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 세계3쿠션대회는 이상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한국이 낳은 당구천재 이상천은 1979년 7월 전국당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81년, 1982년, 1984년, 1985년 전국대회를 석권하였다.

이제 그가 꿈꾸는 목표는 한국과 아시아가 아닌 세계 무대로 나가 세계 당구를 제패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의 한국 당구가 일본에 예속되어 있다시피 하여 일본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무대에 진출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으므로, 이 길을 벗어나서 세계로 나가는 직행 코스는 세계 당구 기구가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1987년 10월, 이상천은 벨기에의 스파(SPA)에서 매년 UMB(세계당구연맹)와 BWA(세계월드컵협회)가 공동주최하는 세계월드컵대회에 앞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자비로 참가하게 된다. 
 
스파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도시이다. 매년 세계의 6개국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는 세계월드컵대회에는 BWA에 소속되어 있는 세계 톱랭커 선수들이 출전하지만, 이 스파 세계선수권대회를 무명의 3쿠션 선수의 선발 창구로 삼아 우승자 2명에게 월드컵 출전권을 부여하는 한편 월드컵의 정규 멤버로 가입된다. 
 
세계의 무명 3쿠션 낭인들에게는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출전금은 당시 한화로 환산해 10만원 정도였다. 4일간 개최되었으며 개최 도시명을 따서 ‘스파 세계선수권대회’라 불렀다. 
 
이상천의 경기하는 모습
이상천은 1987년의 스파 세계당구선수권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대회가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세계의 당구 흐름을 알게 된 그에게는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는 그의 꿈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다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된 이상천에게는 그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한국보다는 새로운 신천지가 필요했다. 
 
미국에 정착한 이상천은 상리(Sang Lee)라는 이름과 함께 미국 당구 프로에 입문하여 매년 스파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름을 알리며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세계 당구계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세계의 베테랑 선수들과 자주 벌이는 레이몽 클루망과의 400점 대결의 기회를 얻은 이상천은 클루망이 놀랄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 경기는 매일 80점씩 5일간 400점을 치는 국제식 3쿠션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400대 384로 이상천이 패하기는 했지만 전성시대의 클루망에게 도전한 다른 어떤 선수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어 클루망이 이상천의 대성을 예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천은 미국에 건너간 3년 만인 1990년에는 미국 내셔널챔피언십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해의 우승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12년 연속 미국 내셔널챔피언십 우승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2편에 계속>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