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130년史] '제2의 탄생' 한국 男 포켓볼, 당구 유학 등 보급 7년 만에 아시아 정상권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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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130년史] '제2의 탄생' 한국 男 포켓볼, 당구 유학 등 보급 7년 만에 아시아 정상권 도약
  • 김기제 발행인
  • 승인 2018.05.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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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87년 11월 제2회 일간스포츠배 전국당구대회(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당구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첫선을 보임으로써 제2의 탄생을 알린 한국의 포켓볼은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세계의 흐름을 좇아 포켓볼을 육성해 보려는 몇 안 되는 당구 관계자들의 노력과 선수들의 각고의 훈련 결과로 7년이 지난 무렵에는 마침내 아시아 정상급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특히 대한당구경기인협회를 창립한 김영재 회장은 회장 재임 시절 이후에도 대한당구선수협회 명예회장의 직함으로 열악한 여건 가운데서도 선수들이 기량 향상과 경기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독일, 일본, 대만 등지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빈번하게 인솔하고 다녔다. 

90년에 창설된 아시아포켓볼연맹(APBU) 투영휘 회장은 김영재 회장을 APBU 부회장으로 영입하여 10여년을 아시아의 포켓볼 발전과 함께 한국 포켓볼이 보다 빠른 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다.
 

한국 남자 포켓볼은 87년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일간스포츠배 전국당구대회를 기점으로 '제2의 탄생'을 맞았다. 또한, 90년대 초반에 박신영, 이열, 정영화 등의 1세대 선수들이 APBU 투영휘 회장과 대한당구경기인협회 김영재 회장의 노력으로 대만에서 당구 유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한국은 아시아 남자 포켓볼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진은 당시 한국 남자 포켓볼을 대표하는 1세대 선수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그중에서도 투영휘 회장이 한국 선수들이 포켓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을 대만으로 초청하여 정상급 수준의 대만 포켓볼을 접하게 해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배려였다. 

93년 초에 이열이 대만에 당구 수업을 다녀온 뒤 그해 11월에 박신영과 정영화가 투영휘 회장의 초청을 받아 4개월간 대만에 다녀왔다.

그들은 당구클럽에서 자주 개최되는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많은 경기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두 사람의 기량은 크게 향상되었다. 당구 유학을 다녀온 선수들의 기량 향상은 국내의 다른 선수들의 기량까지 발전시키는 파급효과를 유발하게 된다. 

박신영은 대만에서 당구 수업을 마치고 귀국한 지 6개월 뒤인 94년 8월에 개최된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에서 세계 정상급인 차오퐁팡을 꺾고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11월 일본에서 개최된 '제27회 전일본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 4명 중 이장수, 박신영, 이열이 32강 본선에 진출했고, 이장수는 8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만에서 개최된 ‘제4회 아시아 포켓9볼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의 박신영과 필리핀의 안토니오 리닝이 뱅킹을 하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박신영,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에서 차오퐁팡 꺾고 준우승 쾌거

94년 8월 26~28일 대만의 짜이시 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에 아시아포켓볼연맹(APBU)' 부회장인 김영재 대한당구선수협회 명예회장을 단장으로 박병수 간사와 박신영, 염규동, 정영화, 한경용 등 4명의 선수로 구성된 한국선수단이 참가했다.

대회 개막 전날 타이베이에서 개최지인 짜이시로 이동한 선수단은 짜이 시장이 초청한 환영 만찬에 참석하고, 대회 개막일에는 참가선수단 숙소에서부터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대회장에 도착해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아시아 각국에서 총 32명이 출전해 4개조로 편성, 패자부활 토너먼트로 진행된 예선에서 한국은 각조에 1명씩이 배정되어 경기를 벌였다.

A조의 염규동은 대만의 로슈에게 7-9로 패하고 B조의 정영화는 일본의 토다 타카시와 태국의 수라텝에게 각각 2-9로 져 예선 탈락했다. 

