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와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이 이번 2차 투어 시상식에서 찍은 '우승자 단독 투샷'.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와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이 이번 2차 투어 시상식에서 찍은 '우승자 단독 투샷'.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밤사이에 프로당구(PBA)는 한바탕 떠들썩했다. 3쿠션 역사상 최초로 상금으로 10억을 돌파한 'PBA 황제'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웰컴저축은행)의 프로행은 성공 신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번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PBA-LPBA 챔피언십'은 당구 팬들에게 '롱롱 남매'로 사랑받는 쿠드롱과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가 동시 우승한 첫 대회였다.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 인터뷰는 빠질 수 없다. PBA 투어는 시상식이 끝나면 준우승자와 우승자가 차례로 기자실로 들어와서 20분가량 이야기를 나눈다.

기자들은 이때가 가장 분주하다. 축제가 끝나고 모두가 긴장이 풀어지는 이 시간에 기자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대부분 한 언론사에서 기자 1명씩 나오기 때문에 혼자서 결승전 결과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동시에 준비하는 통에 시간이 정신 없이 흘러간다.

투어 숫자도 적지 않아서 매번 PBA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PBA 프레스룸'을 늦게까지 지켰다.

그렇게 기자가 작성한 기사는 데스크를 거쳐서 웹사이트와 포털에 송출을 끝내고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과 만나게 된다.
 

이날 시상식에서 쿠드롱과 준우승자 비롤 위마즈(웰컴저축은행)가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 사진.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이날 시상식에서 쿠드롱과 준우승자 비롤 위마즈(웰컴저축은행)가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 사진.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스롱과 쿠드롱이 찍은 기념 사진. 두 선수의 거리는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 사이에 떨어진 적정한 수준으로 보인다.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스롱과 쿠드롱이 찍은 기념 사진. 두 선수의 거리는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 사이에 떨어진 적정한 수준으로 보인다.  사진=안산/이용휘 기자

'기자실 난입 소동'의 원인... "우승자의 거리"

가장 역사적인 날, 이 중요한 순간을 누군가 망쳐놨다. 우승자 쿠드롱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준우승자 비롤 위마즈(튀르키예·웰컴저축은행)와 같이 기자실로 왔다. 

보통은 준우승자가 먼저 와서 인터뷰를 하고 그 뒤에 우승자가 오는데, 이날은 소속팀이 같은 두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와서 쿠드롱이 위마즈의 인터뷰를 밖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때 기자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쿠드롱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왜 스롱을 밀었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LPBA 우승자 스롱의 매니저 겸 사진사를 자칭한 중년 남성이 쿠드롱과 문밖에서 설전을 벌인 것.

심지어 그 사람은 쿠드롱보다 먼저 기자실로 들어와 "쿠드롱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우승자 단상 앞에 섰다.

황당한 일이다. 오로지 쿠드롱을 위한 시간이며, 누구도 이를 방해할 수 없는데 그 남성은 난데없이 우승자의 권리를 뺏어갔다.

기자들 역시 가장 바쁘고 신경이 날카로운 시간에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나가라고 촉구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쿠드롱에 대한 험담을 이어갔다.

그 사람의 주장은 시상식에서 우승자 투샷을 찍을 때 쿠드롱이 스롱을 밀어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이다. 보통 우승자 투샷 때 남녀 선수는 잘 붙지 않는다. 

남자 선수가 거리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메라가 많고, 요즘은 방송카메라로 촬영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 많은 눈과 카메라 앞에서 쿠드롱이 스롱을 밀어냈다는 주장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지난 3월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스롱과 조재호(NH농협카드)의 기념 촬영. 쿠드롱보다 오히려 더 떨어져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 3월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스롱과 조재호(NH농협카드)의 기념 촬영. 쿠드롱보다 오히려 더 떨어져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 시즌 8차 투에서 우승한 스롱과 조재호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 시즌 8차 투에서 우승한 스롱과 조재호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남자 선수와 고령일수록 어색한 사진 촬영

시상식 기념촬영 때 입상자들은 대부분 어색해한다. 아무리 입상 경험이 많은 선수라 해도 전문모델이 아니어서 포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잡지 화보 촬영을 할 때는 더 그렇다. 포토그래퍼의 슛에 맞춰 표정과 포즈를 한 번씩 바꿔줘야 하는데 모델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대부분 꼿꼿하게 서 있거나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게 전부다.

따라서 화보를 완성하려면 컷 수에 비해 많은 시간 촬영과 확인을 반복해야 한다. 물론, 화보만큼 어려운 촬영은 아니지만, 선수 입장에서 시상식 사진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정하게 같이 어깨를 맞대고 찍는 선수는 동성일 때다. 남녀 선수는 결코 붙어서 찍지 않는다.

간혹 너무 떨어져서 앵글이 안 좋으면 사진기자가 손짓을 하며 "조금 붙어주세요"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날 두 선수의 앵글은 대부분의 투샷과 거리가 비슷하다. 다른 시상식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해도 크게 문제될만한 상황은 아닌 듯 보인다.

아무리 기념촬영이나 화보라고 해도 나이가 많고 최정상 선수인 쿠드롱이 2, 30대 어린 선수들처럼 적극적으로 포즈를 잡는 모습도 좀 어색하다. 

여태 쿠드롱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한, 아내가 지켜보고 있는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쿠드롱이 좀 더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LPBA 우승자 임정숙과 쿠드롱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LPBA 우승자 임정숙과 쿠드롱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김가영과 쿠드롱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김가영과 쿠드롱의 단독 투샷.  빌리어즈 자료사진

반면에 스롱은 보통 선수들과 다르게 시상식이나 화보 촬영 때 사진을 잘 찍는 선수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사진 찍는 걸 즐기는 스타일인 스롱은 연예인과 패션 모델을 전문으로 찍는 포토그래퍼조차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날 스롱이 투샷 한 장을 찍기 위해 꼬박 하루를 기다렸고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단지 쿠드롱이 거리를 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기 시간에 대한 불만이 애먼 쿠드롱에게 불똥으로 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조차 스롱 본인이 불만을 표출한 것인지, 아니면 그 주변 인물의 불만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스롱의 매니저를 자처한 인물에 대한 신분은 '열성 팬'으로 밝혀졌다. 선수를 너무 좋아하는 팬심으로 인해 스롱은 물론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권리를 박탈당한 쿠드롱과 9일을 넘게 우승자를 기다려 온 당구 팬, 그리고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 기자들 모두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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