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팔방미인' 당구선수 김진아...포켓볼 이어 여자 3쿠션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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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팔방미인' 당구선수 김진아...포켓볼 이어 여자 3쿠션 제패
  • 김민영 기자
  • 승인 2020.11.1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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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국체전 금메달 이어 2020년에는 전국대회 여자3쿠션 부문 우승

매일 코피 쏟아가며 포켓볼 금메달 획득...3쿠션도 포켓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도전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이 큰 힘 돼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 출전이 목표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미인이란 뜻의 ‘팔방미인’은 흔히 못 하는 것 없이 잘하는 사람을 칭한다. 포켓볼 선수이자 3쿠션 선수이기도 한 김진아(28)를 설명하는 단어로 이 ‘팔방미인’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대전을 대표하는 포켓볼 선수인 그녀가 최근 3쿠션까지 넘나들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 잘한다, 두 종목 다. 게다가 글자 그대로,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름다운 미모까지 더해 ‘팔방미인’이란 별명에 방점을 찍었다. 

2018년 열린 ‘2018 알바몬 WPBL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에 출전하며 3쿠션 선수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한 김진아는 2019년 철원오대쌀배 전국3쿠션당구대회 8강 입상, 제8회 부산광역시장배 전국3쿠션당구대회 공동3위, 태백산배 전국3쿠션당구대회 공동3위에 오르며 3쿠션 선수로서 입지를 차근차근 다져왔다.

무안황토양파배 전국당구대회 여자부 결승에 올라 24:25로 김민아에게 1점 차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던 김진아는 결국 올해 8월 열린 ‘제16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및 2020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의 3쿠션 여자부 결승에서 성사된 김민아와의 리벤지매치에서 승리하며 첫 3쿠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김진아는 PBA(프로당구협회)의 김가영 외에 대한당구연맹(KBF)에서는 포켓볼과 3쿠션에서 모두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첫 선수가 되었다. 
 

올해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대한당구연맹 선수로서는 최초로 포켓볼과 3쿠션에서 모두 챔피언에 자리에 올랐다. 축하한다. 3쿠션도 이렇게 잘 치는 줄 몰랐다.

2017년 말부터 3쿠션을 치기 시작해서 햇수로는 4년차지만, 실질적인 시간은 3년 정도 됐다. 2018년에 했던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WPBL)에 참가하고 나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때 다 3쿠션 전문 선수인데, 나만 포켓볼 전문 선수라 확실히 실력 차이를 많이 느꼈다.

시합은 못 하는데, 얼굴 좀 반반해서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 소리 안 들으려고 스스로 정말 열심히 했다. 궁금한 공이 있으면 당시 3쿠션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을 하루 종일 붙잡고 졸랐다.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나니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WPBL은 어떻게 나가게 된 건가? 포켓볼 선수인 김진아가 3쿠션 대회에 나와서 많은 사람이 놀랐다. 

3쿠션 배운 지 10개월 정도 됐을 때인데, 우연히 WPBL을 한다는 공지를 보고 이 대회에 꼭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23점 치고 있었고 애버리지도 0.6 정도밖에 안 되던 때인데, 선발전에서 평균 0.8, 0.9씩 애버리지가 나왔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결국 운 좋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WPBL은 개인전이 아니고 팀 리그로 진행됐고, 게다가 6개월 동안 진행되면서 당구 방송에 꾸준히 노출되는 대회였는데, 부담감은 없었나?

너무 좋았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당구선수를 하면서 ‘아, 이게 정말 당구선수구나’라는 걸 느꼈다. 어딜 가나 ‘당구선수 김진아’를 알아봐 주셨다. 당구장이 아닌 곳에서도 나를 알아봐서 너무 신기했다.

한 10년 동안 당구를 쳤는데 그동안은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한순간에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당구선수가 됐다. 너무 행복했다. 
 

2018년도 연말에 시상식까지 하고, 다음 해에도 다시 시작할 줄 알았던 WPBL이 2019년에 돌연 PBA가 생기면서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아쉬움이 컸다. 1년만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2018년도 실력이랑 2019년도 실력이랑 엄청 다른데, 이제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너무 아쉬웠다. 

처음에 당구선수는 어떻게 하게 됐나?

아빠의 권유로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당구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일찍 끝날 수도 있고, 가끔 학교에 안 가도 된다, 그래서 솔깃했다. 아빠가 3쿠션 선수였는데, 그즈음 가영 언니랑 유람 언니가 주목을 받으면서 나도 포켓볼 선수로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중학생 때인 15살에 처음 포켓볼을 배우고 제주도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부산에서 주니어 선발전을 하길래 참가했다가 선발되면서 점차 당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첫 당구 스승은 아버지였나? 

