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95년 10월 26일 만장일치로 WCBS 가맹 안건이 통과한 GAISF 서울 총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WCBS 주요 인사 대거 방한... 로비 총력전
디너쇼, 총회 전날 칵테일 파티 열어 스포츠계 인사 초청

세계스포츠당구연맹(WCBS)은 95년 10월 열린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서울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스누커연맹(WSF) 니겔 올드필드 회장과 이탈리아당구연맹 마시모 델 프레티 회장, 세계포켓볼협회(WPA) 요르겐 샌드맨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지난해 몬테카를로 GAISF 총회에서 뜻밖에 'WCBS의 가맹 안건이 유보'되면서 1년 동안 전 세계 당구계가 힘을 함쳐 총력전을 다한 결과가 이번 서울 총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김포공항에 들어선 이들은 비장한 모습이었다.

80년대부터 전 세계 당구인들이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해 십수년 동안 펼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95년 서울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한 GAISF 집행부와 회원들을 지난 1년 동안 설득해야 했고, 이 기간에 당구 종목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 당구인들은 서울 총회에서의 가맹단체 승인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총회 기간 중에도 브런스윅(미국 당구대 제조사) 짐 바클러 회장과 WPA 샌드맨 회장, WSF 올드필드 회장 등 WCBS의 주요 인사들은 직접 로비 활동까지 전개했다. 

당시 WCBS를 구축하고 세계캐롬연맹(UMB)의 수장을 맡아 당구의 스포츠화 선봉에 섰던 WCBS 앙드레 가뇨 회장이 병세가 악화되어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남은 임원들은 가뇨 회장을 대신해 세계 당구인들의 여망을 이루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쏟아부었다(가뇨 회장은 이듬해인 96년 2월 안타깝게 사망했다).

세계스포츠당구연맹(WCBS) 앙드레 가뇨 초대 회장은 신병으로 서울 총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가뇨 회장은 GAISF 가맹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4개월 만인 96년 2월에 안타깝게 사망했다. 사진은 92년 WCBS 창립 총회에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양태주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뇨 회장(왼쪽).

GAISF 전체 총회에서 WCBS의 승인 여부가 결정나기 하루 전날인 25일. WCBS와 브런스윅의 주최로 GAISF 총회에 참석한 세계 스포츠 인사와 각국 대표들을 초빙하여 칵테일 파티를 개최했다.

이 칵테일 파티는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해 마지막 쐐기를 박는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당구인들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한국 당구인들은 총회 개최 3일 전인 10월 20일에 서울 조선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빌리어드 디너쇼'를 개최해 국내 정치인과 유명인, 그리고 여러 스포츠계 인사 등을 초청했다.

일종의 전야제였던 이 디너쇼는 GAISF 서울 총회를 기념하는 것은 물론, 세계 당구계가 하나되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95년 10월 23일 시작된 GAISF 서울 총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당시 이홍구 국무총리와 IOC 사마란치 위원장, GAISF 김운용 회장 등의 내빈이 참석했다. 사진제공=김운용닷컴

10월 26일 총회 마지막 날 '만장일치 통과'
샌드맨 "당구는 이제 스포츠로 인정받아"

95년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제29차 GAISF 총회가 개최되었다.

아시아 최초로 개최되는 GAISF 서울 총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개회식에는 당시 이홍구 국무총리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총회에는 세계 각국 450여 명의 스포츠 관계자가 자리했고, 당구도 캐롬, 포켓볼, 스누커 등 당구 세부종목 단체의 관계자들과 WCBS 임원들이 총회에 참석했다.

1년 전 유보되었던 WCBS의 임시 가맹 안건은 총회 마지막 날 다루어졌다.

이날 각 경기 연맹 및 스포츠 기구 대표들은 오전 9시부터 11시 45분까지 워커힐 그랜드볼룸에서 전체 총회를 열고 집행위원회에서 상정한 WCBS 임시 가맹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CBS는 GAISF의 88번째 가맹단체가 되었고, 다음 해 GAISF 본부가 위치한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정가맹 단체가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당구인들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서울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모든 당구인들은 환호하며 기뻐했다.

샌드맨 회장은 <빌리어즈>와 인터뷰에서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 전 세계 당구계가 하나된 모습으로 가장 어려운 첫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이제 당구는 스포츠로 세계 무대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당구인 여러분의 동참에도 감사한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구 종목 경기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가 스포츠가 된 '가장 역사적인 날'
GAISF 가맹단체되면서 대한체육회 문 열려

이날은 당구가 국제 스포츠계에서 정식 스포츠로 인정 받은 가장 역사적인 날이다.

당구를 총괄하는 WCBS가 GAISF의 88번째 가맹단체로 승인되면서 IOC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게 되었고, 아울러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게임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지난 92년 WCBS가 창설된 후에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당구의 스포츠화가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GAISF 가맹단체 승인을 한국에서 열린 서울 총회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세계 당구계로 발을 넓히기 시작한 한국 당구가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세계 당구인들과 힘을 합쳐 결실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한국 당구의 국제적인 위치 또한 크게 부상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참여한 여러 한국 당구인들은 한국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한 준비도 시작하게 되었다. GAISF 가맹단체가 되면서 한국 당구의 대한체육회 가맹을 위한 문도 자연스럽게 열렸기 때문이다.

95년 GAISF 가맹단체 승인은 세계 당구는 물론, 한국 당구에도 이른바 '당구의 봄'을 이룬 효시가 된 셈이다.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당구의 올림픽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WCBS 요르겐 샌드맨 회장에게 보낸 공문 형식의 서신. 빌리어즈 자료사진

IOC 집행위원회, 96년 7월에 WCBS를 정식 승인
사마란치 "당구, 올림픽 가족된 것 진심으로 환영"

WCBS가 GAISF 서울 총회에서 88번째 경기 단체로 가맹된 이후 9개월 만인 96년 7월에 IOC가 당구를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 대회 기간 중에 열린 '제105차 국제올림픽 집행위원회'에서 IOC는 WCBS를 정식 승인된 연맹체로 인준했다. 

당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가뇨 회장 사후 WCBS 수장이 된 샌드맨 회장에게 이 사실을 공문으로 보냈고, 해당 공문은 세계 당구 관련 단체와 언론사에 우편과 팩스 등으로 보내졌다. 한국에도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와 <빌리어즈>에 공문이 전달되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서명이 담긴 공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틀란타에서 열린 제105차 국제올림픽 회의에서 올림픽 헌장 제29조에 따라 세계스포츠당구연맹(WCBS)을 IOC 집행위원회가 정식 승인한 연맹으로 인준했다는 것을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노력을 치하하며, 올림픽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IOC 정가맹으로 국제종합경기대회 자격 얻어
당구, 올림픽 정식종목 두 번이나 최종 후보로 거론

95년 10월 GAISF 가맹단체 승인, 96년 7월 IOC 정가맹 등을 이루어내면서 당구는 명실상부한 스포츠로 인정받았고, 당구선수들은 당당하게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당구는 98 방콕 아시안게임 처음 정식종목에 채택되어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처음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2001년 아키타 월드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현재까지도 월드게임에서 당구선수들의 활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염원이었던 올림픽 정식종목 선정 과정에서는 세부종목 단체가 갈라지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서 최종 관문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올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되는 것이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구는 2000년대에 두 번이나 올림픽 정식종목 최종 후보에 올라갔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당구인들의 노력과 역량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5년 10월 26일 가장 역사적인 날로부터 시작된 '당구의 봄'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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