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130년史]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30년간 19회의 전국당구대회 개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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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130년史]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30년간 19회의 전국당구대회 개최②
  • 김기제 발행인
  • 승인 2021.11.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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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당구장 허가 개방, 전자오락실 난립 등 당구계 시름... 젊은 연령층 확보 위해 당구대회 개최

1990년 韓 당구 역사상 최초로 체육부장관 축사... 오랜 유기종목 종지부 찍고 마침내 스포츠로 격상 실감

(사)대한당구협회, 1962년 1회 전국당구선수권 시작해 1993년 1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장구한 전통 끝나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 1966년 4월에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출범했으나 제4회 대회는 1969년 6월에 개최

환경위생협회 산하의 유기분과위원회가 1966년 4월에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보건사회부에 등록된다. 그러나 초대와 제2대 유정선 회장 임기 중과 제3대 유정훈 회장 때에는 전국당구대회를 열지 못하다가 제4대 박순락 회장이 1969년 5월에 취임한 다음 달에 비로소 제4회 전국당구경기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 지난 연재에 이어서 - 

장충체육관.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1회 회장기쟁탈 전국당구선수권대회 및 제18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된 서울 장충체육관.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12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박성오)

1978년 2월 19일 서울시 신촌의 청운당구장에서 제12회 전국당구대회가 4구 종목으로 개최되었는데, 일반부 외에 대학생부가 처음 열렸다. 4구 1점제의 500점 경기에서는 백정기가 우승을 차지했고, 대학생부(300점)에서는 현영길(한양대)이 우승했다. 

• 제13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박성오)

1979년 3월 11~12일 서울 허리우드당구장에서 제13회 전국당구대회가 4구 종목으로 개최되었다. 각 조의 우승은 OB전(보유 점수)에서는 조성철, 챔피언조(1000점) 김철민, A조(500점) 장성출, 단체부(100점) 중구지부팀 등이 각각 차지했다. 

• 제16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박성오)

1980년대에 들어와 당구장 허가가 개방됨에 따라 업소가 난립한 데다가 새로운 고객 유치의 경쟁 대상으로 전자오락실이 급속히 보급 확대됨으로써 당구장 영업이 어려워지며 당구계는 시름을 앓게 되었다. 협회에서는 젊은 연령층의 당구 인구를 확보하고 당구를 확산하는데는 국민들의 주목을 끌 당구대회를 개최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전국 시도 지회의 선발전을 통해 제16회 전국당구대회를 개최했다. 

1984년 1월 17일, 18일 2일간 서울시 서대문구의 대광당구장에서 일반인 81명, 대학생 11명, 여성 6명 등 98명이 참가하는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고점자와 선수 위주의 대회 면모를 일신시켰다. 4구 경기 1개 종목만으로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 결과는, A조(1000점 이상) 1위는 김효섭(24세, 서울시 중구 신당동), B조(300~1000점) 1위는 곽영수(서울시 영등포구), 대학생조(300점 이상) 1위 박희정(충남대 4년), 2위 김태욱(광주 조선대 4년), 여성조(150점 이상) 1위는 남희순(22세,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이 차지했다. 조별 시상으로 일반인조와 여성조는 1위 14인치 컬러TV, 2위 자전거, 3위 카세트 레코더가 수여되었고, 대학생조는 장학금으로 1위 20만원, 2위 10만원, 3위 5만원 등의 상금이 주어졌다. 
 

• 제17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대회장 박성오)

제16회 대회가 열린 지 4년 만에 제17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88년 1월 23~24일 이틀간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전국 규모대회로 열렸고, 전국당구용품생산판매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찬하며 동참했다. 

또한, 이 대회는 제44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아시아대표결정전, 88 서울세계그랑프리3쿠션선수권대회, 세계예술구대회 및 일본예술구대회, 아시아포켓9볼오픈선수권대회의 출전 국가대표 선발대회를 겸해서 열렸다. 전국 각 지역에서 참가한 100여 명의 선수가 본 대회가 열리기 전 3일간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의 반도당구회관에서 국내식 3쿠션 16강, 국제식 3쿠션 16강, 포켓 9볼 16강, 예술구 6강을 미리 선발했다. 

1988년 1월 23일 오후 2시에 거행된 개회식은 화려하고 큰 규모로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경기 방식은 예술구를 제외한 모든 경기는 토너먼트로 진행되어 우승자를 가렸다. 국내식 3쿠션은 중대가 사용되었고 국제식 3쿠션은 대대가 사용되었으나, 모두 15점 3세트 선승제 방식으로 진행했다. 포켓 9볼은 16강전과 8강전은 5세트, 4강전과 3・4위전은 8세트, 결승전은 10세트 선승제로 치러졌다. 예술구는 대대가 사용되었으며 출전 종목의 지정점수제로 순위를 결정했다. 각 종목의 입상자와 시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내식 3쿠션은 우승 최문갑, 준우승 오종윤, 3위 조수형, 4위 이용희가 차지했고, 1위부터 3위까지는 트로피・상금・훈련보조금, 4위는 장려상이 수여되었다. 국제식 3쿠션은 우승 박병문, 준우승 장성출, 3위 백정기가 차지해 이 선수들에게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아시아대표결정전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1위부터 3위까지는 트로피・상금・훈련보조금이 지급되었고, 4위 안지수는 장려상이 주어졌다. 

