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종목

당구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에 도전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에 도전했지만, 개최국에 종목 채택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스누커 강국인 영국은 당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지 못했다.

얼마 전 IOC는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 정식종목 채택 권한을 부여했다. 이것은 가라테(공수도)와 야구&소프트볼의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포석으로 점철된다. 그런데 당구가 그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구의 첫 올림픽 정식종목 도전, 과연 가능할까?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스쿼시 등의 라켓을 사용하는 라켓 스포츠에 비해 큐를 사용하는 큐 스포츠는 아직 국제 스포츠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큐 스포츠인 당구는 올림픽 종목 진입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정식종목에 채택된 적은 없다.

당구가 국제적으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의 정식종목이 된 것은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정식종목으로 참가한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도 개최국의 재정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종목을 축소하겠다는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의 방침에 따라 당구는 지난해 열렸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었고, 한 해 앞서 열린 2013 인천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했다.

당구가 실내 종목이기 때문에 ‘인도어게임(Indoor Game)’인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맞다는 OCA측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당구 외에 다른 실내 종목은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로 편입되지 않았다. 게다가 볼링은 아시안게임과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서 모두 치러지기도 했다. 정치적 입김이 종목의 성패를 결정한 느낌이 다분하다.

당구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여파는 곧바로 지난해 대한체육회 예산 편성에서 나타났다. 국가대표에 대한 지원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을 우선한다는 대한체육회의 방침에 따라 비올림픽 및 비아시안게임 종목인 당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사상 처음으로 태릉선수촌에서 입촌 훈련을 했던 당구 국가대표팀은 더 이상 태릉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나타나듯 성과 중심의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계에서 당구라는 종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그리고 전국체전에 반드시 정식종목으로 잔류해야 한다.

성장 과도기에 있는 한국 당구는 이런 시련으로 깨달음 하나를 얻은 셈이다. 당구가 스포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비록 굳게 닫혀 있는 문일지라도 계속해서 두드려야 한다는 깨달음 말이다.

얼마 전 귀가 솔깃해지는 뉴스가 하나 올라왔다. 당구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뉴스는 BBC나 AP통신 등의 외신을 통해 전 세계 각 언론사에 전달되었고, 국내 메이저 언론까지도 기사를 쏟아냈다.

꽁꽁 닫혀 있는 문을 두드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기사마다 말미에 ‘야구 때문에 안 될 것이다’는 사족이 달렸다. 불편하지만 기사처럼 대부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개최국인 일본의 의견이 반영되기 때문에 야구&소프트볼, 가라테가 유리하다고 본다.

IOC 위원장

이와 관련된 기사는 모두 인기 스포츠인 야구의 정식종목 채택 여부에 초점이 맞아 있다.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상 객관적이고 엄밀한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야구&소프트볼의 정식종목 채택 가능성이 과연 높을까?

IOC는 지난해 말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총회에서 ‘올림픽 어젠다 2020’을 발표하였는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도시에 정식종목을 추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지금까지 올림픽 정식종목은 IOC 위원들의 투표를 통해서만 결정되었다.

갑작스럽게 IOC가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 이 엄청난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마도 일본이 도쿄 올림픽에서 반드시 추가해야 할 어떤 종목이 있기 때문에 물밑 작업을 벌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 대상으로 태권도처럼 되기 위해 올림픽 정식종목을 지속적으로 노리고 있는 가라테와 올림픽 재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야구&소프트볼이 있다고 알려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시범종목을 거친 가라테는 일본이 종주국인 종목으로 일본의 메달 획득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올림픽 입성을 위해 끊임없이 IOC를 설득시켜 왔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종목이다.

이번에 가라테는 올림픽에 입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는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가라테의 저변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퇴출 후 명칭을 바꿔 재도전하는 야구&소프트볼보다는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을 한 차례 거치고, 지속적으로 올림픽에 잔류할 가능성이 큰 가라테가 정식종목이 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가라테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번에 일본이 만약에 가라테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가라테는 다음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에 채택될 가능성이 더 희박해지게 된다. 일본도 선택하지 않은 가라테를 굳이 다른 나라에서 선택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가라테는 도쿄 올림픽에서 어떻게든 정식종목이 되어야 한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이미 결정된 28개 정식종목 외에 1~2개 종목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라테와 야구&소프트볼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이번에 당구가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여러모로 정황상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가라테를 제외하고, 당구가 야구&소프트볼과 종목 역량 평가를 하면 어떻게 될까? 올림픽 정식종목을 선정하는 OCA의 객관적인 기준에 얼마나 충족하는가를 따져보면 당구가 알려진 것처럼 야구&소프트볼에 마냥 뒤처지는 것만은 아니다.

