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텍코리아 정정우 대표. 사진=이용휘 기자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한국 당구대 제작은 빌텍코리아(대표 정정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5년 준비 끝에 내놓은 빌텍코리아의 바바체는 한국 당구대의 매뉴얼이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밑볼트'다.

비바체가 출시되기 이전에는 국내에서 출시되는 국산 당구대는 조립이 편한 '옆볼트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비바체가 밑볼트 방식으로 출시된 이후 대부분의 국내 당구대들도 밑볼트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게 더 좋으니까.

빌텍코리아에서 최근 신제품이 나왔다. 뉴비바체 이후 무려 7년 만의 신제품 출시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로 볼 때 느려도 너무 느린 변화지만, 그동안 빌텍은 비바체를 대신할 신제품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비바체나 뉴비바체에 대한 자신감이 강했다.

그리고 이제 비바체와 함께 빌텍코리아를 대표할 또다른 감각적인 당구대 시그니처가 첫선을 보였다.

빌텍코리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정정우 대표에게 들어보았다. 
 

- 빌텍코리아에서 오랜만에 신제품이 나왔다. 얼마 만에 나온 신제품인가.

2012년에 뉴비바체가 나온 이후 7년 만에 신제품이 나온 셈이다. 비바체가 전통적인 당구대라면 이번에 새로 나온 시그니처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강한 탄성과 반발력으로 시원하게 잘 구르는 당구대다.
 

- 어떤 점이 이전 당구대와 다른가.

전부 다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다. 재료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돌이다. 시그니처는 이탈리아 석판을 사용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당구대 중 이탈리아 석판을 쓰는 제품은 시그니처가 유일하다.

외국 당구대도버호벤과 쉐빌로뜨, 그리고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당구대 정도만 이탈리아 석판을 쓰고 있다.

 
- 기존에 쓰고 있던 석판과 이탈리아 석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많은 회사들이 브라질산 슬레이트를 쓰고 있다. 한국 석판회사에서는 화강암을 취급하는데, 개인적으로 화강암을 선호하지 않아 그동안 브라질 석판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질적으로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브라질 슬레이트도 구르는 질감이 좋긴 하지만, 수평유지도나 평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점도가 낮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수평이 맞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운데 부분이 처진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탈리아 석판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슬레이트는 수평이 좋고 구르는 질감도 탁월하다. 이탈리아나 중국의 슬레이트는 퇴적암이라 결이 있다.

이런 결 때문에 인장력이 생겨서 오래도록 수평유지를 할 수 있는 반면, 브라질 돌은 이런 결이 없다. 그래서 인장력이 약하다.

또한, 퇴적암인 슬레이트는 입자가 고와서 공이 구를 때 소리가 안 나고 소리를 흡수한다. 국내에서 석판을 연마하는 기계를 가진 회사는 빌텍밖에 없다. 당구대 기사들도 돌에 관한 한 빌텍의 당구대가 수평이 제일 좋다고 평가한다.
 

- 또 다른 차이점은 무엇인가.

당구대에 사용되는 나무 양을 줄이고 알루미늄의 양을 늘렸다. 초창기에 중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 이후 꾸준히 연구를 해왔다.

당구대 상판의 중요한 요소인 탄성은 고무의 탄성과 고무를 잡고 있는 뒤틀의 탄성이 합쳐져서 당구대의 탄성이 된다.

목재의 경우 비중이 1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탄성이 그만큼 약하다. 하지만 알루미늄은 비중이 높기 때문에 탄성이 훨씬 좋다.

야구에서 타구력이 좋은 프로 선수들은 나무 배트를 쓰지만, 학생 선수들은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것도 탄성 때문이다. 이번에 출시된 시그니처에도 알루미늄을 적용해 중량과 탄성을 높였다.

상판뿐 아니라 발통 등 여러 부분에 나무 대신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알루미늄은 소리를 흡음하기 때문에 당구를 칠 때도 소리가 적게 난다.
 

- 최근 한 인터넷 당구매체에서 알루미늄 상판을 사용한 외국 당구대에서 정전기가 발생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시그니처에도 정전기 발생 문제가 있나.

15년 전부터 알루미늄 당구대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시그니처는 당구대와 접촉 시 발생할 수 있는 정전기 요소를 생산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했다. 정전기 현상이 거의 없다고 본다.
 

- 뉴비바체 이후 상당히 오랜만에 나온 신제품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나.

기존 제품을 만드느라 신제품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2007년도에 출시된 비바체가 아직까지도 많이 팔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가성비가 좋은 당구대라고 하는데, 가성비가 좋은 게 아니라 제품 자체가 좋은 거라고 자부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원가를 줄이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경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이런 노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고객들이 비바체와 뉴비바체를 찾고 있어서 수요를 맞추다 보니 신제품을 개발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 비바체 출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바바체는 한국 당구대 중 처음으로 밑볼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국산 당구대는 대부분 옆볼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기사들이 조립하고 일하기는 옆볼트 방식이 편하다. 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밑볼트 방식이 확실히 좋다.