그렇다. 처음에 아버지한테 당구를 배우고 10년 동안 혼자 연습하다가 박신영 선수에게 3년 동안 배웠다. 그때 제일 많이 늘었다. 박신영 선수한테 배우면서 전국체전 금메달도 땄다. 당구도 당구지만, 엄격하게 생활 관리를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다. 신영 삼촌이 무서워서 억지로 나가서 연습하고 그러면서 실력도 늘었다. 당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 많으신 분이다. 

 

1992년생이면 또래 당구선수들이 많다. 

포켓볼 선수 중에는 권호준, 김정현이, 3쿠션에서는 최은지, 오태준 등이 동갑내기다. 김행직 선수도 같은 92년생이긴 한데 학년이 빨라서 오빠라고 부른다. 
 

현재 대전 소속으로 유승우 선수와 최강 포켓볼 복식팀을 이루고 있다. 

원래 울산에 있다가 재작년에 대전으로 이적했다. 울산에 있을 때부터 메달은 꾸준히 땄는데, 대전의 유승우 선수가 남자랭킹 1위라 유승우 선수와 복식을 나갈 수 있어서 대전으로 이적했다. 

 

포켓볼과 3쿠션을 병행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나? 같은 당구라도 전혀 다른 타구를 구사해야 하는데, 3쿠션으로 전향할 의사는?

아쉽게도 전국체전에는 여자 3쿠션 종목이 없다. 전국체전에 나가야 해서 계속해서 포켓볼과 3쿠션을 같이 칠 예정이다. 

‘포켓볼 선수가 왜 3쿠션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현재 당구는 포켓볼 전문선수, 3쿠션 전문선수, 스누커 전문선수 이렇게 나뉘어 있지 않다. 어떤 선수든 원하는 대회에 원하는 종목으로 출전할 수 있어 다행히 두 종목을 같이 할 수 있다. 
 

3쿠션은 왜 치게 된 건가?

솔직히 포켓볼은 1등을 해도 대중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다. 언론도 그렇고, 후원도 마찬가지다. 포켓볼은 대회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상금이 크지도 않고, 후원사도 별로 없어서 선수들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 그나마 전국체전 딱 하나 보고 시도체육회에 들어가는 게 유일하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3쿠션은 당구장에 나와서 연습만 해도 월급을 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그래서 시작했다. 그러다 WPBL 선발전에 나가면서 더 본격적으로 3쿠션을 치게 됐다. 
 

WPBL에는 여자3쿠션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히다 오리에(일본)를 비롯해 전부 3쿠션 선수들이었고, 유일하게 포켓볼 선수로 3쿠션 대회에 출전했다.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다들 나보다 오래 훈련해 온 3쿠션 선수들이라 나한테 지면 납득을 못하고 인정을 못 했다. ‘얘는 포켓 선수니까 얘한테는 지지 말자’ 이런 분위기도 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3쿠션 선수들이 ‘까딱하면 얘한테도 질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지난 8월에 ‘문체부장관기 및 고성군수배 당구대회’의 결승에서 국내 랭킹 1위 김민아를 꺾고 여자 3쿠션 종목 우승을 차지했다. 

WPBL 때만 해도 김민아, 스롱 피아비, 이미래 선수는 절대 이길 수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선수들을 만나도 내가 지겠구나 이런 생각은 안 든다. 내가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훈련해 왔는데, PBA로 많은 여자 3쿠션 선수들이 이적하면서 대결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가장 속상한 것은 내 우승이 반쪽짜리 우승이 돼 버린 것 같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속상하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관중도 없는 상태에서 시합을 하다 보니 많이 아쉽다. 

그래도 결승에서 국내 랭킹 1위의 김민아를 아주 좋은 성적으로 꺾었다. 당시 대회는 어땠나? 가장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나?

준결승전 용현지와의 경기가 가장 어려운 경기였다. 4강전부터 방송대회인 줄 알고 오랜만의 방송 경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대회에 들어가려고 보니 아니었다. 우선 거기에 대한 실망감이 컸고 그 실망감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송 대회가 아닌 아쉬움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집중해서 겨우 역전승으로 이길 수 있었다. 

 

보통 방송 대회를 부담스러워하던데, 김진아 선수는 방송대회가 더 힘이 나는 것 같다. 

너무 좋다. 한번 관심을 받아 봤기 때문에 그 관심이 너무 그립다. 방송을 통해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어쨌든 지금은 그런 환경이 되지 못하니 너무 아쉽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문제라 요즘은 미디어 때문에 서러울 때가 많다. 

 

LPBA 투어에 나가면 방송 원 없이 탈 수 있을 텐데, 프로 투어로 이적할 생각은 없나?

