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30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김기제 발행인이 집필하며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올림픽 종목 채택을 위해 결성된 당구의 단일화된 국제경기단체 WCBS 세계스포츠당구연맹이 92년 1월 25일 스위스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한국은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양태주 회장이 WCBS 창립총회에 참석했다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세계 당구계는 80년대 초부터 올림픽 정식종목 입성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당구는 당시 캐롬, 포켓볼, 스누커 등 세부 종목을 총괄하는 단일화된 국제경기단체가 없었다.

59년 창설된 캐롬 종목의 세계캐롬연맹(UMB)과 스누커 프로 단체인 세계프로스누커협회(WPBSA, 68년 창설)가 세계 당구계를 끌고 가는 두 축이었지만, 그때까지 '당구'의 단일화된 국제경기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등에 가맹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IOC 헌장에는 "(종목을 총괄하는) 유일한 연맹체만이 올림픽 참가 종목 신청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당구는 92년 1월 25일에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단일화된 연맹체인 '세계스포츠당구연맹(World Confederation of Billiards Sports; WCBS)'을 결성하고 IOC 가맹을 시도했다. 

IOC 입성을 위한 WCBS의 창립을 주도한 것은 당시 UMB 회장이었던 앙드레 가뇨(스위스∙96년 사망)였다. 

85년 UMB 회장에 선출되었던 가뇨는 그때부터 올림픽 입성 준비를 했지만, WPBSA를 설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87년 미국과 유럽의 주도로 세계포켓볼협회(WPA)가 창설되면서 탄력을 받아 90년 초반에 캐롬과 포켓볼 두 종목이 뭉치게 되었고, 이후 스누커까지 가세하면서 90년 8월 30일 영국 브리스톨 회의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WCBS 창립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도 90년대 초반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가 이러한 세계 당구계의 흐름에 동참했다. 

당구협회는 76년 UMB에 가맹하면서 한국 당구 단체 최초로 국제기구에 진출했다. 

한국은 당구선수 및 당구인들 대다수가 당구클럽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구클럽 경영주들을 회원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가 선수국을 두고 국제경기단체와의 창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고바야시 노부아키나 고모리 준이치 등 일본 3쿠션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당구 황제' 레이몽 클루망(벨기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서 일본당구협회(NBA)가 한국보다 빠르게 UMB와 직접적인 접촉을 했다. 

한국은 이런 일본으로부터 대부분의 국제무대 관련 소식을 전달받고 있었다. 

일본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한국 당구의 전반적인 국제무대 진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당구선수들이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계속 시도를 했지만,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하면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등을 독식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본은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지역 선발전을 자신들이 유리하게 매번 일본에서 개최하여 한국 선수들은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WCBS 세계스포츠당구연맹 초대 회장 앙드레 가뇨와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양태주 회장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시 당구협회 국제무대 나설 조직력이나 재정 미비
양태주 회장, 92년 WCBS 창립총회 정식 초청받아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당구협회의 재정 상태와 직접 관계있었다. 

스포츠 단체가 국제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원의 의무인 회비를 납부하고, 총회를 비롯한 각종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은 회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회비 납부나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조직력과 재정이 미비한 상태였다.

당구협회는 UMB 가맹 후 12년이 지난 88년이 되어서야 중앙회 부회장인 손영옥 부산지회장이 수백만원의 경비를 지원해 당시 회장이었던 고 임영렬 씨가 남미 에콰도르에서 열린 UMB 총회에 처음 참석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태였던 당구협회는 정상적인 회원 자격에 준한 사무적인 통보를 받지 못하고 그때그때 일본의 전언에만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UMB 회의에도 '88 에콰도르 총회' 이후 92년 WCBS 창립총회까지 아무도 참석하지 못하면서 국제무대 소식은 여전히 일본을 통해 당구협회에 전달되었다. 

90년 11월경 당구협회 남성우 회장은 <빌리어즈(월간 당구)>와 인터뷰에서 "현재 세계 각국 당구 관계자들이 올림픽 종목 채택을 위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구 세부종목 단체들이 하나로 통합된 연맹체인 WCBS 결성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을 통해) 얼마 전 당구협회도 이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내년(91년)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각국 및 각 종목 대표자 회의를 열고, 올림픽 채택 추진을 결의하여 IOC와 GAISF에 '96 애틀란타 올림픽' 시범종목 채택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91년 12월에 열린 '91 서울 3쿠션 월드컵'에서는 공식적인 WCBS 창립 일정이 다시 일본을 통해 당구협회에 전달되었다.

당시 양태주 당구협회 새 회장은 '91 서울 3쿠션 월드컵'에 참석한 일본당구협회(NBA) 니시오 가쿠 전무이사(현 회장)로부터 당구 종목을 총괄하는 국제경기단체 'WCBS 세계스포츠당구연맹' 창설 소식을 전달받았다.

니시오는 당시 UMB 본부가 있던 스위스에서 92년 1월 25일에 WCBS가 창립총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양 회장에게 직접 알려주었다. 

양 회장은 세계 각국의 당구인들이 당구를 올림픽 종목에 채택시키기 위한 단일 연맹체 WCBS를 창설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역사적인 이 자리에 한국의 당구인을 대표해서 꼭 참석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얼마 후 참석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끝낸 양 회장은 WCBS의 정식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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