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밭 권오철 대표. 사진=(주)한밭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주)한밭(대표 권오철)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당구 큐 생산업체다. 

한국의 한밭큐는 이탈리아의 롱고니, 일본의 아담 무사시와 함께 명품 당구 큐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플러스파이브’ 공법을 개발한 이후 나무가 재료인 당구 큐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휘게 되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주)한밭은 ‘플러스파이브’ 공법을 개발한 2003년 이후 2016년까지 무려 14년간 큐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그 사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당구 큐 브랜드가 생겼고, 큐 가격은 천차만별로 뛰었다. 

‘비싼게 좋은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인식 때문에 그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은 한밭큐는 품질에 비해 오히려 저평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현상을 우려한 <빌리어즈>의 기자가 "가격을 올려서 시장의 재평가를 받는 게 어떤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한밭큐 권혁준 팀장은 "지금의 큐 시장이 오히려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다”라고 답하며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는 없다. 진짜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이 필요한 시기가 오면 그때 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원자재, 인건비 등 지속적인 원가 상승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서 한밭큐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나 뜻밖의 보도가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나오면서 한밭큐의 가격 인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최대 30% 기습 가격 인상’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여러 차례 기사가 나가면서 한때 일부 동호인들이 동요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품의 가격은 기업 스스로 판단하고 소비자의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지만, 소비자들이 한밭큐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전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밭큐 입장에서는 이미지와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무려 14년 동안 가격인상을 하지 않았던 한밭큐의 '소비자 우선' 정신과 그동안 한국 당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헌은 당구계에 몸담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제품 가격을 기습적으로 대폭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비양심적인 행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게 당구계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1987년 한밭큐를 창업한 권오철 대표는 1972년부터 당구큐 제작을 시작했다. 당구장이 허가제라 대전 시내에 당구장이 스물아홉 군데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한밭큐가 있기까지 지난 31년의 역사에 대해 권오철 대표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 어떻게 당구 큐를 만들게 되었나

목재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게 된 후 우연히 당구 큐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이후 목재 수입을 하던 아는 분의 요청으로 동업을 하게 되면서 한밭큐가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당구산업이 특별소비세가 부과되는 분야라 국내 시판은 못하고 전량 수출되었다.

어떻게 보면 한밭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큐라고도 할 수 있다. 
 

- 그 당시 큐를 만들던 회사가 한밭큐 외에 또 있었나

큐를 만들던 공장이 서울에만 대여섯 군데 있었다. 특히 80년대에 허가제이던 당구장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당구장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만들기만 하면 물건이 팔렸다. 특별소비세 품목인지도 모르고 팔다가 당구업계 전체에 세무조사가 시작되면서 세금을 감당 못해 사업을 접는 사람들도 많았다.


- 한밭큐가 국내에서 유통된 것은 언제 부터였나

우여곡절 끝에 93년 당구산업이 특별소비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한밭큐가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그때는 대부분 하우스큐였다. 개인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 지금은 선수뿐 아니라 많은 동호인들이 개인큐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큐가 정착된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한국에 개인큐가 처음 도입된 건 언제부터였나

내가 처음 개인큐를 만든 것은 79년이었다. 그때 처음 개인큐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1000세트를 목표로 만들어서 670세트를 완성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팔린 건 100세트 정도였다. 그 당시 일본의 아담큐가 50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일본 장인들이 최고의 전성기에 만든 큐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인큐라는 개념이 없었다. 선수들조차도 개인큐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한밭큐에서는 2003년에 ‘플러스파이브’ 공법을 개발하며 한밭큐 기술력의 절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내가 직접 연구 개발했다. 지금도 생산파트와 연구 개발 파트는 내가 직접 맡고 있다.

그 당시 일본과 한국의 당구용품 무역을 활발히 하던 일본의 아다치 마사오와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직접 찾아와 자기의 상표로 큐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동안 한밭큐가 아닌 다른 상표로 큐를 만들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결국 OEM으로 생산만 하는 회사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충격을 받았다.

한밭큐를 대표할 수 있는 뭔가가 없다면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만의 것을 개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그때부터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주)한밭이 개발한 플러스파이브 공법.


- 플러스파이브 공법은 어떤 공법인가

플러스파이브 공법은 큐가 휘는 걸 방지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방법이다. 세상의 모든 큐는 휜다. 웬만해서는 아무리 비싼 큐라도 시간이 지나면 휘는 걸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새 큐도 휜다. 포장이 되어있어도 나무는 수축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특허로 인정받은 당구큐가 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플러스파이브’ 공법 뿐이다. 


- 어떤 원리때문인가

플러스파이브 공법은 하나의 나무를 잘라서 결을 반대로 붙이는 방법이다.

플러스(+) 모양으로 가운데를 십자 형태로 남기고 각 코너를 잘라낸 후 가운데 +를 중심으로 각각 반대 모양의 결대로 위치를 바꿔주면 서로 다른 결의 반발력으로 인해 어느 한쪽을 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나무의 습성으로 인해 한밭큐는 오래 사용할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플러스파이브 공법 덕분에 버드아이나 컬리 메이플 같이 많이 휘는 나무도 상대에 쓸수 있게 되었다.

