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김민영 기자] 신들린 듯했다. 마치 한을 푸는 것처럼 맘껏 내지르는 큐는 점수를 내는 기계처럼 정확했다. 

'2017 LG U+컵 3쿠션 마스터스' 우승자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 세계 랭킹 3위)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며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경기장에서 직접 그의 경기를 보든지, 아니면 집에서 TV나 모바일로 보든지 간에 당구 팬들은 큰 즐거움을 느꼈다.

자네티는 LG U+컵에 이번이 첫 출전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기회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는 결국 처음 출전한 LG U+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3쿠션 역대 최고 우승상금인 8000만원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네티는 우승한 다음 날 오후 비행기로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출국 전 공항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어제처럼 유쾌했다.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관중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는 마르코 자네티 <사진=빌리어즈>

- 이번에 LG U+컵 마스터스에 처음으로 초청받았다. 기분이 어떤가?

초청받게 되어 영광이다. 이번 초청은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지금 세계 랭킹이 3위에 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초청되었는데, 이 대회에 초청받지 못한 많은 선수들이 속상해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초청을 받아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 첫 출전에 우승까지 했다. 예선전 첫 경기 1이닝에서 13점 장타를 날리면서 좋은 출발을 했고,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경기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완벽한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나도 대회 첫 경기 1이닝에서 13점을 치고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점수를 내는 것만 집중해서 연습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시합 동안 스토리(포지션)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스킬이 필요한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연습했다. 

- 역대 최고의 상금을 손에 넣었다. 이번 대회에서 받은 총상금이 얼만가?

우승상금 8000만원과 대회 출전 비용 등을 합쳐서 모두 8800만원 정도다. 세금 제하고 총 6989만6000원이다. 

총상금이 얼마냐고 묻자 직접 계산기로 계산해 보여주는 자네티 <사진=빌리어즈>

- 대회에서 우승한 소식을 듣고 가장 좋아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을 것 같다. 

- 역대 최고 상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어떤가?

대회에서 우승상금을 받고 돌아가는 기분은 좋지만, 내 삶을 바꿀 만큼 큰돈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들뜨고 싶지는 않다.

-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물론 우승이 목표였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기 때문에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선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도 본선 토너먼트는 한 번의 실수로도 탈락할 수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었다.

-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대회를 끌고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장작 선수 본인은 어땠나?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테니스 같은 경우에도 세계 정상의 선수들이 치면 어려운 공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샷을 어렵지 않은 것처럼 성공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 

- 이번 대회 중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누구인가?

야스퍼스다. 야스퍼스와 예선에서 한 번, 본선에서 한 번 총 두 번의 게임을 했다. 첫 번째 경기에서는 내가 졌다. 자칫 잘못했으면 본선에 오르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야스퍼스와 두 번째 대결한 본선 토너먼트 경기였다. 야스퍼스 입장에서는 대진운만 좋았어도 결승까지 오를 수 있는 좋은 컨디션이었는데, 너무 일찍 떨어진 느낌도 있다. 

홍진표와 결승전 경기 중인 자네티 <사진=빌리어즈>

- 이번 대회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은 제스처를 취했다. 점프를 한다거나 공이 안 맞았을 때 관중들과 눈을 맞추고 재밌는 표정을 짓는다든지. 관중들과 소통하는 느낌이었는데, 일부러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원래 본인의 모습인지 궁금하다. 

내 친구들은 나를 '미스터 세븐 페이스(Mr. Seven Face)'라고 부른다. 얼굴이 일곱 가지라는 뜻이다.

나는 그만큼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경기 중에 나오는 제스처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밴 행동이다.

내가 만약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제스처였다면, 아마도 게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을 거다. 그 순간의 내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고 관중들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는 관중들과 좀 더 교감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나는 당구선수들이 너무 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보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 나도 즐겁고, 관중도 즐거운 경기가 되기를 원했다.

- 경기가 시작할 때 선수 소개를 하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손을 흔들거나 살짝 묵례로 관중에게 인사를 하는데 마르코 자네티만 유독 큐를 가슴에 대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의 시합이라 한국식 인사를 한 것인가?

아니다. 원래 내 스타일이다. 큐를 잡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가슴에 큐를 대는 것은 '큐와 내 심장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은 '내 경기를 봐주는 관중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 당구가 아무리 격렬한 운동이 아니라고 해도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경기를 해야 하는데, 55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고의 게임을 보여주었다. 특별한 비법이 있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꾸준히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주 걷고, 평소 저녁 식사 때 집에서 와인같은 가벼운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대회 3주 전부터는 어떤 종류의 알코올도 입에 대지 않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척자 정신이다. 연습할 때 단순한 반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기술적인 지식을 쌓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가슴에 큐를 대고 허리를 굽혀 관중을 향해 인사하는 자네티 <사진=빌리어즈>

- 세계당구선수협의회 회장으로서 LG U+컵 마스터스를 평가하자면?

아름다운 경기장과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 대회 개최 측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덕분에 선수들 모두 좋은 컨디션으로 '아름답고 익사이팅한' 3쿠션을 보여줄 수 있었다. 

- 한동안 유럽에서 최대 규모의 상금을 수여하는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열렸었다. 지금은 한국의 LG U+컵 마스터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앞으로 유럽에서 아지피 마스터스 같은 대회가 다시 열릴 수 있나?

얼마 전 새로운 유럽당구연맹 회장이 선출되었기 때문에 기대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 

- 대회 동안 TV 생방송과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대회를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당신의 놀라운 플레이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알고 있나?

대회에 온통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반응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 이번 LG U+컵 마스터스를 통해 당신을 좋아하게 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중요한 대회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초청해준 한국과 LG유플러스에 감사하고, 당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곧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데, 그때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당구 팬들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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