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신영.
'제11회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신영.

세계선수권 우승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지금도 안 믿기고 꿈꾸는 것만 같다. 지금도 내가 우승을 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시상식 영상을 돌려보면서 '아, 내가 우승을 했구나' 싶다. 시상식 장면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왜 자꾸 눈물이 나나?

시상대에 서 있을 때의 기분이 느껴지니까.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그동안 고생한 생각이 너무 많이 나면서 눈물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났다. 진짜 그 자리에서 펑펑 울 것 같았다.

 

이번 대회는 어땠나? 특히 강력한 우승 후보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를 8강에서 이겼다.

경기 이외의 환경은 너무 힘들었는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긴장도 하나도 안 됐다. 오히려 해설하시는 분이 너무 긴장 안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8강 대진을 보고, '아, 왜 하필 8강이야. 여기까지 왔으면 메달 하나는 갖고 가야 하는데' 이런 마음이었다. (웃음) 4강쯤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직전에 열린 월드 서바이벌은 내가 우승했으니까 이번에는 편하게 치고 가자고 생각했다.

 

정말 너무 편하게 잘 치던데.

이번 대회 모든 경기가 그랬다. 긴장도 안 되고, 공이 너무 잘 맞았다. 상대 선수에게 쫓기지도 않았고, 계속 경기를 리드했다. 

니시모토 유코(일본)와 결승전 대결 중인 이신영.
니시모토 유코(일본)와 결승전 대결 중인 이신영.

경기에서 이긴 후에 세리머니를 잘 안 하는 이유가 있나?

상대 선수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2014년에 내가 3위 했을 때 테레사가 우승을 하고 무릎 꿇고 울면서 엄청 기뻐했다. 나뿐 아니라 수많은 선수들이 저 자리에 서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을 했겠나. 테레사가 정상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그 기분을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세리머니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도 마찬가지라 원래 세리머니를 잘 하지 않는다.

테레사가 대회 직후에 자신의 SNS에 축하의 글을 올렸는데, 나도 그에게 위로의 말과 앞으로의 대회에서 더욱 멋진 경쟁을 펼치자고 전하고 싶다.

 

그동안 세계선수권 우승을 목표라고 밝혀왔다. 이제 다 이뤘는데 기분이 어떤가?

아마 '세계선수권 우승'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면 진작에 당구를 안 쳤을 수도 있다. 슬럼프 기간이 길었는데, 그 시간을 세계선수권 우승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남자 선수와의 차별도 너무 심하고, 든든한 후원사나 빽 없이 스포츠 선수로 산다는 건 진짜 너무 힘들다. 수도 없이 많이 울고,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오기로 버텼다. 시상식에서 '신영아, 너 진짜 대견하다. 정말 대견하다'고 계속 혼잣말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같이 출전한 김하은 선수가 미성년자인데 코치나 감독 등 보호자 없이 외국 경험도 별로 없는 나하고 둘만 가야 한다고 해서 출발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게다가 대회 하루 전에 터키에 도착해야 해서 시차 적응도 못 하고 경기에 들어가는 것도 불안했다.

숙소 예약이 너무 늦게 돼서 나와 하은이만 서브 숙소로 예약된 걸 모르고 4시간이나 호텔에서 씨름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대회 전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언어도 잘 안 통하는 우리 둘만 다른 호텔에서 지내면 혹여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경기에는 지장이 없었나?

나도 그렇고 하은이도 그렇고 연습구 치는 날 도착해서 결국 쉬지도 못하고 15분밖에 연습을 못 했다. 연습하면서 테레사를 만났는데, 그날 아침에 왔다고 하니까 너무 놀라더라. 시차를 어느 정도 극복할 시간이 필요한데 시차 극복도 못 하고, 컨디션 조절도 못 하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 서포트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우승을 차지한 이신영과 3위에 오른 김하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우승을 차지한 이신영과 3위에 오른 김하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했다. 월드 서바이벌 3쿠션 때도 그렇고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뭔가 변화가 있었나?

올해 변화가 좀 많았다. 그동안 당구장을 운영하다 보니 계속 구장에만 묶여있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부산-충남 교류전이 열리면서 강자인 선수와 최성원 선수가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거기에 최근에 PBA에서 4강에 오른 박인수 선수가 근처에 살아서 우연히 우리 구장에 놀러 왔다가 3~4일 정도 공을 봐줬는데 진짜 도움이 많이 됐다. 이 세 선수 덕분에 고성대회부터 월드 서바이벌, 세계선수권까지 3연패를 할 수 있었다.

 

김하은, 박정현, 허채원 같은 신예 선수들이 향상된 기량을 뽐내면서 이신영의 시대가 다시 올까하는 의심도 있었다.

확실히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어린 선수들이 잘 친다. 물론 그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긴 슬럼프를 견디면서 버티는 내공이 생긴 것 같다.

나 혼자 매번 1등을 할 수도 없고, 세대교체도 있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해왔듯이 앞만 보고 내 갈 길을 갈 거다. 옆에서 어떤 소리를 해도 묵묵히 그 길을 걸을 뿐이다.

 

이신영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됐다.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다른 목표는 정했나? 혹시 프로 전향도 고려하고 있나?

예전에 세계선수권 우승하면 그다음엔 뭐할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우승하면 그때 생각하겠다고 했다. 이제 그때가 된 것 같다. 아직 프로로 전향할지는 잘 모르겠다. 충남당구연맹을 비롯해 주위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요새 당구가 재밌다. 서바이벌 우승은 4명이 하는 거니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번 세계선수권 우승을 보고 단순히 운만 좋았던 건 아니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일단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해주시는 팬들이 많으시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이번에도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또 허리우드의 전 대표님이신 홍용선 대표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2014년에 세계선수권에서 3등하고 2015년부터 허리우드 홍용선 대표님이 스폰을 해주셨다. 그 후에 랭킹이 떨어지고 성적이 잘 나지 않아도 계속 믿어주시고, 도와주셨다. 허리우드 대표님이 바뀌면서 스폰이 끝나긴 했지만 감사한 마음에 한동안 패치를 계속 달고 있었다.

예전에 홍용선 대표님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 제일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린다고 했는데,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다. 루츠케이 전남수 대표님, 빌플렉스 이병규 회장님, 서육규 회장님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충남당구연맹으로 옮기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충남당구연맹의 김영택 회장님께도 너무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낳아주신 엄마 아빠와 우리 가족들, 그리고 동막골 어성초 엄마 아빠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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