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떤 스포츠 종목도 변하지 않는 룰이란 없다. 급변하는 정세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포츠 경기에서의 시대적 요구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다룰 칼럼 내용 중에 변하지 않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지금 적용되고 있는 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과 주관적인 견해가 다소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필자 주>
 

이번 칼럼에서는 "심판은 대회의 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한 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지난 7월 28일과 29일에는 APBU 아시아포켓당구연맹(Asian Pocket Billiard Union)에서 국제심판 교육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국내 심판들과 함께 교육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교육 내용은 심판의 자세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심판은 경기장에서 심판의 행동이나 동작이 대회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판의 분명하고 신속한 동작이 대회를 돋보이도록(좋은 분위기로 만드는 것) 만들기 때문에 절대로 절제 없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계자와 관객은 심판들의 행동, 동작 등을 관찰하여 대회 조직이 우수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한다.

다시말해 대회의 성공 여부는 심판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었는지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심판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판은 대회의 꽃이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자신이 그저 빛나는 심판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선수를 위한 심판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꽃이 되는 것에 집중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판의 분명하고 신속한 동작이 대회를 돋보이게 만든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에서 나온 주옥 같은 대사 한 줄이 있다. 관객들은 심판의 행동과 동작을 보고 그 대회의 우수성을 가늠한다.

모름지기 심판은 그 대회를 대표하는 이가 심판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심판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흐트러진 심판의 모습이 곧 그 대회의 모습에 직접 투영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심판은 오로지 선수를 위해 존재하며, 선수를 보호하고 공정한 환경과 조건에서 공정한 대결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판결하는 판사'가 아니라 '공정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중립적 위치'에 있는 이가 심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도 심판으로서 갈길이 멀다. 실수도 많고 생각보다 '허당'이며, 급한 성격 탓에 덤벙거리기 일쑤다.

그러나 "매일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하다"라고 생각하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말자"라는 말을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심판이라 생각되더라도 "무엇이 중한지" 심판으로서 연구하고 노력하면, 노력을 시작한 순간 좋은 심판이 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꾸준하고 우직하고 끈질긴 노력, 그것이 "가장 중한"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 칼럼의 내용은 (사)대한당구연맹 심판위원회 공식 입장과 관계없는 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둡니다.

 

필자 류지원

현 (사)대한당구연맹 공인심판
현 (사)대한당구연맹 여자 3쿠션 당구선수
경기지도자 2급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 류지원 공인심판에게 당구 규칙에 대해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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