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전용' 당구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1993년 5월 13일을 기억하는가? 이날은 한국 당구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이날 이후 당구는 ‘유기’에서 정식 ‘스포츠’로 비로소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그날은 바로 헌법재판소의 ‘18세 미만 당구장 출입금지’ 위헌 결정 판결이 난 날이다.

이날 판결은 단순히 ‘당구장에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다, 없다’만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당구가 스포츠이며, 청소년이 당구를 치는 것이 해롭지 않다, 당구장은 체육시설이므로 이에 준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국가 최고 법률기관인 헌법재판소의 9인 헌법재판관이 전원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18세 미만 당구장 출입금지' 위헌 판결을 받아낸 박기호 은평구의원

이 판결로 인해 당구는 스포츠가 되는 발판을 쌓을 수 있었고, 당구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당구에 대한 이미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데 22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는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당구장을 ‘성인 전용’으로 운영하여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게 만드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체육시설인 당구장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는 것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이고 건전한 보통 사람의 생각이다. 그런데 스포츠인 당구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당구장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상식적인 판단에 반하여 ‘성인 전용’ 당구장을 법제화하는 법안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14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성원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세러모니를 펼치고 있다

2015년판 당구장 청소년 출입금지 법안

당구장에 청소년의 출입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성인 전용’ 당구장의 운영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이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쏟아 부은 당구인들의 노력은 둘째 치더라도,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한‘성인 전용’ 당구장이 합법화되면 당구는 얼마나 더 음성화될 것이고, 또 당구 이미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런 법안을 결코 반길 수 없다.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과 법에 의해 오히려 당구장이 ‘성인 전용화’되어 국민의 건강과 당구를 함께 망치는 편법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달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청소년이 출입하는 당구장에 한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성인 전용으로 운영하는 당구장은 흡연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당구장 금연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구장 금연구역 지정을 놓고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부분적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성인 전용으로 당구장을 운영하여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시키면 금연구역에서 제외하고,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당구장만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청소년을 받지 않는 성인 전용 당구장은 법적으로 흡연이 가능한 체육시설로 영업할 수 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담뱃값을 올리고 모든 건물의 실내장소와 공원, 심지어 길거리까지 금연화시킨 정부의 정책과 달리 성인 전용 당구장은 일종의 특혜를 받게 되는 셈이다.  

나경원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지역구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개최하는 ‘민원 데이트’에서 지역 주민이 낸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고 말하며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당구장에 청소년이 출입하는 것이 부당하며, 개정안을 통해 청소년의 건강을 보호하려는 것이 입법 취지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하여 성인 전용 당구장이 영업하게 될 경우 당구장 내에 유해 시설이 편법으로 들어서 음성화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당구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처럼 ‘유해한 오락’으로 변질되어 당구장은 다시 ‘유기장’과 같은 시설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다.

당구와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잘못 인식되어 헌법소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22년 전의 일이다. 그 후 당구는 스포츠로 완벽하게 진화하였고,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선수들이 국위선양하는 과정을 거쳐 당구를 곱지 않게 보던 국내에서조차도 당구를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다.

22년 전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에게 당구가 유해하지 않으므로 당구장에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다”라고 판결하며 “당구는 스포츠, 당구장은 체육시설이다. 이에 준한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판시했다. 다른 체육시설과 마찬가지로 전면 금연을 시행하여 남녀노소가 누구나 당구를 칠 수 있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청소년 전용’ 당구장에 대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인 전용, 청소년 출입 금지’라는 접근 방식으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응답하라, 1993(2)'에서 계속)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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