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해커, "가면은 상대 선수가 아닌 나에게 핸디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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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해커, "가면은 상대 선수가 아닌 나에게 핸디캡"
  • 김민영 기자
  • 승인 2021.09.29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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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샴푸 PBA 챔피언십에서 4강까지 오른 당구 해커. 사진=이용휘 기자
TS샴푸 PBA 챔피언십에서 4강까지 오른 당구 해커. 사진=이용휘 기자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한가위 당구대전'으로 열린 'TS샴푸 PBA 챔피언십'에서는 단연 당구 해커의 활약이 가장 큰 이슈였다. PBA 역대 투어 시청률도 해커가 갈아엎었다. 해커의 경기는 무려 2배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며 초유의 관심을 받았다.

당구 해커는 프로당구 투어에 처음 초청된 '블루원리조트 PBA 챔피언십' 128강전에서 '베트남 강호' 마민깜(신한금융투자)에게 패하며 첫 라운드 패배의 치욕을 당했으나 두 번째 출전인 이번 'TS샴푸 PBA 챔피언십'에서는 4강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128강 이상철과의 대결에서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1라운드 통과의 기쁨을 맛본 해커는 64강에서는 전성일(3-1)을 꺾고 32강에서는 '당구황제'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을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면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는 이 대회 첫 라운드에서 TS샴푸 퍼펙트 큐를 달성한 김종원(TS샴푸)을 상대로 3-1로 이기고 8강에 올라 김남수(TS샴푸) 마저 3-0으로 누르고 준결승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 대회 패권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로인 결승전 진출을 놓고 '스페인의 신성'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와 벌인 대결에서 해커는 0-4로 패하며 꿈같은 한가위 당구대전을 마쳤다.

당구 해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어나니머스 가이 포크스 가면과 모자를 쓰고 대회에 출전한 해커는 경기 전부터 숱한 이슈를 떠안고 부담스러운 출발을 해야 했으나 보란 듯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해 보였다.

물론 그가 위로 올라갈수록 논란은 더 커졌다. 8강전을 마친 김남수가 "가면 때문에 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여전히 가면을 써서 그가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고민할 것 없이 해커에게 직접 물어봤다.
 

준결승전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와 뱅킹하는 해커.  사진=이용휘 기자
준결승전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와 뱅킹하는 해커. 사진=이용휘 기자

4강전을 끝으로 당구 해커의 대회가 막을 내렸다. 기분이 어떤가?

꿈같은 한가위가 지나갔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한가위가 아니었나 싶다. 후련한 마음도 있고, 어쨌든 재미있는 경기를 펼쳤다.

 

해커가 이길수록 관심도 커졌지만 그만큼 논란도 커졌다. 대회 내내 신경이 쓰였을 것 같은데?

이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이상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못 쳐도 비난을 받고, 잘 쳐도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서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출전을 준비하면서 준결승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생각지도 못했다. 이번 대회의 첫 번째 목표는 1회전 통과였다. 지난번 1차 투어 때 마민깜 선수에게 힘도 써보지 못하고 져서 일단 한 번만 이겨보자는 생각으로 출전했다. 1회전 통과 후에는 32강서 쿠드롱 선수와 만나는 거로 2차 목표가 생겼다. 쿠드롱을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64강 한 경기만 더 이겨서 32강에서는 쿠드롱과 경기를 해보자는 거였다. 쿠드롱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도 딱 3일 입을 수 있게 3벌만 챙겨 왔다.

 

본인의 경기력에 만족하나? 이번 대회에서 후회 없이 다 보여줬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잘 쳐서 이긴 게 아닌 것 같다. 운이 좋았다. 8강전에서 김남수 선수 같은 경우는 정말 내가 봐도 이상하리만큼 뒤 공이 안 섰다. 이러기도 쉽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김남수 선수가 운이 너무 없었다.

 

프레데릭 쿠드롱과의 32강전은?

쿠드롱 선수가 무명의 선수에게 일격을 당한 것뿐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명의 선수가 훅 치고 들어와서 난타를 벌이니 정신없이 당한 거다. 만약 내가 경기 운영이니 뭐니 고민하면서 쳤다면 오히려 쿠드롱은 땡큐하고 자기 경기를 했을 거다. 어쨌든 나를 자기의 적수로 보지 않고 있을 테니 초반에 몰아쳐야 한다는 전략을 갖고 거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운 좋게 먹혀들어 갔다.

 

이상하게 해커와 대결을 한 상대 선수들의 경기가 유독 안 풀리는 것 같았다.

나도 의아하다. 이건 마치 하늘에서 나를 계속 올라가라고 밀어주는 기분이었다.