결국 비바체 이후 국산 당구대들도 전부 밑볼트로 바뀌었다.

빌텍코리아에서 당구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당구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리가 된 셈이다. 내부 구조와 수평유지까지 타사들도 우리의 방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차기 빌텍코리아를 이끌고 나갈 정고은 실장은 정정우 대표의 딸이자 든든한 동료이다. 사진=이용휘 기자

 

- 원래는 선수 출신이었다. 어떻게 당구대 제작자가 되었나.

한국에서 제일 처음 열렸던 대대 시합부터 시작했던 선수였다. 당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우리 세대에는 톱 랭커도 밥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당구만 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로를 바꿨다.
 

- 여러 가지 많은 분야가 있는데 왜 당구대였나.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92년도쯤 당구장을 운영하는데 국산 대대를 들여놨다. 그런데 버호벤 같은 외제 당구대에서 치다가 국산 당구대에서 치면 버호벤과 같은 맛이 안 났다.

그 당시에도 당ㄱ대 수리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서 당구대 각도도 바꿔보고 아무리 고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당구를 더 잘 치고 싶어서 버호벤 한 대를 들여놨다.

그동안은 설치된 당구대만 봤지 처음으로 조립하는 모습을 봤다. 그 당구대를 보는 순간 당구대는 이렇게 만들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번 제대로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당구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연구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당구대 설치기사로 일하면서 모든 외제 당구대를 내 손으로 직접 설치하고 분해하면서 빌텍코리아를 준비했다.
 

- 빌텍코리아가 실제로 설립된 건 언제인가.

2003년도부터다. 처음에는 밑볼트 방식의 중대를 만들었다.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와 그동안 연구한 외제 당구대의 장점만 골라서 만든 게 비바체다. 비바체를 통해 당구대는 최소한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룰을 제시했다.
 

- 한때 열선 화재 때문에 대대적인 리콜을 벌이는 등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제품 하자가 아니라 과열된 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원래 당구대에 들어가는 열선도 직접 만들었는데 바빠지다 보니 열선은 전문업체에서 납품을 받기 시작했다.

전문 업체라 믿었는데,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됐다. 해당 열선 업체는 화재의 원인을 사용자의 과실로 돌렸다.

하지만 어쨌든 빌텍코리아의 당구대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피해를 감수하고 리콜을 시행했다. 현재까지 85% 정도 리콜을 했고, 지금도 계속 리콜을 하고 있다.
 

- 뉴스를 통해 가끔 당구장 화재 소식을 듣게 된다.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당구대 열선도 전기장판과 똑같다. 계속 켜두면 화재가 날 확률이 높다. 안 쓸 때는 꼭 꺼놔야 한다.

아침에 문 열고 청소하면서 켜두면 2시간 정도면 당구대가 데워지기 때문에 영업을 안 하는 동안 열선을 꺼놔도 다음날 영업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당구대 수리부터 시작해 빌텍코리아에서 당구대를 만들어 온 세월이 어느덧 30년이다. 당구대 전문가로서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공은 연마제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으로 닦아야 한다. 연마제가 들어간 제품은 공에 미세한 스크래치를 낸다. 그러면 그 안에 먼지들이 딸려 들어가서 회전력을 방해한다.

공의 회전력이 떨어지는 것이 비단 라사지나 당구대의 문제가 아니라 공 때문일 수 있다.

당구대는 청소를 잘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사지가 모직이기 때문에 물이 닿으면 딱딱해진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물론 물에 적시는 것은 안 되지만, 물걸레 청소는 꼭 필요하다.

당구대 라사지에 붙은 먼지가 정전기 때문에 진공청소기 만으로는 100% 빠지질 않는다. 한 번씩 물걸레로 닦아내 줘야 한다. 이 정도만 지켜도 훨씬 좋은 조건에서 공을 칠 수 있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실내온도다. 당구대는 더울수록 좋다.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당구대에 직접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물 입구에 있는 당구대는 기온 변화를 심하게 겪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 문에서 먼 당구대가 컨디션이 좋다.

되도록 실내 온도는 27~28도로 유지하는 것이 좋고, 건조해지면 라사지에 정전기가 생기기 때문에 습도도 일정 수준을 유지해 줘야 한다.

알루미늄 당구대가 아니더라도 건조한 겨울철에는 라사지에서도 정전기가 발생할 수 있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

이번에 출시한 시그니처에 내 모든 노하우를 담았다.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당구대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꼭 만들고 싶었던 당구대를 실현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좋은 당구대를 만드는 것, 그게 마지막까지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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