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각 나라 국가대표 선수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제11회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각 나라 국가대표 선수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20년 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아시아의 바람이 정상에 휘몰아쳤다. 세계선수권에서 정통의 유럽은 뒤로 물러섰고 아시아가 그 자리를 꿰찼다.

지난 6일부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리고 있는 남녀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의 거센 돌풍이 이어졌다.

한국은 조명우(서울시청-실크로드시앤티)가 남자 세계선수권에서 공동 3위에 올라갔고, 여자 선수권에서는 이신영(충남)과 김하은(충북)이 한날 준결승에 진출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먼저 끝난 남자 세계선수권은 베트남이 새 역사를 썼다. 준결승에 쩐뀌엣찌엔과 바오프엉빈이 올라가 결승에 진출했고, 바오프엉빈은 사상 최초의 베트남 3쿠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한 국가 선수가 세계선수권 결승에 모두 올라간 것은 역대 4번째다. 1930년대에 있었던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빼면 지난 2017년에 딱 한 번 있었다.

무려 79년 만에 한 국가 선수가 결승 두 자리를 차지했고, 이 선수들은 바로 벨기에의 프레데리크 쿠드롱과 에디 멕스였다.

당시 준결승에서 쿠드롱은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를 4점차로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멕스의 결승 진출은 극적이었다.

상대는 베트남의 마민깜(PBA). 40:40(20이닝) 무승부로 끝나면서 벌어진 승부치기에서 멕스는 3:2 신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79년 만에 같은 국가끼리 세계선수권 우승을 다퉜다.

결승전은 쿠드롱의 9이닝 만에 40:16의 완승으로 끝났다. 프로스포츠 종목으로 완성도를 보면 사실상 이때가 세계선수권 결승에 같은 국기가 게시된 유일한 대회였다.

여자 세계선수권 8강에서 세계 최강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의 이신영(충남).
여자 세계선수권 8강에서 세계 최강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의 이신영(충남).
세계선수권에 처음 나간 김하은(충남)은 조별리그에서 클롬펜하우어를 꺾은 데 이어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첫 출전에 우승을 넘보게 됐다.
세계선수권에 처음 나간 김하은(충남)은 조별리그에서 클롬펜하우어를 꺾은 데 이어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첫 출전에 우승을 넘보게 됐다.

유럽은 3쿠션 세계선수권에서 90년대 이후부터 거의 매년 우승을 해왔다. 지난 2007년 일본의 우메다 류지와 2014년 한국의 최성원(PBA), 딱 두 번을 제외하면 모두 유럽 선수가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베트남은 유럽으로부터 9년 만에 3쿠션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탈환했다. 일본과 한국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베트남 당구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을 우승했다.

결국은 허물어질 벽이지만, 언제 허물어질지는 의문이었다. 한국은 2015년과 2016년에 두 번 결승에 올라갔지만, '3쿠션 사대천왕'의 벽에 부딪혀 정상을 지키지 못했고 이후 유럽은 더 단단하게 성을 쌓았다.

다시 그 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혜성처럼 등장한 '베트남의 신성' 바오프엉빈이 유럽을 허물고 마침내 깃발을 꽂았다. 1995년생인 바오프엉빈은 김행직보다 세 살이 더 어리고 조명우보다 두 살 많은 베트남의 유망주다.

이번 우승으로 바오프엉빈은 베트남의 첫 세계챔피언인 동시에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의 결승 독점, 유럽이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아성을 무너트리는 역사 위에 역사를 썼다.

2017년 벨기에 이후 아시아 국가로는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우승과 준우승을 독차지한 베트남. 
2017년 벨기에 이후 아시아 국가로는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우승과 준우승을 독차지한 베트남. 

아시아의 돌풍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여자 세계선수권까지 이어졌다. 이번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한국의 이신영과 김하은이 '세계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모두 이겼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리고 베트남처럼 여자 세계선수권 준결승에 2명 모두 올라갔다. 한국 역시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 두 자리에 태극기를 꽂았다.

만약 한국이 우승하면 사상 첫 여자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다. 조별리그에서 한 번 꺾었던 네덜란드의 미리암 프루임과 대결하는 이신영은 승리가 예상되고, 일본의 니시모토 유코와 대결하는 김하은의 준결승전이 관건이다. 

니시모토는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만 두 차례 차지했고, 지난해에도 준결승에 진출해 한국의 한지은(PBA)에게 패한 바 있다.

김하은이 14일(한국시간) 오후 7시에 치러지는 준결승에서 니시모토를 이기면, 베트남처럼 한국이 결승을 독식해 사상 최초로 여자 3쿠션 세계챔피언이 탄생하게 된다.

한국은 남자에 이어 여자까지 세계챔피언 배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베트남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이 역사 위에 역사를 쓰려고 한다. 이신영과 김하은, 두 선수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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