포켓 9볼은 우승 배동홍, 준우승 민평기, 3위 김상윤으로 결정되어 이 선수들은 트로피・상금・훈련보조금이 지급되었다. 1, 2, 3위는 1월 30일부터 개최되는 아시아포켓9볼오픈대회 출전권이 주어졌고, 4위 정동희는 장려상이 수여되었다. 예술구에서는 1위 김철민(161점), 2위 김상윤(152점), 3위 이흥식(150점)으로 순위가 가려져 1, 2위는 이해 7월에 열린 일본 예술구대회 출전권이 주어졌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18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및 제1회 회장기쟁탈 전국당구선수권대회(대회장 남성우)

제1회 회장기쟁탈 전국당구선수권대회 및 제18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가 1990년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1989년 7월 1일에 '체육 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당구장이 체육시설이 되었고, 이에 따라 관할이 보건사회부에서 체육부로 이관된 데다가 대한당구협회 회장에 경기인 계열인 남성우 회장이 선출되면서 대한당구경기인협회(회장 김영재)가 주관하고 당구용품생산유통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범당구계의 행사로 치러졌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는 당구협회 37개 지회에서 선발된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아마추어 종목과 선수급이 참가하는 경기가 모두 치러짐으로써 최초의 종합당구대회의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각 협회의 뜨거운 응원전이 대회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는 한국 당구 역사상 최초로 감독 기관인 체육부장관의 축사를 김성배 체육진흥국장이 대독함으로써 당구가 오랜 유기종목의 비천한 처지에서 스포츠로 격상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회장에는 국내식 중대 19대, 국제식 대대 4대, 포켓볼 2대 등 모두 25대의 당구대가 생산업체의 지원으로 설치되었다. 

경기 종목은 각 지회의 선발을 거친 전국 아마추어당구대회가 150점조, 300점조, 500점조로 진행되었고, 지회 대항 당구대회가 아마추어 대표전(국내식 4구 경기)과 선수급 대표전(국제식 3쿠션 경기)으로 치러졌다. 제18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는 국내식 3쿠션, 국제식 3쿠션(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출전 국가대표 선발전 겸), 포켓 9볼(세계 및 아시아대회 출전 국가대표 선발전 겸) 경기로 실시되었다. 또한, 예술구 경기와 연예인친선당구대회도 진행되었다. 

대회 기간 중에 이 대회를 보다 뜻있게 하기 위해 일본 여성 포켓볼 선수인 사다 유키코와 가지타니 아키미의 시범경기가 있었고, 대전 출신의 초등학교 6학년 당구영재 김영삼 군의 묘기시범이 있었는데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의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종목별 경기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아마추어 150점조 : 4구 개인 지점(애버리지)을 1점제・최종 3쿠션 끝내기 경기방식으로 진행. 총 70명이 토너먼트로 경기를 벌인 결과 우승 최해길(울산), 준우승 차성근(서울시 영등포구), 3위 배성호(대전). 

・ 아마추어 300점조 : 총 64명이 토너먼트로 경기를 벌여 우승 김종희(서울시 은평구), 준우승 강현주(서울시 영등포구), 3위 김홍식(충남).

・ 아마추어 500점조 : 아마추어 당구의 최정상이라 할 수 있는 이 종목에는 50명이 출전했다. 우승 정유진(서울시 강동구), 준우승 김용석(서울시 강서구), 3위 박승기(충남). 

・ 국내식 3쿠션 : 15점 3전 2선승제로 진행된 경기에서 우승 김종구(부산), 준우승 조재형(서울), 3위 이용희(인천)가 차지했다. 

・ 국제식 3쿠션 : 15점 3전 2선승제로 경기를 치러 우승 장성출(서울), 준우승 홍기성, 3위 서광열. 

・ 포켓 9볼 : 16강전과 8강전은 9전 5선승제,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13점 7선승제로 진행했다. 우승 정건표(광주), 준우승 김봉세(대전), 3위 한경용(서울). 

