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선수들과 연맹은 '의무와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난 21일 당구의 염원 프로당구가 출범했다. 공교롭게도 당구는 같은 날 파리 올림픽 정식종목 도전에 실패했다. 올림픽 도전에 실패했지만, 캐롬 종목의 프로가 한국에서 출범한다는 사실은 세계 당구계가 크게 기뻐해야할 일이다. 당구의 세부종목 중 이미 프로 스포츠가 된 스누커와 함께 이번에 캐롬 종목이 한국에서 출범하면서 당구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는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기대했던 프로당구의 윤곽이 드러났다.

PBA 투어(Pro Billiards Association Tour)라는 명칭으로 출범한 이번 프로당구는 스포츠마케팅 전문회사 ’브라보앤뉴’를 중심으로 프로당구위원회가 구성된 지 2년 만에 마침내 첫걸음을 뗐다.

그동안 아마추어보다 프로 스포츠에 대한 열망이 컸던 당구계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파리 올림픽 정식종목 도전에 실패한 과정을 보면, 당구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우선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당구도 골프처럼 ‘프로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PBA의 출범은 시기적으로도 희망적이고 적절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이 필요한 당구계의 가장 큰 고민이 때마침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PBA의 출범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당구계 모두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출발 단계에서는 3쿠션 한 종목에 국한되었지만, 차츰 포켓볼로 확장되면 이미 프로가 구성된 스누커와 함께 당구의 3대 종목이 모두 프로 스포츠로 완성되게 된다.

남은 아마추어 두 종목 캐롬과 포켓볼 중 세계적인 저변은 포켓볼이 더 크지만, 오히려 캐롬보다 포켓볼이 프로화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캐롬은 세계 최대 시장 한국이 있기 때문에 PBA와 같은 프로화 구상이 가능한 데 비해 포켓볼은 중심축 역할을 할 스폰서를 찾기가 어렵다.

이미 여러 차례 미국 본토에서 프로화가 시도되었지만 스폰서를 유지하거나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고, 유럽에서는 스포츠로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프로화는 꿈도 꾸기 어렵다.

그러나 캐롬은 비록 종주 대륙 유럽 시장이 크지 않더라도 한국의 초대형 인프라를 등에 업고 얼마든지 프로화가 가능하다.

한국의 인프라는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세계 캐롬 당구를 꾸준하게 성장시켜 왔다.

UMB 세계캐롬연맹의 중계권과 마케팅사업권을 비롯해 지난해 LG 유플러스컵과 구리 당구마스터스, 서울 당구월드컵 등 연간 수십억원에 달하는 한국 당구의 자산이 세계 캐롬 당구를 성장시키는 데 투입되고 있다.

한국에서 캐롬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크게 성장해 아마추어인 현 단계에서도 연간 수억원의 중계권료와 10억원 가량의 스폰서십을 유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캐롬 3쿠션의 인프라를 이용해 한국 당구의 모든 후원과 지원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회장 남삼현)은 지난해 후원금과 체육회 지원금까지 합쳐 44억 5000만원을 결산했다.

프로화가 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 분명하고, 당구산업도 동반 성장할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해 PBA가 지향하는 프로 투어 종목인 골프는 4100억원, 테니스는 1618억원, 당구의 스누커는 205억원 규모의 상금을 주었다. 그렇다면 캐롬은 과연 얼마나 많은 상금을 선수들에게 줄 수 있을까. 그런데 당구의 프로화 이후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인 선수들이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년 동안 다섯 차례 정도 반복되었다. 당연히 선수들은 권리를 찾기 위해 연맹체에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선수들은 침묵했다. 결국 이번 PBA의 성패도 선수들의 목소리에 달려 있다. 직접 수혜자인 선수들이 눈치만 보고 있으면 누가 대신 나서서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 프로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그런데 PBA는 출범식을 치른 현시점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몇몇 언론이 지적하고 관계자들이 우려스러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 문제는 바로 PBA에서 뛰게 될 프로선수 수급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PBA는 물론, 캐롬과 세계 당구의 운명을 결정할 매우 중대한 문제다.

