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명소였던 이국인당구클럽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타고난 감각으로 국내 당구대회를 휩쓸던 그가 언젠가부터 당구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어느 날, 당구클럽 경영인 이국인으로 그가 다시 나타났다
 
'이국인당구클럽'을 다시 시작한 이국인 선수. 사진 김민영 기자
간혹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한 당구선수 이름을 건 당구클럽 간판을 만나게 된다. 강원도 어느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최재동당구클럽이 그랬고, 서울 여의도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이국인당구클럽이 그랬다. 그리고 이런 이름의 당구클럽이 주는 묘한 신뢰감이 있다. 선수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구장을 운영하는 만큼 조금 더 양질의 당구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서울 여의도 KBS 별관 뒤쪽 바로 붙어있는 붉은 벽돌의 빌딩에 위치한 이국인당구클럽은 문을 연 지 일 년 만에 여의도에서 가장 핫한 당구 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대대 6대(민테이블 2대, 비바체 4대)와 중대(허리우드) 7대의 중형당구클럽이지만 대형당구클럽 안 부럽다. 이제는 일부러 직장이 쉬는 날도 이국인당구클럽에 오기 위해 여의도까지 나오는 사람들이 생겼을 정도다
 
이국인당구클럽 전경.
사실 이 자리는 이국인당구클럽 이전부터 오랫동안 당구클럽이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영업부진으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던 당구장을 이국인 선수가 단번에 알아보고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미 다른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던 중이었고, 심지어 여의도는 그 일 때문에 들린 곳이었다. 당구장 불도 1/3밖에 안 켜놓고 영업을 하던 그 캄캄한 당구장을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인수한 것일까. 그건 순전히 선수로서의 안목, 그리고 20년이 넘게 당구클럽에서 일하면서 얻은 감이었다.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몇 년 동안 다른 업종의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당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당구 대회를 핑계로 며칠씩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기에 좋아했지만, 나는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당구를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당구를 떠나 있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선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바체와 민테이블 대대가 놓여 있는 대대 전용 공간.
클럽을 인수한 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두컴컴한 당구클럽을 환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기존의 등을 LED 등으로 바꾸고 등박스도 바꿔 달았다. 대대 위에는 강렬한 빨간색으로, 중대 위에는 시원한 파란색 등박스를 달아 세션을 나누는 동시에 통일감을 주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시간대별로 당구대가 도는 패턴을 체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중대를 7대로 줄이고, 대대를 2대 더 늘렸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당구대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커피 자판기와 종이컵을 없앴다. 손님들에게 커피 자판기 대신 심플한 도자기 컵에 일일이 커피를 손수 내려주고, 깨끗하게 삶은 흰색 핸드타월을 서비스했다. 이게 그의 방법이었다. 남이 귀찮아서 하지 않는 일을 그는 일부러 찾아서 했다.

나가는 손님 뒤통수에 대고 인사하는 대신 직접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는 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큐 관리와 당구대 관리다. 선수였던 그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로 당구 테이블과 큐를 유지하는 것이 손님들이 다시 이국인당구클럽을 찾게 하는 비법이다.    

그가 1년 동안 겪은 여의도의 손님들은 수준이 높다. 비록 당구 수준이 높지는 않을지라도 손님들의 매너나 분위기가 그 어떤 곳보다 좋다. 여의도에서 당구클럽을 운영하면서 한 번도 시비가 붙거나 경찰차가 출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당구클럽을 운영하기도 다른 어떤 지역보다 수월하고, 손님들도 항상 좋은 분위기에서 당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주말에도 당구를 치러 일부러 여의도까지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주말엔 어디든 주차가 가능하다는 여의도의 특징도 한몫했을 것이다.
 
파란색 등박스가 달린 중대 전용 공간
이국인당구클럽으로 바뀌고 난 후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 단골손님도 꽤 늘었다. 주 고객은 여의도의 직장인들과 인근 주민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이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동문회 당구 모임과 같은 모임이 개최되기도 한다. 당구클럽 운영 특성상 쉬는 날이 딱히 없어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즘만 같으면 좋겠다고 한다.  

“솔직히 당구선수로 다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얼마 전에도 대회에 출전해 볼까 하고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옆에서 듣던 아내가 그냥 당구장 주인으로 있으면 안 되겠냐고 하길래 그럼 그러자고 했다. 내가 매일 당구를 칠 수는 없지만, 당구 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 가장 큰 바람은 이 상태로 쭉 오랫동안 이곳에서 이국인당구클럽을 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물 떠난 물고기처럼 숨차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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