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 챔프' 최원준이 4년 2개월의 잠에서 깨어나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원년 챔프' 최원준이 4년 2개월의 잠에서 깨어나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원년 챔프’ 최원준이 4년 2개월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그동안의 부담을 완전히 털어냈다.

지난 밤 최원준은 프로당구 PBA 시즌 6차 투어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튀르키예 전사' 비롤 위마즈를 세트스코어 4-2로 꺾고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프로당구 PBA 투어 원년 3번째 투어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최원준은 이듬해 팀리그에 발탁되며 꽃길만 걸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첫 우승 후 4년 동안 긴 슬럼프를 겪었다는 최원준은 “이런 날이 다시 올 줄 몰랐다”며 우승 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PBA 출범 초창기 때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는 PBA가 쉬운 줄 알았다. 두 번째 투어에서 32강까지 올라가고 해볼만 하다고 느꼈는데, 그다음 투어에서 곧바로 우승했다. 하지만 우승 후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너무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는 그 순간을 “양지에서 음지로 뚝 떨어졌다”고 표현했다. 특히 그는 “우승 이후 성적을 내지 못하자 사람들이 ‘반짝 우승이었냐’고 까지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는 마르티네스가 누군지, 선수들이 어떤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만 있었다. 하지만 우승 후에 선수들의 실력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또 우승하자마자 큐 스폰서가 생기면서 쓰고 있던 우승큐를 바꾸면서 슬럼프가 왔다. 그때는 큐가 그렇게 중요한지도 몰랐다”고 슬럼프의 원인을 밝혔다.

우승 기자회견을 하는 최원준.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우승 기자회견을 하는 최원준.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하지만 이 슬럼프가 그를 더 단단히 만드는 계기도 됐다.

“갑작스러운 슬럼프를 겪으면서 큐 탓도 하고, 내 탓도 하고 했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당구를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다 내려놓고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상담 교수님이 우승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나처럼 갑작스런 우승 직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고. 오히려 서서히 경험을 쌓고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서 우승을 하는 것이 장기적인 선수 생활에 더 좋다고 하더라. 그 상담을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고, 멘탈도 더 탄탄해졌다”고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았다.

또한, 첫 번째 우승으로 다음 해 블루원리조트의 지명을 받은 그는 그곳에서 엄상필을 만난 걸 당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엄상필 선수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블루원리조트에서 형이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을 많이 보완해 줬다. 형의 조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보고, 대충 치고 하늘에 맡기지 말라’ 이런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승전에서도 3세트부터는 상필이 형이 가르쳐준 스타일로 쳤다”고 이번 우승의 배경을 전했다. 

지인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최원준.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지인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최원준.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최원준과 비롤 위마즈의 결승전 뱅킹.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최원준과 비롤 위마즈의 결승전 뱅킹.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이번 대회 중 가장 힘든 경기로 최성원과의 준결승전을 꼽은 그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그동안 최성원 선수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힘든 선수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경기 운영을 거의 안 하는 것 같은데 또 그건 아니고, 근데 그 모습이 또 너무 자연스럽고, 정말 경험 많은 선수라는 걸 느꼈다. 이러니 외국 선수나 한국 선수나 다들 힘들어하는구나 싶었다"며, "사실 6세트에서 최성원 선수가 1점 남았을 때는 다 내려놨다. 다만 기회가 온다면 한 큐에 끝내자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기회가 왔고, 그 기회에 끝낼 수 있었던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전했다.

또한, “최성원 선수와의 이번 준결승전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앞 경기를 보면서 기다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보통 상대 선수들끼리 시합 전에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데, 경기를 보면서 저럴 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긴장한 나에게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데리고 나가기도 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인배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선수가 없다. 같이 경기를 하면서 팬이 됐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준결승전이 끝난 후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 최성원은 최원준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준결승전이 끝난 후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 최성원은 최원준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경기도 동탄과 전북 익산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내며 아내가 일하는 주말에는 두 딸의 육아를 전담하느라 연습할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한 최원준의 별명은 ‘게으른 천재’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1부 투어 성적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혀를 내두른다. 그 역시도 힘든 순간에는 ‘나는 큐스쿨은 안 갔어’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아버지는 내가 당구 치는 걸 정말 싫어하셨는데, 첫 우승 후에 우승 트로피를 아버지가 가져가시더라.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꼭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었는데, 작년에 돌아가셨다. 두 번째 우승 트로피도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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