과거 실제 당구계에서 있었던 일을 돌아보면, 아무리 좋은 스폰서와 오거나이저들이 노력해서 당구대회를 만들려고 해도 당구연맹과 선수 수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류 대회가 되거나 아예 대회를 개최하지 못한다.

이번 PBA 출범을 위해서도 당구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2년 동안 고군분투했지만, 출범까지 선수 수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PBA 측은 첫 시즌 8개 투어 중 6개 투어의 메인 스폰서 영입에 성공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이 선수 문제만 해결되면 꿈의 무대를 더 화려하게 완성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브라보앤뉴의 모회사인 영화사 뉴(NEW)는 PBA가 매년 개최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약속까지 내놓으며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PBA 첫 시즌을 세계 정상급의 훌륭한 프로선수들이 뛸 수만 있다면, 향후 2년, 3년 어려움 없이 프로당구는 정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선수들을 내세워 매년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당구 단체들이 자신들의 중계권료와 후원금이 조금이라도 깎일 것을 우려해 필사적으로 PBA를 막고 있다.

과거 프로화 추진 과정에서 매번 발목을 잡았던 선수 수급 문제가 또 벽이 되어 앞길을 막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집고 넘어야 할 점은 당구대회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돈을 내는 스폰서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선수들이 잘하고 연맹 임원들이 열심히 해도 스폰서를 잡지 못하면 당구대회는 열리지 못한다.

UMB나 당구연맹과 같은 스포츠 단체는 이런 스폰서가 있을 때 당구대회를 원활하게 개최할 수 있도록 평소 선수들을 관리하고 스폰서와 협력하는 것에 존재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대형 스폰서가 대두될 경우 협상을 통해 일부 수익을 보장받거나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대회를 성사시키는 것이 '연맹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직접 스폰서를 영입해 프로를 만들고 당구대회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체들은 그러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연간 수십억원을 내겠다는 스폰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선수를 볼모로 대항까지 하는 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물론 세계 당구의 발목을 잡는 짓이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과 중반, 2010년, 그리고 지난해까지 모두 다섯 차례 한국에서 프로당구가 추진되었지만, 선수를 볼모로 대항하는 당구연맹이 길을 막아 모두 실패했다.

이번 브라보앤뉴와 프로당구위원회의 PBA는 사상 최대의 프로당구화 시도다. 이 기회를 놓치면 프로당구는 다시 10년, 20년, 얼마를 기다리게 될 것인지 기약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UMB와 대한당구연맹은 같은 문제로 서로 치고받으며 물어뜯었다.

선수를 볼모로 한국 당구의 인프라를 서로 가져가려는 그 싸움 통에 당구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싸움은 불행하게도 파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심사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당구의 최대 염원인 올림픽과 프로, 두 가지 모두를 이렇게 허망하게 날릴 수는 없다.

당구선수들이 뛸 수 있는 꿈의 무대를 만들어야 할 의무는 브라보앤뉴가 아닌 이들 단체에 있다.

당구연맹은 의무를 권한으로 착각해 지금까지 당구대회 개최를 좌지우지해 왔다.

지난해 구리, 서울, 코줌 등 한국에서 세계당구대회를 개최했던 오거나이저들은 모두 대회 진행 과정에서 당구연맹의 입맛에 맞추느라 어려움을 토로했다.

프로당구와 세계당구대회 개최에 협력해야 하는 것은 당구연맹의 권한이 아닌 의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당구 단체들은 모처럼 시작하는 프로당구의 출범까지 행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연맹 구성원들이 맡은 자리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연의 의무만 다하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선수 수급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어 PBA 프로당구가 오는 6월까지 더 많은 스폰서를 확보하고 더 큰 관심과 환영 속에 화려하게 개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