포켓볼 선수로 전국체전에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승우 오빠와 팀을 이루고 호흡을 맞추고 있어서 내가 나가면 대전 팀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아직은 PBA로의 이적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포켓볼 선수로 10년 활동한 것과 3쿠션 선수로 3년 활동하면서 느낀 괴리감이 컸을 것 같다.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 정말 물질적인 것만 표현하자면, 포켓 선수 10년 동안은 한 번도 돈을 모은 적이 없다. 생활비는 항상 부족했고, 쓰느라 바빴다. 그런데 3쿠션을 치고 나서 차도 바꾸고 전셋집도 얻고 생활이 달라졌다. 10년 동안 없던 기업 후원이 3쿠션을 치면서 생겼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도 딸 수 있었다.

덕분에 포상금도 몇천만 원 받게 되고 시너지 효과까지 났다. 처음에 3쿠션을 친다고 했을 때 포켓볼이나 더 열심히 치지 왜 이제 와서 3쿠션을 치냐고 말렸던 사람들이 지금은 오히려 부러워한다. 

 

가끔 포켓볼 주니어 선수들을 만나면 포켓볼을 치다가 기회가 되면 3쿠션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선수들이 있다. 두 종목을 모두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모든 걸 내려놔야 한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습관들도 다 버려야 한다. 처음 공을 쳤을 때로 돌아가야 한다. 나도 늦게 3쿠션을 시작하고 보니 김예은이나 김보미처럼 나보다 한참 어린데 공은 나보다 훨씬 잘 치는 선수들을 보면서 다 버렸다. 3쿠션에서 나는 더이상 랭킹 안에 들던 선수가 아니고 제일 밑바닥에 있는 선수였다. 

포켓볼에서의 경험이 3쿠션에 도움이 되나?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되나?

나한테는 엄청 도움이 됐다. 두 종목이 서로 보완작용을 한다. 3쿠션을 치면서 포켓에서는 수비와 뱅크샷이 엄청 늘었다. 역수비라든지, 가려진 공이 엄청 어렵게 섰을 때도 이제는 쿠션을 이용해서 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3쿠션에서는 키스 빼는 게 유리하다.

3쿠션 선수들은 수구의 각은 잘 알지만 1목적구가 어떻게 가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포켓이 도움이 많이 된다. 보통 포켓볼 선수가 3쿠션 치면 포켓이 줄고, 3쿠션 선수가 포켓을 치면 3쿠션이 준다고 생각하는데, 퍼팅감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다른 부분은 보완해 줄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처음 당구선수를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안 좋아하셨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입상해서 상장을 가져다드리니까 엄청 좋아하시더라. 서울 올라오고 나서는 엄마의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서울도 못 오게 하고, 대회장에도 못 오게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가 대회장에서 내 경기를 본 적이 없으신데, 다음에 결승에 올라가면 꼭 엄마도 경기장에 초대하고 싶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지금까지 당구선수로 살아오면서 14년 동안 챔피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실에 충실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내년이 기대되고, 내후년은 더 기대가 된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지만 너무 허황된 꿈을 꾸다 보면 우울감에 빠지더라.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자는 주의다. 그래서 그런지 오해도 많이 받는다. 잘 놀고, 연애 잘하고, 연습도 잘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잘해도 인정 잘 못 받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김진아는 어떤 선수인가?

솔직히 나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더 있을까 싶다. 보통 미쳐있다고 표현하지 않나, 정말 당구에 미친 것처럼 당구를 쳤다. 박신영 선수에게 배우는 3년 동안은 매일 밤 씻을 때마다 코피를 쏟았다. 아침 6시에 나와서 헬스장 가고, 아침 먹고, 1시간 낮잠 자고 다시 강남역에서 방배역까지 걸어서 당구장에 가서 11시부터 연습을 시작하는데, 6시간 동안 30분 정도 쉬었다. 그렇게 밤 11시까지 연습하고 또 걸어서 집에 왔다. 헬스장 들렀다가 집에 가서는 잠만 잤다. 그렇게 3년을 살았더니 금메달이 내 손에 있더라. 이렇게 열심히 미친 듯이 연습해서 얻은 결과인데,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서 서운할 때도 있다. 

좋아하는 당구선수나 롤모델은 누구인가?

강동궁 선수가 롤모델이다. 별명도 헐크고 힘도 엄청 세서 좋다. 나도 여자 헐크가 되고 싶어서 요즘 근육 키우려고 클라이밍도 시작했다. 덕분에 세 바퀴 돌리는 대회전이 가능해졌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은 3쿠션 2연패가 목표다. 여자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수 있는 랭킹이 됐는데, 빨리 코로나가 사라져서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나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구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원하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쪼끄만데 잘한다, 실력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요새 너무 미디어에 노출이 안 되다 보니 사람들이 김진아라는 선수에 대해 잘 모른다. 제발 잊지 말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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