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월간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88체육관에 도착한 마르코 자네티와 레이몽 클루망 등 세계 유명 당구선수들이 시범경기에 앞서 상의하고 있다.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 87년 5월 5일, 자네티 클루망 비탈리스 등 한국 도착... 88체육관으로 이동해 시범경기 가져

한국 3쿠션 당구가 세계 진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던 1987년에 유럽의 유명 당구선수들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86년 1월, UMB(세계캐롬연맹)가 BWA(세계당구월드컵협회)를 산하에 두고 3쿠션 프로 조직 운영을 시작한 후 세계 각지역의 유망 선수들을 발굴했는데, 한국에서도 박병문 원로가 14번째 BWA 프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3쿠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박병문 원로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대표 결정전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다.

일본 선수를 비롯해 국제기구의 관계자들을 접촉하게 된 박병문 원로는 한국에 유명 당구선수들을 초청해 그들의 경기 모습을 한국 당구 팬들과 선수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했다.

다만, 적잖은 비용이 소요됐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당시 회장 박성오) 측과 협의해 사회체육연합회의 전경환 부회장(전두환의 동생)에게 후원을 받아 유명 선수들이 처음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87년 5월 7일부터 10일까지 일본 도쿄 미야코호텔에서 '87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가 개최되는 기회에 이 대회에 참가하는 유명 선수들이 한국을 들러 시범경기를 갖는 계획을 세웠다.

5월 5일 어린이날, 마침내 세계 유명 당구선수들이 방한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 오후 4시부터 한국의 김석윤, 정상철, 김상윤, 배동홍 등 정상급 선수들의 시범경기와 예술고 시범이 벌어졌다.

시범경기를 하는 배동홍.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한국 선수들의 시범 경기. 배동홍(왼쪽)과 정상철.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김석윤과 김상윤(오른쪽)의 예술구 시범.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김석윤과 김상윤(오른쪽)의 예술구 시범.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이 당시에는 당구의 스포츠성보다는 오락적인 놀이 종목의 관점에서 당구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장의 유니폼을 차려입고 심판의 입회 아래 시범경기를 하는 모습은 당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첫 계기가 됐다.

이날 김포공항을 통하여 내한한 선수는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와 레이몽 클루망, 루도 딜리스(이상 벨기에), 리차드 비탈리스(프랑스), 아벨리코 리코(스페인), 리니 반 브라흐트(네덜란드) 등 당대 최고의 3쿠션 선수들이었다.

또한, UMB를 이끌고 있던 앙드레 가뇨 회장도 동행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이들은 공항에서 간단한 환영식을 가진 후 곧바로 88체육관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이들의 시범경기를 보기 위해 관중석을 지키고 있던 200여 명의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여장을 채 풀지도 못한 피로한 몸임에도 관중들의 박수 소리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일반인들이 상상을 불허하는 묘기를 연출했다.

이날 1시간 동안 걸친 시범경기는 이 선수들이 과연 세계 일류구나 하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의 한국 방문이었지만, 세계적으로 쟁쟁한 이름을 갖고 있는 유명 3쿠션 당구 선수들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시범경기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당구의 변화와 발전에 큰 활력소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시범을 마친 세계 유명 3쿠션 선수들은 다음날 일본 도쿄로 가서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에 출전했다.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시범을 마친 세계 유명 3쿠션 선수들은 다음날 일본 도쿄로 가서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에 출전했다.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 5월 7-10일 도쿄에서 개최된 '87 월드그랑프리3쿠션당구대회' 韓 김동수 출전

87년 5월 5일 어린이날 한국에 와서 시범경기를 끝낸 세계 유명 3쿠션 선수들은 다음날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5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도쿄의 미야코호텔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는 세계 유명 3쿠션 선수 7명과 세계 각 지역 국가에서 유망한 아마추어 3쿠션 선수 7명 등 모두 14명이 초청되어 벌이는 이벤트 대회였다.

한국의 김동수는 지난 1월 서울 88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일간스포츠배 전국당구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유망한 아마추어 선수로 이 대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대회 개막 전 한국에 들러 시범경기를 보여준 세계 유명 선수들의 경기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초청선수는 레이몽 클루망(벨기에), 루도 딜리스(벨기에), 리차드 비탈리스(프랑스), 리니 반 브라흐트(네덜란드), 아벨리노 리코(스페인), 고바야시 노부아키(일본), 고모리 준이치(일본) 등 7명이었다.

아마추어 선수로는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 길버트(미국), 아돌프 본(멕시코), 요시하라 요시오(일본), V.D 스미센(네덜란드), 가이 조지(일본) 그리고 한국의 김동수 등 7명이 출전했다.

경기 방식은 예선전은 15점 3전 2선승제로 A, B 2개 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진행했고, 각조 상위 2명 등 4명이 결승 토너먼트 경기를 벌여 우승자를 가렸다.

예선 결과 클루망과 고모리가 각조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딜리스와 고바야시가 올라 결승에 진출했다.

클루망과 딜리스의 준결승전에서는 딜리스가 승리했고, 고바야시와 고모리의 준결승전에서는 고모리가 이겨 결승에 올라갔다.

딜리스와 고모리의 결승전은 15점 5전 3선승제 경기로 진행되어 고모리 준이치가 3-1(15:12, 15:2, 7:15, 15:9)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종합성적은 1위 고모리(G.A 1.201), 2위 딜리스(1.082), 3위 클루망(1.525), 4위 고바야시 (1.293), 5위 자네티(1.099) 등이 차지했다.

김동수는 최하위에 머물러 한국의 3쿠션 실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에 입상하여 시상대에 선 선수들. (왼쪽부터) 2위 루도 딜리스, 우승 고모리 준이치, 3위 레이몽 클루망.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월드 그랑프리 3쿠션 당구대회’에 입상하여 시상대에 선 선수들. (왼쪽부터) 2위 루도 딜리스, 우승 고모리 준이치, 3위 레이몽 클루망.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준우승 루도 딜리스, 3위 레이몽 클루망.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준우승 루도 딜리스, 3위 레이몽 클루망.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우승 인터뷰하는 고모리 준이치.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우승 인터뷰하는 고모리 준이치.  사진=월간 빌리어즈(8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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