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1월 범당구계 조직으로서 대한당구협회가 창립되었으나 순수한 당구선수들만으로 된 단체는 아직 없었다.

당구선수들끼리의 친목 화합을 다지고 기술교류와 기술 향상, 국제적인 진출까지를 고려한 선수단체의 구성을 갈망하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마침내 1957년 1월 31일 ‘대한당구선수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38명의 당구선수들이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방달성이 발행한 <월간당구> 제2호에는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왼쪽부터) 조동성 부회장, 박수복 부회장, 방용하 고문


우리 선수의 국제적인 진출을 기약하며 - 대한당구선수회 드디어 발족

수개월 전부터 발기하여 준비하여 오던 가칭 대한당구선수회는 지난 1월 31일 오후 6시 시내 을지로1가 올림픽다방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당구계의 원로 방용하 선생의 개회사에 이어 조동성 선수 경과보고, 헌장통과, 임원선거에 들어가서 조동성, 김명호, 박수복, 함병주, 송준상 씨 등 5명으로 구성된 전형위원에 의하여 아래와 같은 임원이 선출되었다. 

고문(추대) 방용하, 장수복
회장 방달성
부회장 박수복, 조동성
사무장 김광수

이어서 이번 대한당구선수회 회장으로 피선된 방달성 씨의 요지 다음과 같은 인사말씀이 있었다. 

-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겠다 - 

‘불초 미약한 저를 이 중요한 자리에 앉게 하여 주신 것은 천만 의외이며, 선배 제위가 많이 계시는데 비추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호의에 수응하여 대한당구선수회를 위하여 더욱 더 노력하여 우리 선수회가 반석 같은 위치에 두는 방향으로 쇄신분골하겠습니다. 앞으로 분열된 우리 당구계의 융협 문제라든가 선수들의 기술적, 질적인 향상이라든가, 국제무대 진출, 당구기재(機材)와 당구술어 통일 등등 허다한 사업에 있어서 여루 회원 제위들의 아낌없는 협조만이 그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대한당구선수회의 성격과 근본사명이 앞에 말씀한 바와 같으므로 당구를 잘 치는 고점자만이 모이는 집결체가 아니라 널리 문호를 개방하여 그 행동이나 정신면에 있어서 비신사적인 인사는 아무리 선배이며 고점자라도 우리가 환영하지 않을 것이요, 아무리 하점자일지라도 열의가 있으며, 독실한 신사로서 당구계에 진출하겠다는 신인은 우리가 쌍수로 환영하여 받아들여서 다양다채의 선수를 육성하는 방향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원은 시시비비를 엄격히 통제하여 과단성 있는 정책으로서 결코 ‘섹트’를 조장하는 분파(分派) 행동은 엄격하게 규탄하여야 할 것이며 개개의 선수 자신이 회원된 위신과 긍지를 가지고 일반 대중에 모범된 행동을 하여 주시기 바라며, 이것으로써 회장에 피선된 인사로 하는 바입니다.'

대한당구선수회 발기인 명단 
<서울> 방용하, 방달성, 조동성, 박수복, 김명호, 이의선, 최석영, 김경호, 김상호, 박세영, 함병주, 최덕관, 전창수, 송준상, 지윤옥
<부산> 전병학, 김창섭, 강두석, 김정환, 박윤조, 박기환, 허근, 이건종, 윤진태
<대전> 권재덕, 노기호, 이상만
<청주> 하건홍
<인천> 조성철
<대구> 노효원, 김동수
<이리> 김영재
<군산> 이완근
<전주> 윤형진

헌장
(헌장은 제8장 제26조로 발표되어 있으나, 전재는 생략한다)


한국 당구선수 단체의 뿌리를 이루는 대한당구선수회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처음으로 조직되어 그 이후 이합집산과 부침을 거듭하며 오늘날 대한체육회 산하 정가맹 경기단체로 그맥을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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