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는 무조건 팀선수권 우승... 대회가 연기돼 아쉬움 커"

"7살 때 아버지 당구장에서 처음 당구를 시작...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큐 잡아"

"20, 21살 이때 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분 들어... 평소 공 2개만 놓고 연습"

꽤 오래전이었다. 체육관에서 열린 한 전국당구대회에 나타난 초등학생 아이 하나가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자기 키만큼 큰 당구 큐를 들고 까치발로 서서 제법 신중하게 샷을 이어 나갔다. 자신보다 한참 큰 고등학생 형을 이긴 아이는 이날 대회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고 그 덕에 '당구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그 아이는 세계적인 수준의 당구선수로 놀랄 만큼 성장해 있었다. 마치 오래전 '16살의 미소년'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의 모습을 20년 만에 보는 듯했다. 키 작은 아이 한 명이 전국당구대회에서 이슈 몰이를 했던 그때 이상으로 이번에는 세계 당구계를 휘저어 놓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3쿠션의 미래'로 불리는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23)다. 조명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주니어에서는 이미 상대가 없었다.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에 6회 출전해 3회나 우승을 차지하며 '탈(脫) 주니어'의 경지에 오른 조명우는 급기야 지난 2016년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4강을 달성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에는 더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우승으로 장식하고, KBF 슈퍼컵 타이틀을 따낸 조명우는 세계 최강자들이 초청받은 LG 유플러스컵 3쿠션 마스터스에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조명우는 지난해 국내외 대회에서 8개의 개인전 우승 타이틀과 복식전을 더해 총 12회의 우승을 일궈냈다. 덕분에 손에 쥔 상금만 무려 2억원이 넘는다. 또한, 김경률 추모배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출전해 우승까지 거머쥐기도 했다.

조명우는 올해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대회가 연기되면서 그의 팀선수권 데뷔 무대는 아직 치러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나이로 23살이 된 조명우는 세계 무대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팀선수권을 앞두고 조명우가 어떤 각오와 생각을 갖고 있는지 <빌리어즈>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가 불과 일주일 남겨두고 취소되었다. 어떤가.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아서 조금 당황스럽다. 무조건 팀선수권대회 우승이 목표였는데, 아쉽다. 언제 다시 개최될지 모르니 아쉬운 마음이 제일 크다.
 

- 평소 복식전에서 자주 팀을 이루었던 조재호(서울시청)와 함께 국가대표로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준비는 많이 했나.

팀선수권대회를 목표로 특별한 연습을 했다기보다 그냥 하던 연습을 꾸준하게 했다.
 

- 조재호 선수와의 호흡은 어떤가.

그동안 재호 형이랑은 복식대회에 4~5번 나간 경험이 있다. 둘이 같이 우승을 한 적도 있었고, 또 지난 로잔마스터스대회에 재호 형이랑 단둘이 출전했는데 그러면서 관계가 더 끈끈해지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더 생긴 것 같다. 그래서 호흡은 이미 굳이 따로 안 맞춰봐도 증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 이번 대회도 자신이 있나.

대회는 끝까지 가봐야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올해 첫 목표가 무조건 팀선수권대회 우승이다.
 

- '국가대표 조명우'에 대해 이제는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조명우면 믿고 경기를 보는 팬들이 많다. 아마도 그동안 보여준 성적 때문일 텐데, 언제부터 국가대표로 대회에 출전했나.

그동안 쭉 주니어 국가대표로 세계3쿠션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6번 출전해서 3번 우승했다. 작년에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경력이 화려하다. 당구는 몇 살 때부터 시작했나.

7살 때쯤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셔서 그때부터 당구를 쳤다. 당구장이 4층이고, 집이 5층이라 당구장에서 거의 매일 밥 먹고 놀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당구를 치게 됐다. 
 

- 설마 그 어린 나이에 당구가 재밌어서 친 건가.

처음에는 진짜 당구의 재미를 모르고 그냥 공을 치고, 공이 맞고 하는 게 재밌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3학년이 되니까 수구의 위를 치면 공이 밀리고, 아래를 치면 공이 끌리고 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재밌어서 더 빠져들게 됐다. 
 

- 그럼 이게 진짜 당구의 재미구나 하고 느낀 건 언제였나.

당구가 진짜 재밌다고 느낀 것도 초등학교 3학년 때고, 진짜 힘들고 어렵다고 느낀 것도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 왜 당구가 어려웠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당구를 해보자 마음을 먹고 당구를 정식으로 배우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공은 잘 안 치고 매일 스트로크 연습만 계속해야 했다.

당구는 재밌는데, 실제로 훈련은 힘들고 지루한 것만 계속했던 시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해도 그때만큼 힘들 것 같지 않은데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 


- 당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본인 뜻이었나, 아버지의 영향이 컸나.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거는 뭐든 밀어주려고 하셨다. 내가 그때 당구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더 적극적으로 밀어주신 것 같다. 

- '조명우' 하면, 당구 신동이라고 기억하는 당구 팬들이 많다. 당구를 잘 치던 꼬마가 아주 잘 큰 케이스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처음 우승했을 때 기억이 나는가.

첫 시합은 기억이 나는데, 첫 우승은 솔직히 잘 기억이 안 난다. 


- 첫 시합은 언제였나.

