프(독일)에게 패해 두 번째 도전도 준우승으로 마감했다.

1년 후 스페인 트레모리노스 3쿠션 당구월드컵(1998년)에서 레펜스는 세 번째 결승전을 치렀다. 결승 상대는 토브욘 블롬달(스웨덴). 당시 블롬달은 '부동의 세계랭킹 1위'였다. 아쉽게도 레펜스는 세 번째 결승전에서도 블롬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한동안 그는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레펜스는 1999년 베를린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당구 전설' 고 이상천 회장과 공동 3위에 올랐고, 2005년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도 공동 3위를 차지했으나, 결승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당구대 위로 뛰어올라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레펜스.   사진=이용휘 기자
당구대 위로 뛰어올라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레펜스. 사진=이용휘 기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레펜스는 2005년을 비롯해 2009년, 2010년, 2015년 등 모두 4차례 4강에 진출했고, 2010년에 그의 네 번째 결승 도전을 이어갔다. 스페인 루고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레펜스는 현재 PBA에서 같이 뛰고 있는 아드난 윅셀, 하비에르 팔라존(휴온스)과 그리고 세계 최강자 에디 멕스 등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무려 12년 만에 결승에 올라온 그는 '3쿠션 사대천왕'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와 승부를 벌였다. 네 번째 결승전은 가장 아쉬웠다. 레펜스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내 2-0으로 앞섰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2-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는 3쿠션 당구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뿐만 아니라 국가대항전인 세계팀3쿠션선수권대회에서조차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지난 2011년 멕스와 팀을 이루어 벨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팀선수권에서도 결승에서 터키(타이푼 타스데미르, 뤼피 체넷)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프로에 오기 전 그가 치른 마지막 다섯 번째 결승전이었다. 레펜스는 이번 대회 결승에 오르기까지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물론, 그동안 성적이 아예 안 났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11년 말에 열린 후르가다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갔다. 한국의 '선구자' 고 김경률, 제러미 뷰리(프랑스), 윅셀 등이 준결승에서 만났고, 레펜스는 윅셀에게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준결승에서 레펜스에게 승리한 윅셀은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열린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그는 '절친' 쿠드롱과 사대천왕 블롬달, 그리고 현재 PBA에서 활약하고 있는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TS샴푸) 등과 4강에 올랐다. 레펜스는 당시 준결승에서 쿠드롱에게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쿠드롱은 결승에서 블롬달을 꺾고 우승했다.

산체스와의 악연은 2016년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레펜스는 산체스와 다시 한번 승부를 벌였다. 아마추어 시절 마지막 결승 도전이었던 그 경기에서 레펜스는 39:40(24이닝)으로 패했다. 2010년 결승전과 2016년 준결승전 모두 아까운 승부였다. 2010년 결승전 대결은 레펜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인터뷰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자 아내와 포옹하며 우승을 축하하는 레펜스.  사진=이용휘 기자
경기가 끝나자 아내와 포옹하며 우승을 축하하는 레펜스. 사진=이용휘 기자

처음 하는 우승자 단독 인터뷰를 "멋지다. 오래 기다려 왔다"라고 말하는 레펜스를 보면서 그의 지난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2005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당구클럽을 운영하고, 당구용품 업체의 후원을 받으면서 어렵게 국제대회에 출전해 왔다. 부인과 두 딸을 둔 가장이 큰 소득과 결과 없는 도전을 긴 세월 계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다섯 번이나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레펜스는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많은 해를 싸웠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오늘 드디어 목표한 것을 이루었다. 최고의 순간이다"라고 우승 소감을 말하고, 어쩌면 레펜스보다 더 그의 성공을 원했던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레펜스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이제 그가 지난 세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 왔다. 12살에 당구 큐를 잡고 무려 40년의 세월을 '우승' 하나만 보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52살의 챔피언, 에디 레펜스에게 박수를 보낸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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