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성원.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결승전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성원.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프로당구 데뷔 첫 해 다섯 번째 대회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소감이 어떤가?

우승은 항상 너무 기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와 버금가는 기쁨을 누리는 것 같다. 드디어 한을 푼 것 같다.

세계선수권 우승만큼 기쁘다는 의미는 어떤 건가? 그때만큼 과정이 힘들어서? 혹은 상금이 커서?

당연히 프로에 온 이유가 돈을 벌려고 온 건 맞지만, PBA에서도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서 왔다. 네 번 연달아 첫판에 탈락하면서 완전히 멘붕에 빠졌다. ‘괜히 왔나’ 후회도 좀 했는데, 이번 대회는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서 4강전과 8강전도 너무 못 쳤는데 상대 선수도 실수를 많이 해서 그게 나에게 가장 큰 운이 아니었나 싶다. 반면에 결승전은 이상하게 또 너무 집중이 잘 됐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게 우승 요인인 것 같다.

힘들지 않았나?

엄청 힘들다. 하루에 한 경기지만 일정이 거의 일주일 가까이 되고, 경기 시간도 오전, 오후 정해지지 않고 들쑥날쑥해서 컨디션 관리가 힘들었다.

이번 시즌 4차 투어까지 모두 외국 선수가 우승을 했다. 오늘도 하비에르 팔라존이 좀더 우세할 거라는 추측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대진운이 좋아서 결승까지 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PBA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어떤 선수를 만나도 쉬운 선수는 없다는 것이다. PBA 선수들의 수준이 엄청 높다. 설령 대진운이 좋았다고 해도 결승전에서 잘했기 때문에 다 무마되지 않을까 싶다.

최성원이 프로 데뷔 첫 해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최성원이 프로 데뷔 첫 해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어떤 마음으로 결승에 임했나?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공만 보고 치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집중이 잘 됐다. 긴장이 하나도 안 됐다. 1세트도 치다 보니 2이닝 만에 끝나 있었다.

결승전에서 뱅크샷 시도가 많았다. 의도했나?

결승전 전에는 1점을 칠 수 있는데 무리하게 2점을 욕심내서 실수를 많이 했다. 그래서 힘들어진 경기가 많았다고 느껴져서 결승전에서는 뱅크샷을 일부러 욕심내지 않았다. 뱅크샷은 욕심내지 말고 나온 것만 치자고 생각했는데, 딱 뱅크샷 포지션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경기를 하면서 잘 치는 선수들은 무리한 뱅크샷은 피하는구나 배우기도 했다.

준결승전이 늦게 끝나서 결승전까지 별로 쉬지 못했을 것 같은데.

4강전 때 몸 상태가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정말 쉬는 시간이 짧았는데 그사이에 동생들이 조금이라도 먹어야 힘을 낸다고 해서 먹기 싫은데 동생들이 족발을 사줘서 족발과 주먹밥을 조금 먹었다. 그 덕에 결승 때 힘이 좀 났고,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오전에 경기하고 6시간 쉬고 결승을 하면 오히려 힘들다. 사이 시간이 어설프게 3, 4시간만 돼도 애매하다. 오히려 1, 2시간 쉬고 결승한 게 도움이 됐다.

4강전에서 이상용 선수에게 1, 2세트를 다 졌다.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0-4로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 세트라도 이기자는 마음으로 세트에 집중하다 보니 2-2가 되더라. 문제는 2-2를 만든 후에 급속도로 방전되는 느낌이었다. 팔이 앞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만약 이상용 선수가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4강에서 이기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심지어 5, 6세트를 15:14로 이겼다. 그때는 진짜 천운이 따르지 않았나 싶다.

결승전 뱅킹 전에 인사를 나누는 하비에르 팔라존과 최성원.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결승전 뱅킹 전에 인사를 나누는 하비에르 팔라존과 최성원.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그동안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번 우승과 비교하자면?

예전 우승상금에 비하면 엄청난 상금이기 때문에 기분이 더 좋다. 하지만 평생에 가장 기쁜 우승은 세계선수권이 아닐까. 당구를 치면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 우승이 세계선수권 버금가게 기쁜 이유는 이번 시합 전까지 너무 비참했다. 맨날 일회전 탈락만 4번 정도를 하다 보니 이러다 시즌 끝날 때까지 1회전 탈락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다. 128강전에서 륏피 체네트와 첫 경기를 할 때 10점 하이런을 맞고도 이겼다. 그때 이제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 번 뚫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오늘 우승으로 그동안의 어려움에 대한 보답이 온 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

휴온스 선수 두 명이 결승까지 진출했다. 팀리그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까?

오히려 좀 걱정이 된다. 앞으로 개인 투어가 두 번 더 남았는데 그거 끝나자마자 팀리그에 돌입한다. 개인전에서 선수들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하고 팀리그가 시작되면 선수들이 소강상태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인 투어보다 팀리그가 더 걱정이 많이 된다.

그래도 앞으로 개인 투어 성적이 더 욕심이 나지 않을까?

지금은 연달아 우승이고 뭐고 아무런 욕심이 없다. PBA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하자는 목표로 왔다. 더 하면 좋겠지만 지금 결과에 너무 만족하고, 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우승을 했기 때문에 남은 투어는 PBA에 더 적응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삼겠다. 이제는 설사 1회전 탈락을 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준결승전부터 결승전까지 최성원의 뒤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후배 당구선수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준결승전부터 결승전까지 최성원의 뒤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후배 당구선수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PBA 투어에서 외국 선수들이 계속 우승을 하고 있다.

외국 선수들은 당구를 시작할 때 기본기부터 닦고 3쿠션을 치기 때문에 기본기에서 국내 선수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선수들은 대부분 당구장에서 처음 당구를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실력적인 차이가 난다. 하지만 PBA는 경기 당일의 컨디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붙어 봐야 안다. ‘운7기3’이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오늘 나는 ‘운9기1’의 느낌이었다.

우승의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누구인가?

가족들이 많이 생각났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고, 요즘 편찮으신 어머니한테도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우승으로 효도한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심적으로 뭔가 뭉클한 게 많았다.

우승이 굉장히 오랜만이다.

PBA 이적 전에도 준우승, 4강, 8강만 했다. 우승 못 한 지가 5~6년? 6~7년? 정도 됐나? PBA에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 넘어왔기 때문에 부담이 배가 됐다. 그나마 연습량이 많이 늘었다. 지금 제일 문제는 체력 관리다. 2세트까지 에너지를 쏟고 나면 내 팔이 아닌 것 같고, 체력적인 면을 보충하지 않으면 못 버티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우승을 했기 때문에 PBA에 잘 온 것 같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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