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부, 보건사회부 산하 위생협에서 당구장 관리... 당구 법정단체의 첫 출발

(사)대한당구협회, 전국당구대회 개최해 '이리 꼬마' 전광웅, '3쿠션 챔프' 정상철 등 국내 정상급 선수 배출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다카키 쇼지(윤춘식)와 그의 묘기에 매료된 관중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다카키 쇼지(윤춘식)와 그의 묘기에 매료된 관중들. 빌리어즈 자료사진

◼︎ 대한환경위생협회 산하 당구분과위원회 시절에 제1회~제3회 대회 열어

5・16 군사정부가 사회 정화 정책 차원에서 당구업조합을 해체하고 보건사회부 소속의 대한환경위생협회 산하에 당구분과위원회를 설립해 당구장을 관할하게 한 것이 법정단체의 첫 출발이었다. 이것이 1962년 2월 20일이었다.

이해 11월에 당구분과위원회(위원장 이부산)는 제1회 전국당구경기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해 3회 대회까지 열었고, 1965년 말 보사부 지시로 당구분과위원회를 유기분과위원회로 개편했다가 1966년 4월에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보사부에 등록하게 된다. 이후 제4회 대회부터 1993년까지 제19회 대회를 이어가게 된다.

약 30년간의 장구한 역사의 기록을 분산해서 기록하는 것보다는 독자들의 읽는 편의를 위해 한 항목으로 모았다. 그러나 비중이 큰 중요한 대회는 별도의 항목으로 다시 다루었다. 그리고 자료가 없어서 상세히 기록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아쉽게 생각한다.


∙ 제1회 전국당구경기대회(대회장 이부산)

1962년 11월 서울운동장 실내경기장에서 개최했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4구 A조(500점) 1위 김경호, B조(300점) 1위 윤무웅, C조(200점) 1위 이춘호, D조(150점) 1위 이응세.

1회 대회 개최 후 상품 대금과 대회장 사용료가 부족하여 대회장인 이부산 위원장의 상의와 오버코트를 차압 당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 제2회 전국당구경기대회(대회장 박용옥)

1963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서울시 중구 태평로 신문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4구 A조(500점) 1위 이성중, B조(250점) 1위 강완석, C조(100점) 1위 정재병. 3쿠션 우승 이병호(미국에서 귀국), 준우승 박병문. 


• 제3회 전국당구대회 겸 한・일당구대회(대회장 이준구)

1965년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전국에서 20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국내 처음인 국제행사인데다가 게스트로 내한한 ‘세리 다카키’로 불리는 다카키 쇼지(한국명 윤춘식)의 묘기시범이 장안의 당구 팬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었으므로 대회 주최 측에서 일류 개봉관의 입장료를 상회하는 500환의 입장료를 받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3일 동안 장내는 빈자리가 많았다. 

국제대회란 타이틀과 다카키의 인기만 믿고 당구 팬 유치를 위한 대회 선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장내에서는 하루 2회씩 다카키의 신기에 가까운 당구 묘기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계속되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폐회식 날 상품대금(금・은・동)과 대관료가 모자라 이준구 대회장이 큰딸 혼수비를 헐어 메꾸어야 하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뒷이야기가 남아 있다. 4구 종목으로 치러진 제3회 전국당구대회의 입상자는 A조(500점) 1위 박선길, B조(1000점) 1위 박수복이 차지했다. 
 

'이리 꼬마' 전광웅(왼쪽)과 '3쿠션 챔피언' 정상철.  빌리어즈 자료사진
60년대 후반 열린 3쿠션 전국당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리 꼬마' 전광웅(왼쪽)과 '3쿠션 챔피언' 정상철. 빌리어즈 자료사진

◼︎ 1966년 4월에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출범했으나 제4회 대회는 1969년 6월에 개최

환경위생협회 산하의 유기분과위원회가 1966년 4월에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로 보건사회부에 등록된다. 그러나 초대와 제2대 유정선 회장 임기 중과 제3대 유정훈 회장 때에는 전국당구대회를 열지 못하다가 제4대 박순락 회장이 1969년 5월에 취임한 다음 달에 비로소 제4회 전국당구경기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 제4회 전국당구경기대회(대회장 박순락)

1969년 6월 21~22일 서울 광화문의 시민당구장에서 제4회 전국당구경기대회가 3쿠션 종목으로 개최되었다. 30점 경기로 치른 이 대회에서 ‘이리 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전광웅이 우승을 차지했다.
 

• 제5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박순락)

1970년 9월 19~20일 서울 광화문 시민당구장에서 제5회 전국당구대회가 4구 종목 경기로 치러졌는데 500점 지점의 조성철(인천)이 우승했다.


• 제6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이한구)

1971년 11월 13~14일 서울 동심당구장에서 4구 종목으로 개최되었으며 일반부(1000점), 여자부(100점), 단체부로 진행되었다. 우승은 일반부 전광웅, 여자부 최정숙, 단체부 경기도팀이 차지했다. 


• 제7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이한구)
1973년 3월 3일 서울 명동의 성림당구장에서 4구와 3쿠션 종목으로 열렸다. 4구(400~1000점) 종목 우승은 이강수, 3쿠션 A조(30점) 우승은 박용인, 3쿠션 B조(30점) 우승은 정상철이 차지했다. 


• 제8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이한구)

1974년 3월 서울 무교당구장에서 제8회 전국당구대회가 3쿠션(30점) 종목 경기로 개최되었다. 우승은 정상철이 차지했다. 


• 제10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양창종)

1975년 4월 서울시 종로구 성림당구장에서 제10회 전국당구대회가 열렸는데, 종목은 3쿠션(30점) 경기로 정상철이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독주시대를 이어갔다. 


• 제11회 전국당구대회(대회장 양창종)

1976년 9월 19일 서울 허리우드당구장에서 제11회 전국당구대회가 4구 종목으로 개최되었다. 정상철은 3쿠션에서뿐만 아니라 4구 경기에서도 실력을 과시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 다음 편에 계속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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