플러스파이브 공법이 없었다면 버드아이 상대, 컬리 메이플 상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플러스파이브 공법에 대한 특허 기간이 끝나면 한밭큐뿐 아니라 많은 큐 제작사들이 플러스파이브 공법을 이용해 큐를 만들 것이다.
 

- 큐 제작에 있어 한밭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나무의 숙성이다. 최대한 오래 숙성된 나무가 좋은 큐가 된다. 처음부터 비싸더라도 오래 숙성된 나무를 구입한다.

때로는 강도가 다른 두 나무를 붙여서 숙성을 시키기도 하는데 그러면 어느 순간 두 나마구 한 나무처럼 비슷한 강도를 가지게 된다. 이게 나무의 매력이다.

목재는 잘 관리하면 몇 천년을 쓸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오래된 악기가 새 악기보다 비싸듯이 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잘 만든 큐는 관리만 잘 하면 오래될 수록 값어치를 더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예전 선수들이 쓰던 큐가 새 큐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한밭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지 궁금하다

우선 모든 나무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짧게는 몇년에서 길게는 몇십년까지. 그후 각각의 공정대로 제작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도 숙성 단계가 계속 포함된다. 그리고 큐가 완성되면 출고 1년 전에 항온항습실로 옮겨진다.

출고 1년 전부터 한밭큐의 모든 큐들은 이곳에서 숙성된다. 겨울에는 히터를 틀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면서 1년 내내 당구장과 같은 조건을 유지해준다.


- 특별히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있나

예전에 비싼 장롱을 만들 때는 온돌에서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당구장에서 쓰는 물건이니까 당구장과 같은 조건에서 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게 됐다.

이렇게 미리 1년 간 당구장과 동일한 조건에서 숙성된 큐들은 판매된 후 일반 당구장에서도 변형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항온항습실. 이곳에서 출고되기 1년전부터 모든 큐를 숙성시킨다. 사진=대전/이용휘 기자


- 숙성부터 제작까지 당구큐 하나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다

큐 생산은 자동화가 쉽지 않다.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한밭큐 마에스트로 같은 경우 650개의 조각이 들어간다.

조각 하나에 5번의 공정이 필요하고, 결국 3000번의 공정을 거처야 큐 하나가 완성된다. 큐는 결국 정성과 시간의 결과물이다. 


- 지난 10여년 사이 당구큐 브랜드들이 많이 생겼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고가부터 저가까지. 그 와중에도 한밭은 가격 인상을 하지 않고, 14년을 버텼다. 그러다 2017년 처음으로 가격 인상을 했는데, 생각보다 후폭풍이 거셌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원자재와 인건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 특히 한밭큐는 큐에 염색을 하지 않는다.

다른 색깔의 나무 조각을 파서 넣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최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수출로 시작한 한밭큐였지만 지금의 한밭큐를 만든 것은 국내 시장이다. 국내 시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밭큐로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동안 큐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버텼는데, 어쩔 수 없이 14년 만에 하우스 큐의 가격을 인상하게 되었다.
 

47년 동안 큐를 만들어온 권오철 대표는 지금도 공장 한 켠에 자신의 작업장을 두고 직접 큐를 만들고 있다. 사진=대전/이용휘 기자


- 그동안 한밭큐는 한국 당구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특히 지난 몇년간은 꾸준히 여자 3쿠션대회를 후원해 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당구가 살아남으려면 여성이 당구를 쳐야 한다. 여성 당구 인구 유입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 3쿠션 대회 뿐 아니라 대한당구연맹에서 개최하는 대회와 각종 동호인 대회까지 합해 1년에 100회 이상 크고 작은 당구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 한밭큐가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밭큐 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양심적으로 눈속임 없이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해온 일이고 또 앞으로 해야할 일이다.

나중에 우리가 판 물건을 더 비싼 가격에 되살 수 있는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게 바로 한밭큐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말한다. 지금도 생산 파트에는 40년 이상 함께 일해온 전문가들이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2세인 권혁준 팀장이 한밭큐에 합류하면서 한밭큐에도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우선 나는 생산과 연구 개발을, 권혁준 팀장은 마케팅과 관리, 영업, 홍보 등 외부 업무를 맡으면서 각자의 영역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권 팀장이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면서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권오철 대표와 권혁준 팀장. 사진=(주)한밭

-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당구 큐를 만들어온 권오철 대표에게 당구큐는 무엇인가

‘작품’이다. 진짜 잘 만든 명품 큐는 ‘작품’이다. 큐 역시 만드는 사람의 혼이 들어가야 좋은 물건이 나온다. 예술작품처럼 큐도 작품이 되면 비싸야 된다.

단, 희귀성이 있어야 한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면서 비싼 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몇 개 없는 제작자의 혼이 녹아든 당구큐는 그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

후대에 작품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당구큐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밭큐를 이어갈 권혁준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최우선이다. 즐기면서 일할 때 좋은 아이디어와 결과가 나온다.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다보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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