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 대회 최초이자 세계대회 네 번째의 퍼펙트게임

1990년도의 스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는 10월 11일부터 4일간 개최되었다.
 
이 해에는 한국에서 나용훈이 유일하게 자비로 참가하였으며, 미국에서 얼마 전 1990년 내셔널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상천이 다시 출전하여 나용훈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다.
 
1990년 스파 세계당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상천과 나용훈이 나란히 대회장의 대진표 앞에 섰다.

이상천은 올해로 네 번째 스파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 대회에 관한 정보와 그곳 지리며, 호텔을 잡는 일 등 숙식에 관한 제반 문제에 대해 이상천이 큰 의지가 되었다.

이상천은 이즈음에 3년간의 미국 생활로 영어에 능숙하여 각종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각국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으며, 레이몽 클루망을 비롯한 저명 선수들과 당구 경기를 통해 친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스파 대회에 여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일본의 선수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선수들이 공동으로 항공편을 이용하고 이동하며 호텔을 잡고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해에도 일본에서는 요시하라, 히로시, 스미요시, 가토, 시마다, 이타이, 가이, 다나카 등 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우승이 유력한 5위 안에 손꼽히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이 해 9월에 비로소 대한당구경기인협회라는 선수단체가 처음으로 조직이 될 정도로 세계의 당구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므로, 당구선수들이 국가나 단체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세계를 향해 웅지를 펼치고 싶은 이상천과 같은 선수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나용훈과 같은 선수는 자비 출전을 하였다. 
 
나용훈은 이 해의 스파 대회에 출전한 것만으로 소중한 경험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상천은 미국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에 ‘챔피언’으로 불리며 미국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갖고 활동함으로써 세계적으로는 ‘상리’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나 스파대회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천은 이번 대회에서 본선 32강에 진출하여 16강 진출을 위한 경기를 벌였다. 상대는 벨기에의 유망주 스텔라였다. 15점 5전3선승제 경기에서 1세트를 먼저 이긴 이상천이 2세트에서 14:14의 어려운 경기에서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3세트를 맞이하였다.
 
이상천은 경기가 시작되자 2세트의 마지막에 극적으로 승리한 뒤 자신감을 얻어 스텔라가 채 큐도 잡아볼 사이도 없이 15점을 단번에 치는 퍼펙트게임을 해냈다.
 
이상천이 한 점, 한 점 실수없이 10점 이상을 치자 장내는 옆 테이블의 경기소리 외에는 쥐죽은 듯이 정적이 이어지며 이상천의 현란한 큐 놀림에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상천이 15점째의 마지막 시스템을 멋지게 완성하자 이 광경을 2층 관람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이몽 클루망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뒤이어 모든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이상천에게 환호를 보냈다.
 
박수 소리가 2분여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되자 다른 7개의 당구대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선수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 전체 게임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나용훈은 전한다. 
 
이상천의 15점 단번치기 퍼펙트게임의 이 대기록은 스파 대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세계대회에서는 네 번째 기록이다. 이 스파 대회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이상천은 다시 한 번 세계 3쿠션 당구계에 주목을 받았고, 그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다.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상천은 이 해의 스파 대회에서는 우승을 놓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0년 12월 14~16일 도쿄에서 개최된 이 해의 여섯 번째 마지막 시리즈인 도쿄 월드컵의 시상식.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에 이상천이 보인다.
이 대회의 우승은 오스트리아의 필과 일본의 아라이 다츠오가 차지하여 12월 14일~16일 도쿄에서 개최되는 1990년의 마지막 여섯 번째 월드컵에 참가하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이상천도 BWA에서 공식 추천한 와일드카드로 도쿄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이상천은 도쿄 월드컵에서 직전 스페인 파르마 월드컵에 이어 당당히 4위를 차지하며 이상천 전성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도쿄 월드컵 1위는 토브욘 블롬달(스웨덴: 애버리지 1.70), 준우승 루도 딜리스(프랑스), 3위 레이몽 클루망(벨기에: 1.60)이 올랐고, 4위 이상천의 애버리지는 1.50이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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