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골프 투어가 테니스의 영향으로 남녀 상금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과연 당구도 테니스처럼 남녀 상금이 같아지는 날이 올까. 사진은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 상금랭킹 1위에 올라 있는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   사진=PBA 제공
미국 프로골프 투어가 테니스의 영향으로 남녀 상금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과연 당구도 테니스처럼 남녀 상금이 같아지는 날이 올까. 사진은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 상금랭킹 1위에 올라 있는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   사진=PBA 제공

최근 미국에서는 여자 프로골프(LPGA)의 우승 상금이 남자 PGA보다 큰 대회가 개최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남자와 여자의 상금의 격차가 있는데, 골프에서 처음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 상금을 받는 대회가 열리게 됐다.

내년에 개최되는 LPGA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의 우승상금이 두 배로 늘어나 400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52억원이 책정되면서 웬만한 남자 프로골프(PGA)의 상금을 넘어섰다.

또한, 남자 대회 중 최고 우승상금인 450만달러가 걸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불과 50만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머지 PGA 투어 메이저대회 우승상금보다 많고,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 우승자가 올해 받은 상금과 같은 규모다.

프로스포츠 역사상 테니스 외에 남자와 여자 상금이 같은 수준으로 책정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팬들은 크게 반겼고, LPGA도 "역사적인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우승상금 400만달러' 이슈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상금을 받는 프로테니스의 영향이다. 테니스의 경우 남자(ATP)와 여자(WTA) 투어 우승자가 같은 금액의 상금을 받는다. 올해 열린 US오픈 단식 우승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 300만달러(약 39억원)를 받았다.

프로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중 윔블던은 235만파운드(약 39억원), 프랑스오픈 230만유로(약 32억원), 호주오픈 297만5000달러(약 39억원) 등이 남녀 단식 우승자에게 똑같이 주어졌다.

테니스 대회에서 남녀가 같은 상금을 받게 된 계기는 지난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세계적으로 남녀평등의 물결이 일었던 당시 테니스 선수의 남녀 우승상금은 8배가량 차이가 났다. 

프로테니스는 남자(ATP)와 여자(WTA)가 메이저대회에서 똑같은 상금을 받는다.   사진=WTA 제공
프로테니스는 남자(ATP)와 여자(WTA)가 메이저대회에서 똑같은 상금을 받는다.   사진=WTA 제공

이에 불만을 품은 빌리 진 킹(미국)을 중심으로 남녀 상금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세계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가 결성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30세였던 킹에게 한때 남자 테니스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바비 릭스(당시 55세)가 성 대결을 제안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로도 잘 알려진 바 있다. 쇼맨십이 강했던 릭스는 "여자 테니스 선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55세의 나이로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남녀평등을 외치던 킹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킹은 릭스의 도전을 거절했으나, 당시 메이저 3개 대회를 휩쓸었던 호주의 마거릿 코트(당시 31세)가 도전에 응해 세트스코어 0 대 2(2-6, 1-6)로 릭스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조롱은 더 심해졌고, 킹의 주장은 힘을 잃어갔다.

결국, 물러설 곳이 없었던 킹이 릭스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두 번째 성 대결이 성사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킹이 3 대 0(6-4, 6-3, 6-3)으로 릭스를 꺾었고, 그동안 여자 스포츠 선수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던 킹의 업적이 세계적인 평가 받게 됐다.

이 일화로 테니스는 우승상금의 남녀평등이 실현됐다. 당장 1973년 US오픈부터 남자와 여자 우승상금이 2만5000달러로 동일해졌다. 

물론, 이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남자 선수들에 의해 간혹 표출되기도 한다. 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조차 "남자 경기에 관중이 더 많은데 왜 여자 선수와 우승상금이 똑같냐"고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남녀 간의 상금이 같다 보니 테니스계의 성 대결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슈가 됐다. 가장 유명했던 일화는 '윌리엄스 자매' 사건이다.

실제 빌리 진 킹의 70년대 당시 모습.  사진=WTA 제공
실제 빌리 진 킹의 70년대 당시 모습.  사진=WTA 제공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한 장면.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한 장면.   

'테니스 여제'로 평가받는 미국의 여자 테니스 세계챔피언 세리나 윌리엄스(42)와 비너스 윌리엄스(43)는 "여자 대회는 시시해서 남자 대회에 출전하겠다"며 "남자 선수 200위 이하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당시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203위였던 카스텐 브라쉬(독일)가 윌리엄스 자매에게 도전해 비공식 경기를 가졌는데, 이 대결에서 윌리엄스 자매는 각각 1-6, 2-6으로 참패해 망신을 당했다. 

