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야스퍼스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한 정예성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딕 야스퍼스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한 정예성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2002년생' 정예성(21·서울)이 '2023 서울 3쿠션당구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와일드카드로 모처럼 32강 본선 리그부터 출전한 정예성은 32강에서 대선배이자 4대천왕 중 한 명인 토브욘 블롬달(스웨덴)을 꺾고 16강에 진출한 데 이어 16강에서는 부동의 세계 톱 랭커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마저 50:49(36이닝)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오늘(11일) 서울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열린 '2023 서울 3쿠션 당구월드컵' 16강전에서 정예성은 초반 리드를 야스퍼스에게 빼앗기면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후반부 치열한 승부 끝에 야스퍼스를 물리치고 첫 월드컵 8강 진출 기록을 세웠다.

야스퍼스와 마무리 싸움에서 승리한 정예성을 대회장에서 만났다.

딕 야스퍼스와 16강 대결 중인 정예성.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딕 야스퍼스와 16강 대결 중인 정예성.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어제 토브욘 블롬달에 이어서 오늘 딕 야스퍼스까지 꺾었다. 블롬달 이기고, 야스퍼스와 16강 토너먼트에서 붙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

솔직히 내가 아예 못 이기는 상대라고는 생각 안 했다. 왜냐면, 당구는 어쨌든 시합이고, 다만 이제 실력이 엄청 뛰어난 선수들이니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적은 것뿐이지 0%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첫 월드컵당시 32강에서 딕 야스퍼스 선수와 만나서 마지막에 위협을 한 번 줬었으니 분명 야스퍼스 선수도 긴장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야스퍼스 선수보다 내가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정말 최대한 열심히 쳤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금 16강 직후라 많이 흥분되어 있는 것 같은데, 심정이 어떤가?

잘 모르겠다. 지금 되게 좋은데, 뭔가 슬프고, 오만가지 감정이 다 있는 것 같다.

이번 월드컵에서 본인 최고 성적을 경신 중이다.

16강도 처음인데, 8강까지 올라서 너무 흥분된다. 월드컵에서 토너먼트 자체가 처음이다.

야스퍼스가 먼저 49점 고지에 올랐다. 야스퍼스가 매치 포인트를 놓치고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를 얻었다. 근데, 그 기회를 놓쳤는데 그때 심정이 어땠나?

이건 진짜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제 끝내야겠다 했는데 바로 놓쳤다. 그 순간 '신이 주신 기회를 내다 버렸구나' 이러고 포기하고 있었다. 사실 야스퍼스가 그다음 기회에 마지막 공을 놓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야스퍼스가 샷을 하고 당연히 맞은 줄 알았다. 관중석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서 나한테 기회가 없구나 했는데, 갑자기 공이 길게 빠졌다. 또 그 공이 괜찮게 섰다. 그래서 이건 신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준 기회다 생각하고 진짜 최대한 신중하게 열심히 쳤다.

49점을 만들고 50점째 공이 키스의 위험이 있었다. 관중석에서 보면서 키스를 빼야 한다고 다들 걱정했다.

맞다. 횡단샷이랑 세워치기를 봤는데 세워치기는 키스 위험은 없는데 평소 확률적으로 횡단샷 성공률이 높아서 횡단샷이 더 자신 있었다. 얇게 치면 왔다 갔다 하면서 키스를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후회 없이 쳐야 하니까 내가 생각한 대로 쳤는데, 딱 그대로 됐다.

딕 야스퍼스가 매치 포인트를 놓치고 준 첫 기회를 날려버린 정예성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딕 야스퍼스가 매치 포인트를 놓치고 준 첫 기회를 날려버린 정예성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어제 블롬달 선수와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나?

당연히 모든 경기를 다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어간다. 블롬달과의 경기는 오늘보다는 좀 쉬웠다, 오늘보다는.

야스퍼스와의 경기는 무려 36이닝까지 갔다. 시간도 두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이유가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야스퍼스 선수가 초반부터 공격보다 수비 위주로 치는 것 같았다. 초이스나 힘 배합이나 또 내가 받은 공도 그렇고 수비를 완벽하게 해서 초장에 기를 좀 죽여놔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사실 초장에 살짝 기가 죽었는데, 후반에는 못 죽였다.

초반에 야스퍼스의 디펜스의 영향을 받았나?

팔도 좀 저리고 샷도 잘 안 나갔다.

그럼 언제부터 되겠다 싶은 생각을 했나?

되겠다 싶었던 순간은 없었다. 사실 50점 경기에서 야스퍼스 같은 톱 랭커들과 칠 때는 49:1로 이기고 있어도 이기고 있다고 생각을 못한다. 왜냐면, 한두 큐면 그 선수들은 무조건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점수를 앞서고 있어도 내가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없었다.

이번 월드컵은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모처럼 32강전부터 출전했다. 이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나왔나?

이 시합을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것보다 평상시에 꾸준히 연습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이 대회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다. 다만 당구를 치고 있지 않아도 항상 머릿속으로 당구에 대해 연구하고, 당구 외적으로는 멘탈 잡는 법이나 집중하는 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조명우 형이 도움을 많이 줬다.

어떤 도움을 받았나?

당구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고, 멘탈적인 부분도 조언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번 대회 32강 하기 전날 새벽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그 덕분에 이겼다고 생각한다. 내 롤모델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조명우다.

'2023 서울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자신의 월드컵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정예성.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2023 서울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자신의 월드컵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정예성.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당구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번 대회가 정예성의 당구 인생에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할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이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는 걸음마를 떼는 단계였고, 이제부터는 달리기 시작할 거다.

8강은 마틴 혼과 붙는 데 어떤 각오로 임하겠나?

이번 대회 32강 리그 첫 판 상대가 마틴 혼이었다. 그때도 이길 수 있는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마틴 혼 선수에게 운이 좀 따라줘서 38:40으로 내가 졌다.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32강부터 출발한 덕분에 블롬달, 야스퍼스, 혼 같은 톱 랭커들과 대결해 봤는데, 소감이 어떤가?

정말 잘 친다.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도 느껴지고,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칠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저 선수들의 나이가 됐을 때는 내가 더 잘 칠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 목표가 있다면?

모든 선수들이 1등을 목표로 대회에 출전한다. 일단 나는 월드컵에서 한국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는 게 목표다.

8강에서 이기면 4강에서 조명우와 만날 수도 있다.

명우형, 길 닦고 기다리세요.

마지막으로 정예성을 이제 막 알게 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평상시에도 되게 밝고 활기찬 스타일이다. 혹시 당구클럽에서 저를 보시면 편하게 오셔도 된다. 사람들 좋아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든 오셔서 당구에 관련된 것도 많이 배워 가셨으면 좋겠다.

당구선수 정예성을 기억해 주시는 것도 좋은데, 그냥 사람 정예성도 기억 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태릉/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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