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선수들이 큐를 놓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와 비전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지친 선수들이 하나둘 떠나게 된다.

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길을 찾는 게 정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냥 붙잡을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당구라는 게 한 번 빠져들면 평생 헤어나오기 힘든 블랙홀이다.

다른 운동처럼 제한적이지도 않고 무한하다. 언제든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큐를 다시 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1976년생. 운동선수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고명준 선수가 큐를 다시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대를 포켓볼 선수로 보낸 고명준 선수도 한때 큐를 놓았다.

그런데 당구는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다시 큐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한국 챔피언이 되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워 끝내 이뤄냈다.

한국에서는 포켓볼이라는 종목이 인기가 없기 때문에‘한국 1등’이라는 타이틀도 요란스럽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자부심은 삶 전체를 뒤바꿔 놓았다.

그는 이제 아내와 한 아이의 가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한국 랭킹 1위의 목표를 이뤄냈던 열정으로 고명준 선수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포켓볼 선수로 복귀했다. 어린 선수들과 대결이 힘들지 않았나?

어떤 일이든 공백이 생기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떠나있는 동안 당구를 별로 치지 못했다. 새로운 일자리에 전념해야 했으니 시간이 나질 않았다. 큐를 놓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감각만 더 무뎌지기 마련이다.

지금도 그 시간이 후회가 된다.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발전을 했을 텐데 하고. 후배 선수와 대결에서 경기가 안 풀리면 그런 생각이 든다.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도 당구는 연륜과 경험의 비중이 큰 스포츠다.

연륜도 경험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큐를 잡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선수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겠지만, 당구선수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다.

승부에서 오는 만족감이 당구를 치는 전부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괴리가 생긴다. 재미있고, 짜릿하고, 흥분되고, 그런 감정에서 오는 만족감이 큐를 계속 손에 쥐여주지만, 한계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꾸준함을 잃게 된다. 큐를 놓았던 시간보다 감각을 살리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

 


큐를 놓았던 시기를 후회하는가?

당구선수가 비전이 없어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 서른에 가진 게 큐 두 자루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큐를 접고 광주로 내려가서 4년 동안 다른 일을 하며 살았다.

돌아보면 그 시간에 실력을 쌓았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꾸준함을 잃었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후배들 중에 이런 문제로 아직도 고민하는 선수들이 있다. 나처럼 큐를 아예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목표가 뭐였나?

한국에서 1등이 되는 것이다. 전역 후에 처음 포켓볼을 배우고 1년 반 정도 지나서 9점이 되었다.

그때 처음 한국 선수들과 대결을 해봤는데, 선수들만의 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니까 그 사람들 사이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한국에서 제일 잘 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걸출한 사람들 사이에서 랭킹 1위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하루에 10시간씩 꼬박 당구대 앞에 서 있었다. 중간에 4년을 쉬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2012년 랭킹 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랭킹 1위에 올라섰다.

목표를 이루고 나니 더 큰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대하는 내 방식도 달라졌다.

 


첫 우승을 화려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우승을 차지했던 것은 아마 2005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KBC 전국포켓9볼선수권대회 방송시합이었는데, 국내 최강인 정영화, 박신영, 김웅대, 김홍균 선수를 모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첫 방송시합에, 첫 결승전이었는데 신기하게 잘 됐다.


보통은 카메라가 낯설어서 제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게 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무지하게 낯설다. 그래서 긴장이 엄청 많이 된다. 나 같은 경우에 엎드려 있을 때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긴장이 많이 됐다.

다른 선수들도 대게 마찬가지 경험을 한다. 한두 세트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해서 딱 한 번 실수하면 포켓볼은 게임 전체를 내주게 된다.

나는‘시합을 연습처럼 하자’는 마음가짐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합을 연습처럼 한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평소 연습이나 시합에서 기억한다면 중요한 순간에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원래 꿈은 뭐였나?

나는 어려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 야구부가 없어져서 축구부에 들어가서 축구를 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을 잘했다.

오래달리기 학교 대표선수였고. 그런데 외아들이다 보니 부모님은 공부를 하기 원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선수들이 이렇게 돈을 많이 벌 때도 아니었다.


어떻게 당구선수가 됐나?

대학교를 사회체육학과에 가서 운동을 맘껏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유년시절에 기본기를 쌓지 않다 보니 선수 생명이 긴 종목을 찾았고, 골프하고 당구를 놓고 고민했다.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반면에 당구는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칠 수 있었다.

그래서 당구를 선택했고, 전역 후에 포켓볼을 배우면서 2001년에 포켓볼 선수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선수에 대한 욕망이 있었는데, 그걸 뒤늦게 이룬 것이다.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면 후배나 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후배들에게 큐를 놓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꾸준하게 큐를 잡고 있으면 언젠가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 경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구를 열심히 치다 보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지앤아이 박용진 회장님, 유니버설코리아 박석준 대표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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