테니스는 성 대결 논란이 계속됐지만, 2001년 호주 오픈과 2006년 프랑스 오픈, 마지막으로 2007년 윔블던까지 남녀 상금을 똑같이 책정하면서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는 남자와 여자 단식전 우승자가 현재까지도 동일한 상금을 받고 있다.

내년에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우승상금이 남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PGA 최종전 타이틀스폰서인 CME그룹의 테리 더피 회장이 올해 열린 US오픈 테니스 대회를 관람하러 갔다가 남녀 우승자의 상금이 똑같다는 것을 알고서 상금을 크게 올리기로 결심, 우승상금을 두 배나 증액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피 회장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같은 역할을 한다면 남녀가 임금을 달리 받을 이유가 없다고 늘 생각했다. 남자라고 우대받을 일은 없다"며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

올해 LPGA 투어 중 우승상금이 가장 컸던 'US 여자오픈'과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은 역대 최고 우승상금인 200만달러(약 26억원)가 지급됐다.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는 한국의 양희영이 우승해 200만달러를 받기도 했다.

LPGA 상금은 몇 년 사이에 크게 증가했다. PGA와 비교하면 아직 격차는 여전하지만, 최근 6년 동안 무려 5000만달러(약 652억원)나 총상금이 늘어났다.

2019년 7055만달러(약 920억원)에서 2020년 총상금 7510만달러(약 979억원)로 올라갔고, 2021년 7645만달러(약 996억원)로 소폭 늘었다가 2022년 8640만달러(약 1126억원), 2023년 1억140만달러(1322억원)로 크게 증가했다.

LPGA 4대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  사진=LPGA 제공
LPGA 4대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  사진=LPGA 제공
올해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하며 200만달러의 상금을 받은 양희영.  사진-LPGA 제공
올해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하며 200만달러의 상금을 받은 양희영.  사진-LPGA 제공

시즌 최종전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녀 차이는 크다. 남자는 4대 메이저대회 중 US오픈이 360만달러(약 47억원), 마스터스 324만달러(약 42억원), PGA 챔피언십 315만달러(약 41억원), 디오픈 300만달러(약 39억원) 수준이다.

총상금도 PGA가 4억6000만달러(약 6000억원), LPGA가 1억140만달러(약 1322억원)로 차이가 난다. LPGA 내년 투어 총상금은 1억2055만달러(약 1572억원) 규모다. 올해와 비교하면 1915만달러(약 250억원) 늘어났다.

그러나 여자 골프 선수가 아직은 남녀 상금이 같은 테니스 선수의 수입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매체가 발표한 내용에는 올해 상금과 후원, 광고 수입 등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여자 선수 10명 중 7명이 테니스 선수였다.

골프는 103억원으로 10위에 오른 넬리 코다(25·미국)가 유일하며, 297억원을 벌어서 1위에 오른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19·미국)와 무려 3배나 차이가 난다.

고프는 상금 88억원에 후원 계약으로 209억원을 벌었고, 이가 시비옹테크(22·폴란드)는 상금 129억원과 후원 157억원 등 총 286억원을 기록해 2위에 올랐다.

3위는 중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인 아일린 구(20)가 261억원, 4위에는 212억원을 벌어들인 테니스 선수 엠마 라두카누(21·영국), 5위에 오른 일본의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26)는 후원으로만 197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97억원을 벌어서 여자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미국).  사진=WTA 제공
올해 297억원을 벌어서 여자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미국).  사진=WTA 제공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혜미(웰컴저축은행).  빌리어즈앤스포츠 DB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혜미(웰컴저축은행).  빌리어즈앤스포츠 DB

대부분의 스포츠는 우승상금과 중계권료, 스폰서 비용 등 모두 남자가 높다. 그러나 남자와 함께 나란히 관심이 집중되는 테니스를 보면, 여자 선수의 상금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프로당구(PBA) 투어 역시 여자부(LPBA) 투어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경기력으로 남자를 넘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상금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다.

현재 PBA와 LPBA 투어는 우승상금 1억원과 2000만원(스폰서 의견에 따라 3000만원)으로 5배 차이가 난다. 그동안은 남녀평등을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격차가 컸지만, 한 번 고민을 해볼 만도 하다.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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