・ 예술구 : 예선을 거쳐 8명이 결선에 진출하여 지정 종목 4시스템, 자유종목 3시스템을 1차 시기로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 결과, 남도열(경기)과 길형주(인천)가 동점으로 공동우승을 했고, 조재형(서울)이 3위를 차지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전국당구선수권은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의 주최 및 주관으로 1962년 시작되어 1993년까지 총 19회 개최되었다. 사진은 전국당구선수권대회 개회식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1회 회장기쟁탈 전국당구선수권대회의 국제식3쿠션 시상식. 우승에 장성출(가운데).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1회 회장기쟁탈전국당구선수권대회의 국내식3쿠션 입상자. 우승 김종구, 준우승 조재형, 3위 이용희.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1회 회장기쟁탈전국당구선수권대회의 국내식3쿠션 입상자. 우승 김종구, 준우승 조재형, 3위 이용희.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19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및 제2회 회장기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양태주)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회장 양태주)가 주최하고 대한당구선수협회(회장 김문장)가 주관한 제19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및 제2회 회장기전국당구대회가 93년 12월 1~3일까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선수협회 소속 3쿠션 선수 32명과 포켓볼 선수 16명 그리고 대한당구협회 53개 지회에서 지회를 대표해 출전한 267명의 아마추어들이 국제식 3쿠션과 국내식 3쿠션, 4구, 포켓 9볼 종목으로 경기를 벌였다. 3일간의 열전으로 치러진 대회는 이전의 어느 대회 때보다 많은 관중이 관전했으며, 서울방송(SBS)이 중요 대회를 녹화해 방영하는 등 당구 중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각 종목의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국제식 3쿠션 : 예선을 거쳐 선발된 32명의 선수가 국제식 3쿠션 15점 3전 2선승제 토너먼트로 경기를 치렀다. SBS가 3・4위전과 결승전을 녹화 중계한 가운데 우승 배동흥, 준우승 조수형, 3위 김윤석, 4위 이홍기 등이 차지했다. 배동흥은 4년 전 은퇴를 선언한 후 복귀해 감격적인 우승을 누렸다. 

・ 포켓 9볼 : 예선전에서 선발된 16명의 선수가 9선승제 토너먼트로 경기를 진행했으나, 결승전만 방송녹화 관계로 5전 3선승제로 치렀다. 우승 이열, 준우승 김원석, 3위 이장수, 4위 정홍조 등이 차지했다. 

・ 단체전 : 지회 대항전으로 치러진 단체전은 4구 A조와 3쿠션 A・B조의 3명으로 팀을 구성하여 각 종목 1위에게 10점, 2위 5점, 3위 3점을 부여하고, 입상점수를 합산하여 등위를 결정했다. 단체전 우승은 3개 종목에서 모두 1위에 오른 대구지회가 차지했다. 

・ 개인전 4구 A조 : 총 30명이 출전하여 40점 치기로 진행된 경기는 각 지회의 고점자들이 총 출전했다. 우승 최철수(경북지회), 준우승 김영재(대전지회), 3위 이재완(구로지회), 4위 김세웅(충북지회).

・ 개인전 4구 B조 : 4구 지점 300~400점 조로 편성된 이 조에는 총 33명이 출전하여 30점 치기로 1이닝에 15점까지 득점을 인정하는 득점 제한 경기방식이 적용되었다. 우승 정영수(성북지회), 준우승 오윤생(경남지회), 3위 여운성(충북지회), 4위 김종윤(구로지회). 

・ 개인전 4구 C조 : 20점 득점제로 진행된 C조 경기에는 총 34명이 출전했다. 우승 강태희(송파지회), 준우승 송재용(울산지회), 3위 신관수(대전지회), 4위 오태진(서대문지회). 

・ 개인전 3쿠션 A조 : 20점 선승제로 진행된 이 조에는 총 35명이 출전했다. 우승 권오선(경기 중북지회), 준우승 황용석(이리지회), 3위 김상호(성동지회), 4위 이윤철(경남지회). 

・ 개인전 3쿠션 B조 : 15점 치기로 우승자를 가린 B조에는 총 37명이 출전했다. 우승 임승령(강남지회), 준우승 박춘우(강동지회), 3위 정재국(대구지회), 4위 홍인성(인천지회). 

・ 여성부 : 총 12명의 출전자가 15점 치기의 예선 조별 리그를 통해 각 조 1・2위가 크로스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우승 이영순(도봉지회), 준우승 김보경(마포지회), 3위 박종분(인천지회), 4위 조국향(성동지회). 

1995년 2월에 개최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회장 양태주) 제32차 대의원 정기총회에서 '제3회 회장기 전국당구대회 및 제20회 전국당구선수권대회' 개최 비용 4500만원을 포함한 총 1억7556만원의 95년도 예산안을 132명의 참석 대의원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러나 6월에 열린 이사회에서 개최 비용 조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회장기전국당구대회 개최를 취소했다.

이에 대해 전국 지회장 회의에서 대의원총회의 결의를 이사회가 뒤집을 수가 있느냐고 항의했지만, 결국 대회 개최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협회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가 1962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 1993년 제19회 대회까지 계속해 온 장구한 전통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시대의 변천에 의해 여기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 당구계의 중심축이 당구장경영자단체에서 경기인단체로 이동해 가는 증거였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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