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육상에서 당구로' 큰 부상 극복하고 전국제패 한 안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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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육상에서 당구로' 큰 부상 극복하고 전국제패 한 안지훈
  • 김민영 기자
  • 승인 2020.10.20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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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떨림 증상, 당구에 치명적인 '본태성진전증' 극복하고 15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학창 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하다가 뒤꿈치 부상으로 꿈 접고 이후 당구선수의 길 걸어

20대 초반 전국에 이름 날리며 유망주로 주목 받아... 또 다시 부상 '불운' 긴 슬럼프 찾아와

조재호, 최성원 등 경쟁자들과 벌어진 격차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하게 "연습, 또 연습"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20년 차 당구선수 안지훈(대전)이 지난 8월 21일 경남 고성군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20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 3쿠션 남자 일반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랭킹 14위에서 7위로 오르며 단숨에 10위권에 안착했다.

2000년 당구선수로 데뷔한 안지훈이 어느새 20년 차 중견 당구선수로 자리 잡았다. 데뷔 초부터 중부권에서 열린 당구대회에서 입상하며 기대주로 기대를 모았고, 데뷔 5년 만인 2005년에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우승하며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렇게 정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던 그가 불현듯 하루아침에 당구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당구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무려 15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드러냈다. 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우선 우승 축하한다. 이번 대회 우승이 15년 만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안지훈이라는 선수가 갖고 있는 인지도와 이미지가 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2005년 25살 때 첫 전국대회 우승 후 전국대회 4강, 코리아오픈 결승 진출 등 한참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그 병 때문에 당구선수까지 그만둬야 했다.

갑자기 발병됐나, 어떤 병이었기에 당구선수까지 그만둬야 했나.

'본태성진전증'이라고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와 같은 병이다. 카시도코스타스는 당구 칠 때 손이 떨리는데, 나는 당구만 치려고 하면 머리가 떨렸다.

사실 당시에는 아무도 변명도 몰랐다. 한참 동안 여러 병원을 다닌 끝에 알아낸 변명이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당구만 치면 머리가 떨려서 도저히 샷을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병 때문에 당구선수를 그만둔 건가.

2009년 12월에 유니버설에서 주최한 대회에 참가를 했는데, 너무 심하게 머리가 흔들려서 도저히 경기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뻔한 공을 내 의사와 다르게 팔이 나가니까 도저히 맞힐 수가 없었다. 대회를 망친 후 이제는 더이상 당구를 못 치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휴직계를 내고 2010년부터 쉬었다.

당구선수를 아예 그만둘 생각이었나, 치료하고 돌아올 예정이었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변명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없고.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대한테 자꾸 지니까 희망이 없었다.

지금은, 완치가 돼서 돌아온 것인가.

아니다. 여전히 증상이 있다. 다만 이제 변명도 알고, 치료도 꾸준히 하고 있다. 단,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인데, 너무 위험해서 수술은 못 하고 전기치료만 하고 있다.

약물치료도 있지만, 도핑 문제 때문에 시합이 있으면 약도 먹을 수 없다.

여전히 아픈 몸으로 이번에 우승을 했다. 대단한 결과다. 기분이 어떤가.

예상 못 했다. 너무 기쁘다. 당구선수로 다시 복귀했을 때 성적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당구나 열심히 치고 하고 싶은 거나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도 우승이 목표가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고 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당구는 언제부터 친 건가.

15살 때 친구가 억지로 당구장에 처음 데리고 간 게 시작이었다. 중2 때였는데, 육상선수였다. 원래부터 밖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했지 실내에서 하는 운동은 관심이 없었다.

당구도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라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치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심지어 중2 여름방학 때 당구에 빠져 원래 하던 운동에 소홀해졌다.

여름, 겨울에 집중 훈련을 해야 하는데 당구 때문에 훈련에 전념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 당구 때문에 하던 운동을 그만둔 건가.

그렇진 않다. 멀리뛰기 선수였는데, 훈련하다가 뒤꿈치를 다쳤다. 뒤꿈치에 성장판이 있는데 그게 다 깨졌다. 결국 부상 때문에 그만둬야 했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그만두면 상실감이 컸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중학교 때 운동하느라 다른 친구들만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고등학교를 공업고등학교로 갔는데, 적응을 못 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자동차과를 갔는데,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운동을 했다.

어떤 운동을 했나.

유도를 했는데, 저렇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당구는 계속 쳤다. 그러면서 당구 실력만 자꾸 올라갔다.

대구에서 살다가 아버지 직장 때문에 1999년 여름에 대전으로 왔는데, 그때 내가 당구를 700 치던 때였다. 중학교 졸업할 때 500이었다.

결국 당구를 선택하고 2000년 1월에 당구선수로 등록했다.

갓 스무 살 됐을 때였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내가 제일 잘하고, 잘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게 당구라고 생각해서 당구선수가 되기로 하고 대전당구연맹에 선수로 등록했다.

당구선수로 첫 우승했던 때 기억나나.