아홉 살 때쯤인가, 양구에서 열린 전국당구대회에 처음 나갔다. 그때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다. 떨려서 공도 제대로 못 봤다. 그때 그 기억, 그 느낌은 아직도 뚜렷하게 난다. 그날 준우승을 했다. 그런데 처음 우승했을 때는 잘 기억이 안 난다. 


- 9살 때면 초등부 경기였나.

아니다. 그때는 학생 선수들의 수가 적어서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가 다 같이 시합을 했다. 첫판에 고등부 형을 이기고 바로 결승에 올라갔다.


- 실력이 가장 많이 향상된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20살, 21살 이때 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분이었다. 시니어부로 넘어오고 나서 뭔가 새롭게 깨달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성적도 잘 나오고 자신감도 더 생기고 스스로 생각해도 학생선수일 때보다 더 좋아졌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2016년 구리 당구월드컵 때였다. 그전까지는 당구월드컵에서 항상 최종예선 Q라운드에서 떨어졌는데, 구리 당구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에 진입했다. 그리고 첫 본선 진입에 4강까지 올랐다. 이를 발판으로 룩소르 월드컵 4강, 라불월드컵 4강, 포르토월드컵 4강, LG유플러스컵 우승 등의 성적을 냈다.


- 어려서부터 당구를 치면서 좋아하는 선수나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있었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부터 산체스를 정말 좋아했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역시 가장 좋아하는 선수다. 


- 다니엘 산체스가 어떤 영향을 많이 줬나.
아무래도 산체스도 나를 초등학생 때부터 봐오다 보니 지금 만나도 아들처럼 대해주는 그런 게 있다. 당구도 많이 알려주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준다. 특히 외국 시합 나가면 신경을 엄청 많이 써주고 챙겨준다. 
 

- 특별히 조명우만의 훈련 방법이 있나.

보통 3쿠션은 당구공 3개를 갖고 연습을 하는데, 나는 2개만 갖고 연습을 한다. 공 3개가 당구대 위에 놓여 있으면 어떤 배치가 됐든 무조건 공을 맞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아예 2개만 갖고 연습을 한다.

그러면 공을 맞힐 수가 없어서 앞 공에만 신경을 써서 공을 칠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연습할 때는 항상 공 2개만 놓고 연습을 한다. 

- 대회장에서 항상 아버지가 객석에서 응원을 해주시던데, 아버지와는 어떤가.

시합장에 가면 좀 엄격해지시는데, 평소에 당구를 안 칠 때는 엄청 친구 같은 아버지다. 아들이랑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많이 해주시는, 나에게는 항상 다정한 아빠다.
 

- 작년에 김경률 추모대회에 아버지와 한팀으로 출전해 우승까지 했다. 팀워크도 상당히 좋던데, 올해도 아버지와 출전할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무조건 아버지랑 출전할 생각이다. 아버지가 정말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하셨다.

작년에 김경률 추모대회에서 우승하고 그다음 날부터 계속 혼자 뭘 연습하고 계시길래 뭐하시냐 했더니 "내년 김경률 추모대회 연습한다"라고 하시더라. 끝난 다음 날부터 내년에 열릴 대회를 준비하신 거다.
 

- 아버지랑 한 팀으로 대회에 나가면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나.

솔직히 말해도 되나? (웃음) 보통 동호인이랑 팀을 이뤄 대회에 나가면 내가 잘 치고 있고 동호인 분이 못 치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면 내가 더 열심히 치게 되는데, 아버지랑 편을 먹고 대회에 나갔을 때는 아버지가 일반 동호인보다 내 눈치를 더 많이 보시더라.

못 치시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셨다. 막상 나는 괜찮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8강전에서 내가 많이 힘들어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난구풀이를 여러 개 하시면서 우리 팀의 승리를 이끌어 주셨다. 최고였다. 아들 눈치를 너무 많이 보셔서 재미있었다. 
 

- 20대 조명우에게 '학업과 입대' 문제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우선 입대는 작년 연말에 미루었다.

고민이 많았다. 작년에 성적이 좋아서 성적이 좋을 때 좀 더 많은 경력을 쌓는 게 어떻겠냐고 주위에서 충고를 해주셨다. 물론 빨리 군대 갔다 와서 다시 시작하자는 주변 분들도 많았다.

아버지도 "좀 있다가 가는 게 어떻겠냐"라는 의견을 주셔서 일단은 1년 정도 밀어 뒀다. 내년 2021년 5월까지는 열심히 당구에 집중할 예정이다.

- 한국체육대학에 재학 중인데, 현재 휴학을 하고 있다. 학업은 계속 병행할 예정인가.

막상 대학교에 가니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학교를 다녀와서 훈련을 시작하면 거의 저녁 시간이라 당구 연습할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했다. 게임 수만 봐도 학교에 다닐 때와 안 다닐 때가 거의 두세 배가량 차이가 난다.

결국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작년에 휴학했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지금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학업을 계속할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지 아버지와 상의 후 결정할 예정이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올해도 작년만큼 열심히 할 테니 끝까지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올해 첫 목표인 팀선수권대회가 미뤄져서 다음 시합이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빨리 열리는 대회의 우승을 목표로 연습하겠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 지키시길 바란다.

 

인터뷰·글=김민영 기자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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