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당구명장’ 권오철, 그리고 반세기의 한밭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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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당구명장’ 권오철, 그리고 반세기의 한밭큐
  • 김도하 기자
  • 승인 2022.09.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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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밭 권오철 대표이사.  사진=(주)한밭 제공
대한민국 '당구명장 1호' 칭호를 받은 (주)한밭 권오철 대표이사. 사진=(주)한밭 제공

최근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주)한밭 본사에서 '대한민국 당구명장 인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밭의 권오철 대표이사는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박보환 회장에게 '당구명장 1호' 인증서를 받았다.

권 대표가 당구 큐를 만들기 시작한 지 50년이 막 지난 시점에 한국 최초로 '당구명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 당구 큐를 개발하고 만드는 데 한평생을 바친 그가 남긴 업적을 생각하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50주년이 되는 해에 국내 유일한 최초의 당구명장으로 공인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한국을 대표하는 당구 기업으로 한밭을 키운 권 대표는 단순히 기업만 성장시킨 데 그치지 않았다. 한밭과 한국 당구를 동반성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력이 부족했던 당구계가 당구 발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정을 흔쾌히 지원했고, 이를 바탕으로 당구 행정가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며 중요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당구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근 몇몇 경쟁 업체들이 트집을 잡아서 억울한 일도 있었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랬던 것처럼 권 대표와 한밭은 한국 당구 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결코 변함이 없다.


"한밭큐 없어요? 한밭큐 주세요"

청년 시절 권오철은 1972년 7월 16일 대전 판암동에 1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얻어서 '국제카리공업사'를 창업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일찌감치 야구 배트를 만드는 일을 했던 권 대표는 1968년경에 당구 큐를 만드는 사람의 일을 돕다가 당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기계 한 대를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당구 큐 개발을 시작한 그는 15년의 세월 동안 연구개발을 거쳐 국내 최고의 당구 큐를 제조하게 되었다.

포켓볼 큐와 캐롬 큐 구분조차 못 했던 열악했던 당구 시장이 한밭의 성장과 함께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권 대표는 1987년에 (주)한밭으로 법인 전환을 한 이후 해외에 유통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밭의 브랜드로 제작된 큐는 특별소비세 문제로 국내에 시판되지 못해 전량 해외 수출되었다. 1993년이 돼서야 국내에 특별소비세 품목에서 당구용품이 제외되면서 ‘한밭큐’라는 브랜드로 국내에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권 대표는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벌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의 당구용품은 크게 발전했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해야 했던 한밭큐는 외국의 오랜 경력을 가진 회사들을 따라잡기 위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당시 국내에는 당구장용 하우스큐 외에는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1979년에 처음 개인큐를 시작한 권 대표는 670세트의 개인큐를 완성했고, 이것은 한밭큐가 외국에서 인정받는 제품으로 성공하게 된 원천이 되었다.

이후 외국의 기술을 따라잡은 한밭큐가 만든 하우스큐는 국내 시장을 자연스럽게 섭렵할 수 있었다. 90년대에 당구장 손님들은 주인에게 "한밭큐 없어요? 한밭큐 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한밭큐가 다른 큐에 비해 월등하게 성능이 우수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사진=(주)한밭 제공
50년 전 청년시절의 권오철 대표(오른쪽)와 현재의 모습.  사진=(주)한밭 제공

세계를 제패한 권오철 대표의 '플러스 파이브' 공법

2000년대 들어서 한밭큐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플러스파이브(Plus-Five)'가 바로 그것. 2003년에 완성되어 국내를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 특허를 따낸 독보적인 한밭의 공법이다. 나무는 환경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기 때문에 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권 대표가 창안한 방법은 나무 가운데를 십자가 모양으로 자르고 나머지 나무를 결의 반대로 돌려서 붙이는 것이다.

가운데 '플러스(+)' 모양에 결의 반대로 나무가 붙여지기 때문에 변형되는 힘이 안쪽으로 모이게 되면서 휘는 것을 방지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전체 면에 골고루 팽창이 이루어져 면에 따라 반발력이 달라지는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야구 배트를 시작으로 나무와 인연을 맺은 권 대표는 "야구 배트는 나무의 방향에 따라 반발력이 다르기 때문에 반발력이 좋은 방향으로 배트를 맞혀야 공이 멀리 날아가게 된다. 정교하게 공을 쳐야 하는 당구는 공을 맞히는 나무 방향에 따라 힘 조절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팔에서 큐로 온전하게 감각이 전달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당구 큐의 품질은 바로 그 감각 전달의 오차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라고 설명했다. 

