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의 우승자 딕 야스퍼스가 우승이 결정되자마자 한 행동은 바로 상대 선수인 황봉주를 위로해 준 것이다.

우승을 즐길 세레머니도 잠시 밀어두고,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앞에 무너진 무명의 선수인 황봉주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누군가는 황봉주의 눈물을 우승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우승자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황봉주가 가져갔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우승자인 딕 야스퍼스는 황봉주가 왜 울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를 통해 신인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며 그의 어깨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을 설명했다.

대회가 모두 끝난 후 야스퍼스를 만나 이번 대회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우승 축하한다. 꽤 긴 대결을 치르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결승전을 치른 소감이 어떤가?

사실 처음에는 8강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8강전을 1위로 통과하고 2위까지 확보한 상태로 결승전을 치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우승까지 한 번의 대결만 남아 있어서 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승전 시작 전까지 황봉주 선수에 대한 예측이 어려웠고,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매일 긴장 속에 시합을 해서 많이 피곤한 상태로 결승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8강전에서 황봉주에게 한 번 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승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승전에서 집중이 잘 돼서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던 것 같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토브욘 블로달, 김준태, 황봉주 중에 누가 결승에 올라오길 기대했나?

8강전을 치르면서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 본 사이에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 엄청 발전했고, 특히 김준태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 김준태는 미래의 챔피언이다. 한국 선수 중의 한 명이 올라오지 않을까 예측했고, 만약 김준태가 올라오면 정말 온 힘을 다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여러 선수를 만나서 경기를 했다. 소감이 어떤가?

이 대회 자체가 모든 선수들에게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많은 경기를 해야 했고,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게다가 기존의 점수제 경기가 아닌 시간제 경기 포맷을 확인하고 새로운 시스템의 경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무척 흥분했다. 어떻게 경기를 운영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실험적인 시도가 너무 좋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당구선수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큰 대회가 재개되었다는 게 의미가 크다.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나는 그나마 세계 랭커로 모아둔 게 좀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다. 이 대회가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으로 1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가장 큰 상금을 획득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맥크리리나 아지피 대회 등 많은 상금을 받았지만, 단일 대회 상금으로 1억원을 우승 상금으로 받은 건 처음이다.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을 안 해봐서 일단은 은행에 넣어둬야 할 것 같다.

이번 대회는 1억원의 우승 상금 말고도 여러모로 의미가 큰 대회였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대회 중에 가장 긴 대회였으며, 그 많은 경기 중에 생각보다 패배가 적었다. 애버리지도 2.000 이상 쳐서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울음을 터트린 황봉주를 위로하는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울음을 터트린 황봉주를 위로하는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황봉주 선수가 결승전이 끝난 후에 울음을 터트렸다. 세레머니도 제대로 못 하고 황봉주 선수를 위로하던데.

30년 전 내 모습을 본 것 같다. 나도 신인이었던 시절에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을 만나면 이기고 싶은데 이기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황봉주 선수의 마음도 너무 잘 알 것 같다.

아마도 황봉주 선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잘 못 한 것 같다는 마음에 많이 속상했을 거다. 처음 이렇게 큰 대회 결승에 올랐으니 중압감을 이기기 쉽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황봉주 선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사람들이 누군지도 몰랐던 무명의 선수였는데, 결승까지 올라왔고 사람들이 그 선수에 대해 알게 됐다.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본인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1992년 토브욘 블롬달과 결승전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신인이었고, 블롬달은 경험 많은 챔피언이었다. 블롬달을 상대로 거의 다 이긴 경기를 역전패로 졌다. 그때의 내 마음이 오늘 황봉주가 느꼈을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시간제 시합을 했다. 어땠나?

우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게 좋았다. 시간제는 점수제보다 더 긴장감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단, 1-1 동점일 때 연장 3세트는 15분 밖에 시간이 없어서 초구인 사람이 길게 경기를 하면 다음 선수가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3세트 시간이 좀 길었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에서는 하이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관심이 컸다. 예선전을 치르면서 20점의 하이런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하이런 최고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나?

그런 기대는 어렵다. 이번 대회 첫 경기에서 하이런 20점을 만들었는데, 좋은 포지션 덕분이었다. 기회가 좋았을 뿐이다. 솔직히 20점을 치고 그때만 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기는 것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하이런 욕심까지는 내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하이런은 하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못 한다.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딕 야스퍼스. 사진=이용휘 기자

이번 대회는 무관중 경기로 조용하게 진행됐다. 처음 해본 무관중 대회는 어땠나? 결승전 대회장에서 한국 선수들이 황봉주 선수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관중을 잃었다. 물론 지금처럼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경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선수도 있겠지만, 나는 관객이 많은 걸 선호한다. 멕시코에서 했던 대회에는 1500명의 관중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한국 선수들이 한국 동료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 내 경기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이번 대회는 장장 18일에 걸쳐 진행됐다. 자가격리 2주까지 합치면 꽤 오랜 시간을 대회에 할애해야 했다.

2주간의 자가격리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대신 시차에 대한 어려움을 완전히 해소하고 대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보통 월드컵 때는 시차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데, 이번에는 시차가 전혀 안 느껴져서 좋았다.

또 이번 한국 방문은 대회도 목적이지만, 덕분에 한국의 스폰서와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허리우드와 이번에 3년간 재계약을 했다. 스폰서인 허리우드와 빌킹코리아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대회가 없는 1년 6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나?

나 같은 경우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대회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는데, 모처럼 집에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휴가를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시간을 즐겼고, 또 꾸준히 연습도 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넷플릭스도 보고, 그 상황 속에서도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당구를 잘 칠 수 있나?

끊임없는 연습뿐이다. 실수를 되짚어보고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대회 후 시상식. 우승자 딕 야스퍼스, 준우승자 황봉주, 3위 김준태가 한 자리에 섰다.  사진=이용휘 기자
대회 후 시상식. 우승자 딕 야스퍼스, 준우승자 황봉주, 3위 김준태가 한 자리에 섰다. 사진=이용휘 기자

한국에서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당구대회가 계속 열렸다. 평균 2달에 한 번, 1억원의 우승 상금이 걸린 대회가 열린다. 세계 랭킹 1위의 선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큰 상금의 대회가 나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앞으로 UMB도 월드 그랑프리 같은 큰 대회를 더 많이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에 딕 야스퍼스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더 잘 당구를 칠 수 있을지 조언하자면?

한국의 당구 동호인들은 이미 당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크다. 그 애정과 열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당구를 방송해 주는 채널이 이렇게 많은 나라도 없다. 당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당구선수들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훌륭해서 항상 고맙다.

 

코로나19로 당구선수들은 대회를 잃었고, 당구장은 영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당구인들을 위해 위로의 메세시지 부탁한다.

모두가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뭐라고 위로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어려운 면에만 몰입하지 말고, 다른 면을 보면서 좋은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방역에 잘 대처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곧 끝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같이 견뎌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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