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민간 단체 vs 당구연맹' 간에 선수 출전권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 한국에 이어 베트남에서 크게 번지는 모양새다.

한국의 프로당구협회(PBA)가 베트남 투어 개최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캐롬연맹(UMB)이 이를 저지하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고, 그 사이에서 베트남스누커당구협회(VBSF)가 양측 중 어느 의견을 따르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캐롬보다 포켓볼에서 먼저 일이 터졌다. 포켓볼은 80년대부터 활동한 영국의 매치룸스포츠가 프로화의 선봉에 서 있고, 얼마 전 포켓볼의 프로화 계획을 발표하자 전 세계 포켓볼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문제는 포켓볼 역시 세계포켓볼협회(WPA)가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서 선수 출전 금지를 발표해 일이 복잡하게 흘러갔다. 이런 WPA의 조치는 여론이 썩 좋지 않았다. 선수들은 일제히 WPA를 질타하며 이탈 낌새를 보였다.  

아마추어 협회의 이런 행보는 선수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안팎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런데 여론과는 달리 프로 단체가 애를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본력'의 프로 단체를 '정치력'으로 상대하는 아마추어 단체는 아예 대회 개최 자체를 못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무기다. 이번에 베트남의 VBSF가 매치룸스포츠의 대회를 무산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경우와 같다.

매치룸스포츠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오는 10일에 '하노이 오픈 풀 챔피언십'과 '하노이 주니어 이벤트' 등 2개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는데, VBSF가 베트남 체육총국에 개최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어났다.

관계자에 따르면 "WPA가 아시아당구연맹(ACBS)를 통해 VBSF에 압력을 가했고, VBSF는 캐롬처럼 상급 기관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몇몇 선수들은 "내 기회는 내 권리인데, 협회와 무슨 상관이냐"며 이런 조치에 대해 격분하기도 했다.

만약 체육총국이 VBSF의 항의를 받아들일 경우 매치룸스포츠가 개최하기로 했던 '하노이 오픈'은 개최하지 못하게 된다. 선수들도 베트남 체육총국의 조치에 따라 동요할 가능성이 컸고, 매치룸스포츠의 포켓볼 프로화 추진은 동력을 잃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향후 PBA 역시 베트남 진출에 암초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베트남 체육총국이 베트남스누커당구연맹(VBSF)에 보낸 공문.
베트남 체육총국이 베트남스누커당구연맹(VBSF)에 보낸 공문.

그러나 체육총국이 내놓은 답변은 VBSF의 의도와 완전히 달랐다. 체육총국은 '국제 상업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 베트남에서 당구대회 개최를 VBSF가 총괄해야 한다'는 VBSF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방 인민위원회 산하의 스포츠 관계 부서에서 개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초 VBSF는 "법률에 따라 '엘리트 스포츠'의 행사는 베트남에 해당 종목 연맹이 없는 경우에만 지방 인민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고, 베트남에는 VBSF가 있으므로 법에 따라 지방 스포츠 문화관광부는 이벤트를 유치하기 전에 VBSF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체육총국은 "베트남 법률 조항과 규정에 따라 '2023 하노이 오픈 풀 챔피언십'의 조직 허가권은 대회가 개최되는 하노이 인민위원회의 권한에 속한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VBSF에 하달하면서 "연맹의 활동과 선수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되로 주려다가 말로 받은 셈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캐롬과 포켓볼 모두 성행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의 PBA는 캐롬 3쿠션의 세계화를 위해 베트남을 거점으로 낙점한 상태고, 매치룸스포츠도 베트남을 아시아권에서 주요 국가로 보고 있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캐롬과 포켓볼 모두 베트남의 대회 개최 여부가 앞으로 프로화의 운명이 달린 상황으로까지 판단하고 있다. 양 단체가 처음 맞붙은 베트남에서 대회 개최가 원활하지 못하다면, 아마추어 단체는 이를 근거로 프로 단체가 가는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며 대회 개최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베트남 체육총국의 결정이 알려지자 한 국내 관계자는 "UMB가 VBSF를 통해서 PBA의 베트남 대회 자체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이제 공식적으로 물거품이 됐다"라고 말하며 베트남 체육총국의 결정을 환영했다. 베트남에서 크게 붙었던 프로와 아마추어의 전투는 프로의 판정승으로 끝난 셈이다.

자본력으로 프로화를 추진하는 민간기업과 정치력으로 이를 막아서는 협회의 싸움이 한국과 베트남에 이어 전 세계로 번질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이번 베트남 사태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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