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부터 1984년까지 BC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들
BCA(Billiard Congress of America, 미국당구협회) 명예의 전당은 1966년 이래로 우수 당구선수들과 당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들에 대해 표창을 해왔다. 2014년까지 선수 부문과 공로 부문 등 두 가지 부문에서 총 65명(선수 50명, 공로자 15명)이 BC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수 부문은 20년 동안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적어도 1회 이상 세계 챔피언에 오른 뛰어난 선수를 헌액하고, 공로 부문은 당구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지미 카라스 Jimmy Caras(1910~2002)
1977년 헌정 “천재 소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지미 카라스는 살아있을 때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두 번째 사람이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당구를 치기 시작해서 열 일곱 살 때 한 시범 경기에서 랄프 그린리프를 꺾고는 전 세계에 천재 소년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로부터 19년 후인 1936년 그는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챔피언으로 등극했으며, 이후 1938년과 39년, 그리고 10년 후인 1949년에도 월드 챔피언 왕좌에 올랐다.
또한, 그로부터 18년 후인 1967년에는 US 오픈에서 48명의 선수 중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여전히 그는 ‘가장 많은 공을 친 사람’으로, ‘가장 많은 시합에서 우승한 사람’으로, ‘최소 이닝 챔피언’ 등으로 기네스북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빙 크레인 Irving Crane(1913~2001)
1978년 헌정 “The Deacon”
뉴욕 리보니아 출신의 어빙 크레인은 그에게 장난감 당구대가 주어졌을 때부터 당구에 대한 그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10대 때부터 꾸준히 당구를 쳐왔지만, 23살 때까지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1942년에서야 그의 첫 월드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24개의 메이저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46년, 1955년, 1966년, 1968년, 1970년 월드 크라운과 1968년 인터내셔널 라운드 로빈 챔피언십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크레인은 뛰어난 경쟁자들을 제치고 1978년 빌리어즈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위대한 승리는 1966년 US 오픈에서였다. 그는 결코 능가할 수 없는 기록을 세우며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스티브 미저랙 Steve Mizerak(1944~2006)
1980년 헌정 “The Miz”
미국 뉴저지의 퍼스 앰보이에서 태어난 스티브 미저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을 지배한 세계 풀 챔피언이다. 그는 짧은 경력 동안 1970년부터 1973년에 걸쳐 US 오픈에서 네 차례나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으며, 1982년과 1983년에는 PPPA 월드 오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는 1986년 당구 영화인 <컬러 오브 머니>에 출연하였으며, 1990년과 2000년대에는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 비치 레이크 파크에서 풀 당구장을 운영했다. 특히 그는 1996년에 50세 이상의 선수들을 위한 ‘시니어 투어’를 설립했으며, 이후에도 매해 여러 국가의 토너먼트에 출전해 계속해서 상위에 랭크되었다.
도로시 와이즈 Dorothy Wise(1914~1995)
1981년 헌정 “Cool Hand”
워싱턴 스포캔 출신의 도로시 와이즈는 초기 여자 포켓볼 선수로 그녀가 활동하던 초기에는 여자 선수를 위한 내셔널 토너먼트 대회가 매우 적었다. 그녀는 많은 지역 대회와 주 대회에 출전했고 여자 월드 챔피언이 되었다.
BCA가 1967년 처음으로 여자 선수를 위한 국제 토너먼트를 열었을 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즉시 참가했고, 5년 연속으로 US 오픈 타이틀을 차지하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조셉 발시스 Joseph Balsis(1921~1995)
1982년 헌정 “The Meatman”
미국 펜실베이니아 마이너스빌에서 태어난 조셉 발시스는 그가 11살 되던 해, 앤드류 폰지와 어윈 루돌프 같은 사람들과 시범 경기를 가졌으며, 그는 4년 연속 주니어 타이틀을 차지했다. 풀의 침체기 동안 발시스 역시 풀을 떠나 있었지만 1944년 그는 다시금 돌아왔다.
가족이 정육 사업에 종사한 까닭에 컴백과 함께 ‘The Meatman’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 US 오픈 결승전에 다섯 번 진출했으며, 그중 1968년과 1974년 두 번의 승리를 챙겼다. 그는 1965년 권위 있는 당구장경영자협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다음 해 일리노이 주 존스턴 시티에서 열린 월드 올-어라운드 챔피언십의 우승까지 차지하였다.
또한, 그는 존스코 브라더스의 스타더스트 오픈 올-어라운드 타이틀에서 1968년과 1969년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루터 라사이더 Luther Lassiter(1919~1988)
1983년 헌정 “Wimpy”
노스캐롤라이나 엘리자베스 시티에서 태어난 루터 라사이더는 청소년 시절 핫도그와 오렌지 크러시를 들고 동네 당구장 주위를 어슬렁대던 버릇 때문에 “윔피(wimpy)’라는 별명을 얻었다. 라사이더의 전성기는 1960년대에 왔다.
일리노이 주 존스턴에서 열린 존스코 브라더스의 올-어라운드 챔피언십이 열린 11년 동안(1962년부터 1972년까지)라사이더는 스트레이트 풀 타이틀을 다섯 번이나 차지했고, 네 번의 9볼 타이틀, 한 번의 원 포켓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는 또한 1962년과 1963년, 1967년 세 번의 올-어라운드 타이틀을 계속해서 획득했으며, 1969년 BCA US 오픈과 1971년 스타더스트 월드 올-어라운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루돌프 원더론 Rudolph Wanderone(1913~1996)
1984년 헌정 “Minnesota Fats”
아마도 풀 역사상 가장 많은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인물인 ‘미네소타의 뚱보’ 루돌프 원더론은 비록 월드 챔피언십이라고 부르는 대회에서 사실상 단 한 번도 우승을 한 적이 없지만,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그는 풀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보여주는 풀 홍보가였으며, 연설자이자 다른 선수들보다 노출의 관점에서 게임에 더 많은 일을 했다. 처음 ‘브루클린 뚱보’,‘뉴욕 뚱보’로 불리던 원더론은 1960년대 초 영화 <허슬러>가 히트를 치자 자기 자신을 ‘미네소타 뚱보’라고 스스로 새로 고쳐 불렀다.
그 이후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풀 쇼를 선보였으며, 1960년대 동안 내셔널 TV 쇼와 ‘셀러브리티 빌리어즈’에서 호스트로 활약했다. 원더론은 이즈음부터 모든 토너먼트 출전을 중단했다.
김민영 기자
skyway02@thebilliard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