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이유주(35)는 꾸준했다.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 원년 멤버로 첫 시즌에 4강, 두 번째 시즌에도 4강에 한 차례씩 올라갔다. 결승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아주 치열한 LPBA 투어에서 나름대로 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아 온 선수다.

무엇보다도 월드챔피언십에서의 활약이 인상 깊었다. 이유주는 세 번 열린 월드챔피언십에 모두 출전했다. 첫 대회에서는 다승왕 임정숙을 세트스코어 2-1로 이겼고, 두 번째와 이번 세 번째 월드챔피언십은 16강 토너먼트에 올라왔다.

특히, 이번에는 16강에서 김보미(NH농협카드)를 3-1로 누르며 8강에 올라 화제가 됐다. 8강전 1세트 첫 타석에서는 한 큐에 10점을 득점하며 퍼펙트큐 달성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비록,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절친’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와 만난 8강에서 0-3으로 패했지만, 인생 경기 한 방으로 이틀에 걸쳐 당구 팬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팬들의 관심은 선수에게 한걸음 전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이유주가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꾸준하고 성실했던 이유주가 더 높이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이번 월드챔피언십을 8강에서 마무리한 이유주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시즌 경기를 모두 마친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이번 시즌 경기를 모두 마친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어제랑 오늘이랑 컨디션이 많이 달라 보였다. 이유가 있나?

일단 테이블 상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테이블도, 몸컨디션도 어제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어제 그 테이블에서 하이런 10점을 치고 김보미를 꺾었다.

어제보다 오늘 테이블이 살짝 길게 느껴져서 그거 잡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김보미와의 16강전은 이유주의 인생 경기 같았다.

잘 친 경기 중 하나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하이런 10점을 치고 1점을 놓쳐서 퍼펙트큐를 달성하지 못해 좀 아쉽기도 하다.

 

월드챔피언십에서는 퍼펙트큐 상금이 두 배다. 특히 LPBA 첫 퍼펙트큐를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놓쳐서 너무 아깝다.

그게 생각보다 빨리 잊혀졌다. 경기 중에는 오히려 금방 잊고 집중할 수 있어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숙소에 들어가서 자려고 하니까 그때 생각이 나더라. 여기저기서 아깝다고 연락도 많이 오고. 덕분에 잠을 좀 설쳤다. (웃음)

 

마지막 1점은 왜 놓쳤나?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는 포지션이 뒤돌려치기인데, 그 마지막 1점이 뒤돌려치기였다. 그런데 그걸 못 쳤다. 마지막 1점을 치는데 심장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제대로 샷을 구사하지 못했다.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하이런 10점을 치고 경기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비록 마지막 1점은 못 쳤지만, 김보미 선수가 흔들리는 게 보였고 나는 자신감이 좀 더 생겼다. 그래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의 최고 하이런은 몇 점인가?

서바이벌에서 12점을 기록한 적이 있다.

 

LBPA 투어에서 그동안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 부족한 느낌도 있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한 방이 없다. 이게 심장 때문인 것 같다. 자신감을 갖고 씩씩하게 쳐야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못 해내는 것. 그런 부분이 좀 아쉽다. 아무래도 멘탈 훈련을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다.

 

주로 어떤 연습을 하나?

지난 경기 복기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다. 시합 때 놓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김보미와의 16강전에서의 모습을 스롱 피아비와의 8강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절친인 스롱이 더 부담스러웠나?

아니다. 오히려 스롱이 나를 만나면 부담스러울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친하다보니까. 나는 오히려 스롱이나 기존의 톱 랭커 선수 누가 됐든 상관이 없다. 그냥 내 경기를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상대가 스롱이라는 사실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경기를 열심히 하자. 어제 그 기분 살려서 최대한 팔 감각을 끌어올려서 치자’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했는데, 뭐가 잘 안되더라.

 

당구는 언제부터 쳤나?

21살 때, 대학교 다닐 때 처음 당구를 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깐 큐를 놓기도 했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인생을 되돌아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 당구를 안 하면. 그래서 2016년 11월에 열린 양구대회에서 선수로 등록했다.

 

월드챔피언십에서 목표는 어디였나?

이번 대회까지 세 번 모두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했는데, 월드챔피언십이라고 특별한 부담감은 없었다. 항상 첫 경기가 가장 힘들다. 그래도 이번에는 수월하게 잘 치러서 스타트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그전 마지막 경기까지 승패를 따져서 어렵게 16강에 올라갔기 때문에 오히려 16강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목표는 따로 정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방송 경기에 들어가면 그 경기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각오는 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내 경기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16강에서 그걸 한 것 같아서 나름 목표는 이룬 것 같다.

 

8강전 후 스롱 피아비와 환하게 웃는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8강전 후 스롱 피아비와 환하게 웃는 이유주. 사진=김민영 기자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가 있나?

프레데릭 쿠드롱을 굉장히 좋아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대 선수가 누구든지 간에 평소 하던 플레이를 편하게 하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럽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당구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말리지는 않았나?

아버지가 당구를 너무 좋아하셔서 그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PBA 출범 후에는 모든 경기를 다 챙겨 보시고 지면 진 대로, 이기면 이긴 대로 고생했다고 매번 연락하신다.

 

자신의 경기 중 최고의 경기와 최악의 경기를 각각 뽑자면?

최악의 경기는 메디힐 챔피언십 때 그 대회 우승자인 이미래 선수를 8강에서 만났다. 그때 10:1로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5점, 5점을 맞고 졌다. 그 경기가 무척 충격적이었다. KBF 때 선수로 등록하고 나서 유독 이미래와 많이 만났다. 그때는 시스템도 모르고 당구가 좋아서 무작정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래 선수는 하나하나 재면서 굉장히 신중하게 치더라. 그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시스템 공부도 하고 있다.

최고의 경기는 이번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 이미래, 전애린, 김상아와 제가 서바이벌을 쳤는데, 역대급 경기를 했다. 3명의 선수가 애버리지 2.6, 2.8을 쳤다.

 

절친으로 옆에서 본 스롱 피아비는 어떤 선수인가?

연습량이 굉장히 많은 선수다. 그리고 뒷공이 없다. 이번 8강전에서도 ‘창피 안 당하게 한 세트만 줘라. 한 세트만 줘라’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마지막에 내가 이길 뻔한 경기를 또 잡더라. (웃음)

 

월드챔피언십을 끝으로 이번 시즌이 모두 마무리된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4월에 스롱, 이미래 선수랑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갈 예정이다.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일단 가장 가까이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이재석 선수와 다산 캐롬파크 가족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언젠가는 더 높이 올라가서 이유주라는 이름을 더 알려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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