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당구가 전래된 기록은 조선조 고종 때인 1884년에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의료선교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호러스 알렌(Horace Allen)이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입국해 ‘헤리’라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에 투숙하여 당구대 위에서 잠을 잔 것이 1884년 9월 20일이었고,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통상휘편> 제5책의 ‘1884년 11월 중 수입품 요략(일본산)' 옥돌대 1대가 수입된 사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한국 당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1884년 기원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종전 한국 당구의 역사는 고 조동성 씨가 1980년 발행한 <내가 본 당구사>에서 “우리나라의 당구사는 1909년 황실에서 시작”이라고 서술한 내용에 근거하여 오랫동안 1909년을 기원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당구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계속 발굴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 당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차원에서 필자는 지난 2014년 8월호 본지에 ‘한국 당구의 기원은 1884년, 일본에서 당구대가 수입되어 호텔 등 접객업소에 설치되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발표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1909년 황실 옥돌대’를 한국 당구의 기원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당구가 제도권 스포츠로서 위상을 굳건히 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올해로 134년이 되는 한국 당구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당구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수난과 박해로 점철되던 시기도 있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일본인의 당구였을지언정 한국인의 당구는 아니었고, 광복 후와 6.25를 지나는 물질 빈곤의 시대에는 당구가 외면을 당했는가 하면, 80년대까지 정부로부터도 유기 종목으로 치부되어 서러움과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 선배 당구인들은 스포츠로서의 본질을 인정받고 회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결과 마침내 오늘날 당당하게 제도권 스포츠로 입성할 수 있었다.

1989년 7월에 당구장이 체육시설로 법에 명시된 후 91년에는 한국 최초의 3쿠션 월드컵이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93년에는 헌법소원으로 ‘18세 미만자의 당구장 출입금지’가 해제되었으며,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당구가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으로 가맹이 승인되었다.

그 후 대한당구연맹으로 명칭을 바꾸어 준가맹을 거쳐 2005년에 정가맹이 이루어졌다. 또한, 2011년에는 마침내 당구가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되면서 정식 스포츠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2017년 3월 열린 '2017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에서 최성원과 김재근이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린 후 김행직, 조명우, 이대규, 이우진 등 한국 당구의 유망주들이 2017년 한 해를 화려하게 빛내었다. 사진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환호하는 최성원과 김재근. 사진=Dirk Acx


당구선수들은 이런 과정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여 3쿠션과 여자 포켓볼 종목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3쿠션은 세계 당구를 주도하는 중심국가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2007년부터 11년 동안이나 연속 개최된 ‘3쿠션 당구월드컵’이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매년 1회 개최된 3쿠션 당구월드컵은 수원에서 6회, 구리에서 4회, 그리고 지난해에는 청주로 개최지를 옮겨 성대하게 치러진 바 있다.

나날이 성장하던 한국 당구는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3월에 열린 ‘2017 세계3쿠션팀선수권대회’에서 최성원과 김재근이 한국을 최초 우승으로 이끌면서 신호탄을 쏘았다.

7월에는 김행직이 포르토 월드컵에서 첫 우승 그리고 이어서 9월 청주직지 월드컵에서 ‘월드컵 연승’ 기록을 세우며 2017년 시즌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했다. 김행직은 지난 32년 3쿠션 월드컵 역사에서 사대천왕 외에는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을 세우며 역사적인 성과를 올렸다.

또한, 지난해에는 청소년과 20대 유망주들이 두각을 나타내어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해주었다.

3쿠션의 조명우(19세)는 룩소르 3쿠션 월드컵과 라볼 3쿠션 월드컵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해 김행직의 뒤를 이을 재목임을 입증했고, ‘2017 아슈하바트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서 스누커 국가대표로 출전한 이대규(21세)는 남자부 개인전 16강에 진출, 2015년 IBSF 아마추어 스누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월드 스누커(World Snooker) 프로에 진출한 이란의 소헤일 바헤디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그의 장래성을 보여주었다.

‘2017 포켓 9볼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이우진(18세)은 사상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하여 앞 해 주니어 세계 챔피언을 꺾고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구가 처음 시범종목으로 참가한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포켓 9볼 여자부 복식전에서도 장윤혜와 정은수가 첫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7 브로츠와프 월드게임’ 여자 포켓 9볼 종목에서 김가영이 앞 대회인 2013 칼리 월드게임에 이어 2회 연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미래는 벨기에에서 열린 ‘2017 여자 3쿠션 월드 챔피언십’에서 역시 전년도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밖에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세계 포켓볼 대회 ‘2017 구리 세계 포켓 9볼 챔피언십’에서는 권호준과 박은지가 각각 남녀부 3위를 한 외에도 한국 포켓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9월 3쿠션 사상 최고 상금을 걸고 성대하게 치러진 'LG U+컵 3쿠션 마스터스'에서는 한국의 홍진표가 준우승을 차지하며 선전을 펼쳤다. LG U+컵 3쿠션 마스터스는 당구인들이 고대하던 '우승상금 1억원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해에는 당구계에 주목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2월 3일부터 당구장에 전면 금연이 시행되었다. 흡연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당구장 환경에 큰 변화가 오게 된 것.

당구장 금연은 대체로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14년 본지는 ‘학교 정화구역내당구장설치제한 철폐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학교 정화구역 안에 당구장도 유흥시설처럼 법적으로 설치가 금지한 것이 과도한 규제임을 증명하여 당국에 청원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초등학교 정화구역 내 당구장 설치 규제가 해제(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제9조 21항)됨으로써 지난해 2월 4일부터 초등학교 앞에서의 당구장 설치가 자유롭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앞 정화구역도 당구장 전면 금연 실시로 조만간 해제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지난해 9월에 열린 ‘2017 LG U+컵 3쿠션 마스터스’는 총상금 2억 4000만원, 우승상금 8000만원 등 역대 최고 상금이 걸린 이벤트로 진행되어 고대하던 ‘우승상금 1억원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올해 세계 당구계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당구를 정식종목에 채택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도 세계 당구의 중심국가를 자부하면서 이 대열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한국 당구가 뿌리내린 지 134년을 맞는 올해는 한국 당구의 내실과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면서, 한편으로 세계 당구를 위해 역할을 담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빌리어즈> 발행인 김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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