 

혹시 해커의 마스크 때문에 상대 선수들이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 마스크가 위압감을 준다, 내 마스크 때문에 상대방이 위축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이미 마스크 안에 내가 누군지 알고 있고, 같이 게임을 했던 분들도 많다.

지난 1차 투어 때 내가 8:0으로 마민깜을 이기고 있었는데도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주니 마민깜이 여지없이 살아났다. 마민깜 뿐 아니라 어떤 선수든 마찬가지다. 공이 주는 위압감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나는 마스크 때문에 내가 더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모자 때문에 땀도 너무 많이 나고 마스크도 너무 불편하다.
 

해커는 32강에서 '당구황제' 프레데릭 쿠드롱을 꺾고 준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해커는 32강에서 '당구황제' 프레데릭 쿠드롱을 꺾고 준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해커가 잘 할수록 일각에서는 '프로 별거 아니네'라는 반응까지 생기면서 프로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참 난감한 게, 1차 투어 때 마민깜에게 1라운드에서 졌을 때는 실력도 안 되면서 프로 나와서 프로의 위상을 떨어뜨렸다고 욕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4강까지 가니까 또 반대로 욕을 먹는다. 2016년에도 미스터피자배 오픈 대회에서 선수들이랑 대결해서 우승한 적이 있다. 그때도 유명한 선수들이 다 출전했던 대회였다.

그때 우승 트로피를 들고나오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다는 걸 느꼈다. 이런 반응일 거란 걸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수 없지 않나.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지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당구 개인 방송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17년 전에 당구선수를 꿈꿨다. 당구선수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지금과 달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길이라 선뜻 올인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당구를 알려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개인 방송이다. 당구 방송을 하면서 당구선수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방송이 나한테 더 잘 맞는 것 같아서 당구선수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있었다. 이제는 당구 방송이 내 인생이 되어 버렸다.

 

가면은 어쩌다 쓰게 됐나?

당구 방송은 다른 게임 방송과 다르게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콘텐츠다. 방송에 출연해서 같이 경기를 하는 출연진 중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 쓰라고 만든 가면이었다. 베트맨, 슈퍼맨 등 다양한 스타일의 가면을 만들었는데, 정작 불편해서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게 남아 있던 가면 중 우연히 이 가면을 썼는데, 잘 어울린다고 해서 쓰기 시작했다.

이 가면이 어나니머스 가이 포크스 가면이라고 해커들이 많이 쓰는 가면이다. 그래서 이름도 당구 해커라고 붙이고, 당구를 해킹한다는 의미로 가면을 쓰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면서 상금과 랭킹 포인트를 얻게 되었다. 다음 시즌 시드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식으로 프로 당구선수로 활동할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현재로서는 대회보다 방송에 전념하고 싶다.

 

만약에 프로당구 투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다면 당구 해커로 나오고 싶은가? 본인 원래의 이름으로 나오고 싶은가?

해커는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당구해커가 더 유명하기 때문에 당구해커로 활동하는 게 좋긴 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본명으로 활동할 것 같다. 그리고 가면 쓰고 있으면 너무 불편해서 가면 벗었을 때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 

 

다비드 마르티네스와의 마지막 준결승전 경기는 어땠나?

많이 배웠다. 시합하는 내내 '저렇게 쳐야 하나', '저런 방법, 저런 힘 배합으로 당구를 치면 빠질 데가 없겠네'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이름대로 마르티네스의 당구도 해킹을 좀 했다.

 

다음 투어에 또 초청을 받는다면 우승도 노릴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물론 운이 좋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20년 넘게 당구를 치면서 느낀 건 다른 걸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당구만 생각하고 당구만 연습해야 그 자리에 갈 수 있다. 그럴 자신이 없어서 선수의 꿈도 접었다. 하고 싶은 일 다하면서 당구까지 잘 칠 수는 없다.

 

이번 투어를 총평해보자면?

투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4강까지 사실 운이 많이 따라줬다. 상대 선수들의 애버리지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적게 나왔다. 나 역시도 애버리지가 높지 않은데 4강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운이 많이 따랐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 동안 뒤돌려기치를 잘 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나는 옆돌려치기를 훨씬 더 잘 치는 사람이다. 개인 방송에서는 '옆돌의 신'이라고 부를 정도인데, 대회장에서는 옆돌리기가 어렵고 뒤돌리기가 쉬웠다. 뒤돌리기는 각도만 잘 맞추면 팔이 떨리는 상태에서도 맞출 수 있는 반면, 옆돌리기는 간결해야 한다. 그 간결함을 발휘하지 못한 거다.

내가 무엇을 더 연습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애버리지를 좀 더 높이고, 기본구에서 안정적인 득점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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