2005년 12월 5일 남서울대학교에서 열렸던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였다. 물론 그전에도 우승한 적이 있지만 연맹에서 직접 개최하는 전국대회는 아니었다. 당시는 그런 대회가 많지 않았다.

청주 오픈이나 ‘정말로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당구대회’ 투어에서 우승도 하고 여러 번 입상했지만 타이틀로 내세우기는 임팩트가 부족했다. 더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었다. 성에 안 찼다.

2005년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이후 2020년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10년에 휴직계를 내고 혼자 여행 다니면서 생각 정리를 했다. 그러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하는 동안 꼬박 1년 동안 단 한 번도 당구장에 안 갔다. 다시 당구가 치고 싶을까 봐 당구장 근처도 안 갔다.

그렇게 1년쯤 지나고 당구장에 한 번 올라간 적이 있는데, 무슨 막대기를 들고 돌을 치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로 하던 일 정리하고 매니저로 당구클럽에 들어갔다.

결국 다시 당구로 돌아왔다. 곧바로 당구선수로도 복귀했나.

1년 6개월 정도 쉬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다 보니 다시 시합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텔레비전에서도 계속 당구대회가 나오니까 안 볼 수가 없었다.

당구를 치면 머리가 떨리는 건 여전했지만 그 전보다 덜 떨렸다. 아마 그동안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그런 것 같았다. 심적인 부담도 덜했다. 성적이 나든지 말든지, 성적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당구선수로 복귀했다. 이번에 우승할 때도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항상 톱10 안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욕심도 미련도 없다.

한창 잘 나갈 때 함께 겨루던 선수들이 이제 다 톱랭커가 됐다. 불안하지 않았나.

조재호, 최성원 등 당시 같이 활동하던 선수들은 세계 톱이 됐다. 내가 쉬는 동안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 너무 많이 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걸 언제 따라가지 싶었다.

지금은 길게 보고 조금씩 내 페이스대로 훈련하고 있다.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나 욕심도 다 비웠다. 내가 하고 싶은거나 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한 거다.

이번 대회는 어땠나, 한참 떠오르는 김준태를 꺾고 우승했다.

김준태는 조명우 이후로 가장 공격적인 후배다. 이 친구가 거의 수비가 없을 정도의 공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 선배들은 이런 후배 선수들을 만나면 엄청나게 부담스럽다.

준결승에서 대결한 이범열도 군 제대하자마자 곧바로 준결승까지 올라온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이번에 대회에서 보니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성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보다 갖고 있는 병 때문에 기존의 스타일을 바꿔야 했다. 흔들림 때문에 스트로크에 영향을 받으니 템포를 더 빠르게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빠른 템포로 공을 치는 훈련을 했다.

원래 5~6번 하던 예비 스트로크를 2~3번으로 줄였다. 머리가 떨릴 새가 없이 공을 쳐야 해서 습관처럼 가지고 있던 스트로크 리듬을 빠르게 바꿨다.

그래도 떨림이 샷에 영향을 끼치면 아예 왼손으로 바꿔서 친다. 왼손으로 샷을 할 때는 전혀 안 떨린다.

원래 양손잡이가 아닌데 머리 떨림 때문에 차라리 왼손으로 치자는 생각으로 왼손 훈련을 했더니 지금은 왼손으로도 30점 정도 칠 수 있게 됐다.

수비형 선수에서 공격형 선수로 바뀌면서 오히려 성적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스타일을 바꿨더니 완전히 공격형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수비적인 면이 강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공격적이다. 핸디캡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처음에 머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병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왜 자꾸 시합 나와서 떠냐고 걱정해줬는데 오히려 그런 말들이 스트레스였고, 상처였다.

전성기의 안지훈으로 다시 돌아왔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시기적으로 대한당구연맹 선수와 프로당구협회 선수로 양분되어 있어서 안타깝다. 모든 선수들이 다 같이 좋은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니 가슴이 아프다.

나는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너무 매력적이다. 학창 시절 그 무대를 보면서 당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그 무대를 경험해 보니 꼭 월드컵에서 우승해 보고 싶다.

두 번도 바라지 않는다.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다. 계속해서 월드컵에 도전하는 데 아직 최고 성적은 16강이다.  

월드컵은 국내 대회보다 많이 어려운가. 

그때 16강에서 토브욘 블롬달에게 졌는데, 경험 미숙이었다. 역시 다르더라. 나름 많은 대회를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전혀 공을 못 치고 내가 어렵게 준 공도 상대는 너무 쉽게 치니까 내가 더 당황했다.

한국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고 쳐야 하는 공인데, 숨도 안 쉬고 5초도 안 걸려서 치는 걸 보면서 이래서 다르구나 싶었다. 자극이 많이 됐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시 우승을 한 내 자신에게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당구를 치는 모든 사람들은 저점자가 고점자가 되고, 또 그중에 선수가 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숨은 고수들이 많이 당구선수로 데뷔해서 당구 발전에 같이 이바지해줬으면 좋겠다.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당구 발전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인터뷰=김민영 기자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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