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프로당구(PBA) 챔피언에 오르며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은 조재호는 시합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빌리어즈 화보 사진
지난 시즌 프로당구(PBA) 챔피언에 오르며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은 조재호는 시합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빌리어즈 화보 사진

재능만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고, 스포츠 선수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어느 한 가지 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노력과 즐기는 것 두 가지 명제를 충족해도 재능이 없다면 살아남기 어렵다.

당구도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가 완전하게 갖춰져야 좋은 성적이 나오기 마련이다.

지난 시즌에 프로당구(PBA) 투어 '월드챔피언'과 '상금랭킹 1위'를 모두 차지한 조재호(43·NH농협카드) 역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경기를 즐기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변화가 많은 이번 시즌은 특히 즐겨야 할 시즌으로 내다봤다.

조재호는 "경기할 때 재미있고, 이기면 더 재미있는 게 당구"라고 말하며 지난 시즌과 다음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금만 놓고 보면, 여태 받은 상금보다 지난 한 시즌이 더 많을 수도"

조재호는 지난 시즌에 투어 2승과 월드챔피언십 우승으로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프로뿐만 아니라 한참 잘 나갔던 아마추어 시절에도 이렇게 좋았던 적은 없었다.

조재호 역시 이에 동의하며 "아마 상금만 놓고 본다면, 여태 선수 생활하면서 받은 상금보다 어쩌면 지난 한 시즌에 번 상금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시즌에 상금랭킹 1위에 오른 조재호는 4억2250만원을 받았다.

세계 캐롬 당구계는 열악했다. 물론 최고 위치에 올라간 조재호를 포함한 톱클래스 선수들은 연간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졌지만, 대부분 스폰서십이고 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다.

최고 대회였던 '3쿠션 당구월드컵' 우승상금이 우리돈으로 1000만원도 안 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최근 몇 년 전에 2000만원대로 올라갔다.

간혹 큰 상금이 걸린 대회도 있었지만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고, 프로당구가 생기기 이전에 대부분 톱클래스 선수들의 수입 변화에 상금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프로당구가 출범하면서 '꿈의 상금'으로 불렸던 우승상금 1억원은 현실이 돼 이제 상금만으로도 도전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만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프로당구 선수들은 매달 우승상금 1억원에 도전하며 투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공을 치게 됐다.

이것은 모든 프로 선수가 투어를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이며, 선수가 경기를 즐기고 팬들이 즐거워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스템에서 조재호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지켜보는 팬들도 그와 함께 당구를 즐겼다.
 

프로당구 투어 우승컵 2회와 월드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올린 조재호.  빌리어즈 자료사진
프로당구 투어 우승컵 2회와 월드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올린 조재호.  빌리어즈 자료사진

"새 선수들이 와서 투어와 경기가 더 즐거워질 것"

PBA 2년 차 막바지에 합류한 조재호는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거쳐 프로당구에서도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풀 타임 소화한 첫 시즌에 준우승 두 차례를 한 조재호는 지난 시즌 개막전에서 축포를 터트렸다.

마지막 투어와 월드챔피언십까지 우승한 조재호는 첫 번째 PBA 시상식에서 대상까지 받으며 성공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조재호의 성공은 어쩌면 많은 선수에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시즌에 PBA 투어는 판이 더욱 커졌다.

다니엘 산체스(스페인·SY 바자르)와 세미 사이그너, 무랏 나시 초클루, 뤼피 체넷(이상 튀르키예), 응우옌득안찌엔(베트남)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PBA에 합류해 더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TS샴푸가 팀리그에서 빠졌지만, SY그룹과 하이원리조트가 새롭게 합류해 9개 구단으로 늘어난 점도 기대를 더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지난 시즌보다 보는 재미가 클 전망이다. 그런데 선수의 입장에서 조재호의 생각도 같을까.

챔피언에 오른 만큼 그 자리를 더 오래 지켜야 하는 게 조재호의 당연한 위치다.

조재호는 이에 대해 "선수 입장에서도 기대가 크다. 당연히 투어와 경기가 더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기할 때 재미있고, 이기면 더 재미있는 게 당구"라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선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재호는 "새 선수들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관건이다. 빨리 적응할 수도, 늦게 적응할 수도 있다"며 "가능하다면, 경험 많고 강한 상대방들이 적응하기 전에 미리 타이틀을 획득하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마 다른 선수들도 나처럼 생각할 거다. 그래서 다음 시즌은 초반에 승부가 아주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재호와 NH농협카드 선수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조재호와 NH농협카드 선수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가장 관건은 체력과 꾸준한 연습"

지난 시즌과 달라진 것은 없냐는 질문에 "큐가 바뀌었다. JBS에서 나와 더 잘 맞는 새로운 큐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 이외에는 모든 루틴이 똑같다. 조재호는 지난 시즌에 오전에 꾸준하게 체력 훈련을 해왔던 덕을 봤다.

월드챔피언십에서 무려 4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를 세트스코어 5-4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보통 그렇게 늦게까지 공을 치는 경우가 없다. 체력 훈련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새벽 2시까지 경기를 해도 마지막 세트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오전에 체력 훈련을 하고 오후에 5시간 정도 개인훈련을 한 다음에 저녁에 휴식을 취하는 게 조재호의 루틴이다. 그는 이 루틴을 꽤 오랫동안 지켜왔다.

학창 시절부터 당구 잘 치기로 유명했던 재능과 함께 정해진 루틴을 유지하며 훈련하는 노력, 그리고 시합을 즐기는 멘탈까지 완벽한 삼박자의 조합이 조재호에게 최고의 시즌을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

프로당구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에 노력이 더해져 루틴을 강화하면서 좋아했던 가족여행도 다니지 못했다.

"얼마 전 아내와 딸과 함께 스위스 융프라우에 갔다 왔다. 로잔 마스터스 시절에 꼭 여기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이번에 다녀와서 너무 좋았다. 스위스와 두바이를 다녀오는 긴 여정을 원활하게 마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 준 JBS 박인덕 과장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비시즌도 이제 막바지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본격적인 몸만들기에 들어간 조재호의 목표는 '팀리그 우승'이다.

조재호는 어제 NH농협카드 팀원들과 저녁 식사 중에 "이제부터 독해질 거야"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독한 마음을 먹고 팀리그 경기에 나가 포스트시즌 진출과 우승을 꼭 이뤄내겠다는 뜻이 담겼다.

물론, 프로당구 무대에는 조재호처럼 재능과 노력, 즐길 줄 아는 선수들이 득실하다. 특히 팀리그는 거기에 팀워크까지 포함된다.

이번 시즌 더 치열해진 개인투어와 팀리그, 새로워진 PBA 무대에서 조재호가 과연 챔피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팀리그 우승의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과연 그가 어떻게 당구를 즐기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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