권 대표가 개발한 플러스파이브 공법은 당구 큐에 변형이 오는 문제와 감각 전달의 오차를 줄여서 플레이어의 실력을 안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큐를 만들어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2003년 처음 플러스파이브로 제작된 큐를 사용한 선수는 '당구전설' 고 이상천이다. 당시 이상천은 한밭큐를 들고서 세계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 출전해 23연승을 달성했다. 이상천은 "한국의 당구용품 제조 기술이 얼마나 우수한지 증명되지 않았나. 나는 순수 한국의 기술에 의해 연구, 개발, 제조한 한밭큐로 23연승을 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사진=(주)한밭 제공
(왼쪽) 플러스파이브 공법의 원리. (오른쪽) 5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큐.  사진=(주)한밭 제공

이상천 이후에 한밭큐로 세계 정상에 선 선수는 고 김경률과 김행직, 김태관 등이 있다. 김경률은 2008년 수원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 당구월드컵 결승에서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를 꺾고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을 기록했다.

김행직은 2010년과 2011년, 2012년에 3년 연속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할 당시에 한밭큐를 들었다. 또한, 2015년 이집트 룩소르에서 당구월드컵 결승에 올랐던 김행직은 2017년 포르토와 청주에서 한국 최초로 당구월드컵 2연승을 거둘 당시에 한밭큐를 들고 금자탑을 세웠다.

김행직의 동생 김태관도 2015년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할 때 한밭큐를 들었다. 주니어 선수권에서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한밭큐가 정상을 휩쓸었다. 2013년 우승자 호세 가르시아(콜롬비아)와 2014년 프랑스의 아드리안 타슈아 역시 한밭큐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왼쪽) 권오철 대표와 권혁준 팀장 부자. (오른쪽) 한밭큐 공장 전경.  사진=(주)한밭 제공
(왼쪽) 권오철 대표와 권혁준 팀장 부자. (오른쪽) 한밭큐 공장 전경. 사진=(주)한밭 제공

'반세기' 한밭큐의 경쟁력은 한국 당구 미래의 자산

좋은 제품은 좋은 재료에서 기인한다. 나무로 만들어지는 당구 큐는 당연히 좋은 나무 수급이 가능해야 좋은 큐를 만들 수 있다. 과거부터 한국은 좋은 목재를 수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목재 입찰 현장에 가보면 한국은 대기업조차 1, 2등급 목재는 입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 수준의 고급 목재는 쓸데가 없기 때문. 비용의 효율성 문제도 있어서 설령 가져온다고 해도 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 문제다. 또한, 목재는 보관이 쉽지 않고, 오래도록 적정한 환경에서 숙성 과정이 필요해서 선뜻 값비싼 목재를 구해 오는 것도 어렵다.

권 대표는 지난 2010년에 본사 공장을 증축해 현재 자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목재 보관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좋은 목재를 수급해 상당 기간 보관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현재 제작되는 한밭큐는 이렇게 보관된 좋은 재료로 제작되는 제품이다.

"큐의 주재료인 나무는 자연적인 상품이다. 대부분의 목재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특징을 갖는다. 목재를 이해하고 가공,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몇 년 만에 갖출 수 없는 부분이다.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데이터가 나오고, 그런 투자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시 십수 년의 시간을 거쳐서 가공해야 좋은 목재로 큐를 제작할 수 있다”라고 권 대표는 설명했다.

앞으로의 50년, 한밭큐에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한밭은 무의 환경이나 다름없었던 한국 당구계에서 지난 50년 동안 미래를 내다본 연구와 투자를 바탕으로 외국 유수의 기업과 경쟁해 그들 이상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여러 차례 세계 정상에 오르며 당당하게 한국 당구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것은 장인 정신으로 50년 외길을 걸어온 권 대표 개인의 성과임과 동시에 한국 당구계 전체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반세기의 역사를 통해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한밭과 한국 당구의 경쟁력은 세계 속에서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1972년부터 2022년까지 반세기 동안 '선구자' 권오철 대표와 (주)한밭이 걸어온 길에서 축적된 경쟁력은 한국 당구 미래 50년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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