C조의 한경용은 1회전에서 대만의 쫑치엔덕에게 7-9로 패하고 패자부활전에서 일본의 이노우에를 9-8로 이겼지만, 대만의 라이짜찌웅에게 8-9로 석패해 8강이 겨루는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한편, D조의 박신영은 대만 CCTV와 일간신문 <민생보> 등 대만의 언론 매체들이 유력한 우승 후부로 전망하며 앞다투어 보도하는 가운데 선전했다.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에서 경기하는 박신영을 대만 국영 CCTV가 근접 촬영하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예선 1, 2회전에서 일본의 우찌야마를 9-7, 태국의 차츠완을 9-1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라 필리핀의 빌란베아에게 9-7로 승리,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박신영은 본선 8강전에서 앞해 12월 독일에서 개최된 '제4회 월드포켓9볼챔피언십'에서 우승, 명실공히 세계 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대만의 차오퐁팡을 13-8로 꺾으며 지난 92년 11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개최되었던 제3회 대회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2년 만에 설욕하였다.

준결승전에서는 지난 6월 삼풍백화점에서 개최된 '한국당구포켓9볼최강전'의 번외경기로 진행된 한일 친선 경기에서 5-1로 꺾은 바 있는 일본의 토타 타카시를 만나 13-8로 다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필리핀의 안토니오 리닝을 맞아 선전했으나 6-13으로 패해 정상 정복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박신영의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 준우승의 쾌거는 그간의 한국 포켓볼 선수들의 기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준 큰 성과였다. 
 

'제27회 전일본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 8강에 오른 이장수.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27회 전일본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에서 이장수 8강, 박신영과 이열은 본선 진출

'전일본 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는 세계포켓볼협회(WPA)가 공인하는 국제대회로 매년 개최되어 94년에는 제27회를 맞았다.

한국에서는 88년 제21회 대회에 박신영이 처음으로 단신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89년 제22회 대회에는 김철민과 정건표가 출전했다.

이후에도 한국 선수들이 계속 출전하기는 하였으나 세계의 높은 벽에 부딪혀 번번이 본선 진출에 실패해 예선 경기를 치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94년 11월 17일부터 20일까지 일본 아마사키 시에서 개최된 '제27회 전일본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를 겸한 포켓9볼 국제오픈대회에 한국은 대한당구선수협회 김영재 명예회장을 단장으로 박병수 간사와 대표로 선발된 이장수, 김원석, 임병연, 이열, 박신영 등 5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 대만, 필리핀, 한국 등 8개국에서 96명의 선수가 출전한 이 대회는 WPA 세계포켓볼협회 경기방식(패자부활 토너먼트)으로 치러졌다.

예선전은 4개조로 나누어 승자 4강과 패자부활전 4강 등 총 32명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해 우승자를 가리는 남자부 경기와 일본, 대만, 필리핀 등 3개국 32명의 선수가 출전해 예선전에서 승자 4강과 패자부활전 4강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해 넉다운 방식으로 우승자를 결정하는 여자부 경기 등이 열렸다. 

남자부 예선 1조 경기에서 이열은 1회전에서 일본의 이노우에를 9-4로 가볍게 꺾은 다음 일본의 시로이와와 대만의 양칭순을 각각 9-5, 9-8로 누르고 4강에 진출하며 본선 진출권을 확보했다.

예선 2조 박신영은 일본의 야마모토와 대만의 왕주임을 2, 3회전에서 각각 9-3, 9-6으로 꺾고 본선에 올라갔다.

예선 3조 이장수는 2회전에서 일본의 야마구치에게 8-9로 져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났으나, 일본의 야마카타를 9-8, 후지마를 9-6, 대만의 양요휘를 9-5로 누르고 32강이 겨루는 본선에 합류했다. 3조의 김원석과 4조의 임병연은 각각 1회전에서는 승리했으나 예선 탈락했다. 
 

‘제4회 아시아포켓9볼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박신영이 후원자인 녹색극장 및 그린포켓클럽(서울 신촌 소재) 천남중 사장과 기념 촬영. 3개월 뒤에 천남중 사장은 대한포켓볼연맹 초대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32강이 겨루는 본선에는 일본이 15명, 필리핀 5명, 대만 4명, 한국 3명, 미국과 멕시코가 각 2명, 인도네시아 1명 등이 진출하여 넉다운 토너먼트로 승부를 가렸다. 

본선 첫 경기에서는 이장수와 박신영이 대결해 이장수가 11-6으로 승리했고, 이장수는 16강전에서 일본의 시로이시를 11-5로 제압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열은 본선 32강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장수는 8강전에서 필리핀의 에스킬로를 만나 선전했지만, 6-11로 패해 4강 진출이 아쉽게 좌절되었다.

하지만 '제27회 전일본프로포켓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거둔 8강과 16강 진출의 기록은 한국 남자 포켓볼의 발전상과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일이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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