야구&소프트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퇴출당한 종목이라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야구는 올림픽 정식종목일 당시에 전 세계에 보급된 나라가 몇 개국 되지 않아서 올림픽에서는 예선전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출전국이 적었고, 고작 7개국이 본선을 치르는 형태로 대회가 진행되어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매번 한국, 미국, 일본 등 3강이 메달을 독식하기 때문에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야구를 퇴출시킨 중론이었다. 물론 한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했고, 야구의 인기가 많다 보니 올림픽에서 야구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

나 역시 야구를 좋아하고 올림픽에서 야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엄밀한 기준으로 평가하면 당구가 야구&소프트볼보다 올림픽 종목의 자격을 더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조건은 ‘올림픽 헌장 제52조’에    “최소한 75개국 4개 대륙에서 남성에 의해 널리 시행되고 있고, 동시에 최소한 40개국 3개 대륙 이상에서 여성에 의해 널리 시행되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당구는 이 조건에 충분히 부합한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4대륙에서 3쿠션 월드컵이 매년 개최되고 있고, 미국의 포켓볼 프로 투어 WPBA, 아마추어 투어 APA, 그리고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을 중심으로 WPA 포켓볼 세계 오픈대회가 매월 열리는 등 전 세계 200여국 이상에서 남성과 여성이 모두 참여하는 토너먼트가 수년간 끊이지 않고 개최되고 있다.

영국, 중국, 인도, 태국, 호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스누커는 국내에는 생소한 종목이지만, 전 세계 96개국에서 토너먼트가 열리고 5억 명이 넘는 인구가 BBC나 유로스포츠를 통해 즐겨 보는 인기 스포츠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월드 스누커’ 프로 투어가 급성장하여 축구나 야구, 농구 등의 인기 프로선수와 대등한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대거 탄생하기도 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면 당구가 결코 야구&소프트볼보다 결코 불리하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도 야구는 인기 있는 종목이고, 이미 도시마다 야구장이 건설되어 있어서 경기장 건립에 필요한 재정적인 부담을 덜게 된다는 점에서 일본은 야구&소프트볼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이후의 올림픽 개최국은 야구&소프트볼을 치르기 위한 야구장을 따로 건립해야 하고, 그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에 야구&소프트볼이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채택된다고 해도 계속해서 올림픽에 잔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렇게 야구&소프트볼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OCA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구는 매우 의미가 있는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당구의 올림픽 종목 도전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수면 위에 올라왔었다. 만약 런던 올림픽 때 개최국의 의지대로 종목을 선정할 수 있었다면 캐롬이나 포켓볼은 몰라도 스누커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개최 7년 전에 정식종목을 확정한다는 IOC 규정에 따라 지난 2009년에 28개 종목이 확정되었다. 골프가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고, 7인제 럭비가 9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당구가 올림픽에 도전한다면 2020년이 가장 빠르다. 이에 맞춰 세계 당구 경기 단체들은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시기적절하게 ‘월드 스누커’의 WPBSA(World Professional Billiards & Snooker Association, 회장 제이슨 퍼거슨)와 캐롬과 풀 종목의 세계 경기 단체인 WCBS(World Confederation of Billiards Sports, 회장 장 클라우드 듀퐁)가 당구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이들은 IOC에 성명서를 제출하고, 당구가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요약하여 설명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이 얻은 개취국 종목 채택 권한이 가라테와 야구&소프트볼 때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당구로서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도전이다. 아니,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도전이다. 그런 면에서 WPBSA와 WCBS의 발 빠른 대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와 같은 라켓 스포츠가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큐 스포츠와의 형평성 문제, 아울러 그들에게는 없는 큐 스포츠가 보유한 저변과 장점을 충분히 어필하면 올림픽 정식종목은 반드시 이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큐 스포츠의 미래를 위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라는 점을 인지하고,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목표로 전 세계 당구 관계자들이 좀 더 확실하게 움직이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가라테와 야구&소프트볼에 대항하여 당구처럼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에 도전장을 낸 종목은 스쿼시, 롤러스포츠, 스케이트보드, 서핑, 우슈, 암벽등반 등이다. 이들 종목 모두 각자의 역량을 강조하며 벌써부터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로비를 시작했다.

당구의 올림픽 입성도 결코 꿈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도전하는 당구의 운명은 내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최 직전에 현지에서 열리는 129회 IOC 총회에서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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