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김민영 기자] 발단은 ‘6만 원’이었다.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공인 심판이자 아시아 최초의 UMB 국제심판인 류지원 심판이 당구연맹 심판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이유 말이다.  

<빌리어즈>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류지원 심판은 지난해 11월 본지에 ‘너무 슬픈 직업, 심판’이란 글을 기고했다.

그 글을 통해 그는 ‘봉사’라는 말로 다독이며 시작된 심판이란 직업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직업인지 설명하며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부탁했다. 문제는 글 말미에 언급된 ‘일당 6만 원’에서 비롯되었다.  

지난해 체육회에서 정한 전국체육대회 최하 심판 수당이 6만 원이었다. 물론 연차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경력 최하위의 심판이 6만 원의 수당을 받고, 당구연맹에서는 이 외에 숙박비 등 추가 수당을 더 지급했다.  

류지원 심판은 이를 은유적 표현으로 ‘현재 심판의 권위는 일당 6만 원’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당구연맹 심판위원회는 이 글을 빌미로 ‘고작 일당 6만 원을 받으면 비난과 징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억측이 될 수 있다.

일당이 싸서 용서가 되는 심판은 필요 없는 심판이다. 연맹집행부와 심판위원회에 대한 간접적인 비난으로 인해 오해를 유발시켰다.

더불어 당구연맹 전체에 대중의 부정적 시각을 증가시켰다’는 이유로 전국대회 15회 참가 제한조치를 내렸다.

단, 정정 기고와 사과의 글을 올리면 제재안을 완화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최근 각종 매스컴에서 연일 거론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류지원 심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최근 류지원 심판 이름이 당구계뿐 아니라 외부 언론의 뉴스에서 거론되고 있다. 무슨 일인가.

<빌리어즈> 잡지에 심판 수당이 6만 원이라고 공개한 것과 개인 SNS에 심판 모집 글을 올리면서 수당은 박봉이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일에 동참할 사람을 구한다고 글을 올렸는데, 그게 이유가 돼서 징계를 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전국대회 15회 참가 제한 징계는 거의 3년 동안 전국대회에서 심판으로 설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과연 그 일이 3년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을 정도로 큰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적인 언론 활동과 SNS 활동을 이유로 제재를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범하는 일이다.  

그동안 치마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심만 봐야 했던 것, 심지어 지난 서울 월드컵 때 UMB 심판 라이센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선 한 경기를 제외하고 부심만 봐야 했다. 준결승과 결승 경기에서도 배제됐다.

위의 징계 문제가 발단이 되어 그동안 심판들 사이에서 문제로 제기된 여러가지 일에 대한 진정과 고소가 제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성 심판들의 특정 드레스코드, 치마 착용 강요 문제가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 현재 심판위원회에서의 제재는 철회되고 오히려 심판위원장이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심판위원회는 징계를 내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내렸고, 이에 이의제기를 하자 당구연맹에서 심판위원장의 월권으로 판단하고 철회하도록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징계 철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계속해서 업무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이익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월권행위를 한 심판위원장에게 내린 ‘견책’이란 징계는 납득할 수 없다. (*견책: 공무원 등의 잘 못을 꾸짖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는 가장 가벼운 징계 처분) 
 


- 어떤 불이익을 당했나.

나는 지난 4년 동안 고정으로 ‘SBS 키움증권배 고교동창 당구최강전’ 심판으로 나갔다.

올해도 SBS 측에서 나를 심판으로 지목해서 공문을 보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배제하고 다른 심판을 보내겠다고 답변을 보냈다.  

심판 규정에 따르면 지명된 심판이 있는 경우 우선순위가 지명된 심판이다. 그다음이 해당 지역 거주자이고, 그다음이 심판위원장의 추천자이다.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를 배제하고 다른 심판을 추천했다. 엄연한 업무 배제다.

피해자에 대한 보복이 계속 자행되고 있는데 심판위원장에 대한 경징계 처분은 이해할 수 없다.  


- 지금 매스컴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여성 심판들에게 치마를 입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내가 공론화시키고 실명을 공개해 인터뷰를 했지만 이 건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체육회에 진정을 넣은 상황이었다.

지난 2017년 1월에 새로운 심판위원장이 임명되고 3월부터 여성 심판들은 치마를 입으라고 지시했다.

당시 아시아3쿠션챔피언십대회 중이었는데 개회식에 앞서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 당구연맹의 최고위 관계자가 여자 심판을 일으켜 세워서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다. 그걸 직접 본 사람들이 있다.  

그때부터 치마를 강력하게 거부했던 한 심판은 6개월 후 다른 이유를 핑계로 큰 망신을 당하고 도저히 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 당구월드컵 당시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치마를 준비하라고 했고, 선택이냐, 강제냐 물었더니 질문이 잘못됐다며 핀잔을 줬다.

‘뭐 문제 있나? 치마 입기 싫으면 본인만 안 입으면 된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고, 이게 심판위원장과 나의 마지막 트러블이었기 때문에 이후 나에 대한 제재의 이유는 그저 핑계라고 생각한다.

진짜 원인은 치마 착용을 거부한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심판위원회에서 여자 심판 드레스코드로 치마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엄밀히 말하면, 당시 심판위원장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단지 보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타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문제는 치마를 입고 안 입고가 아니라 치마를 안 입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에 있다.

치마를 입고 심판을 볼 경우 심판 수행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심판에게 적절한 복장이 아니다.

치마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다 공이 맞았는지 재빨리 확인하지 못해 오심이 나오기 부지기수다.  

예뻐 보이고 싶어서 치마를 입었는데 뛰어가지 못해서 2쿠션인지, 3쿠션인지 못 보는 것은 심판 자격이 없는 거다. 치마를 입고 심판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 안 입는 것이 맞다.

간혹 당구 방송으로 여자 심판의 복장을 보고 외국 심판들이 왜 저런 복장인가 묻기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고 이해하지 못하더라.  


- 여자 테니스 선수는 치마를 입고 시합도 하는데, 심판이 치마 좀 입었다고 뭐 이렇게 요란을 떠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목별로 특성이 있다. 테니스 선수는 그 유니폼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복장이다.

여자 당구선수도 치마를 입어도 된다. 단, 경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다들 바지를 입는다. 여자 심판도 마찬가지다. 심판 보기에 불편한 복장이라면 강요하면 안 된다.  


- 지금 이 시점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부당한 징계에 대한 공개 사과와 업무 복귀였다. 하지만 지난 1월까지 계속해서 업무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했다.

‘전국대회 15회 참가 제한. 단, 사과하면 제재 완화해줌’이라는 문서는 압박을 넘어 협박이다. 문서를 받고 앞으로 심판을 영영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처음에는 심판위원회의 징계 결정이 부당하다는 것도 몰랐다. 이의제기를 하고 나서야 권한도 없는 위원회가 자의적으로 제재를 결정한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결국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그 협박 내용을 이행했다.

법의 판결이 어떻게 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국가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넣은 진정 내용을 사법기관으로 이관해 조사한다는 것은 명백히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이란 의미다.
 

류 심판은 폭이 좁은 치마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다 공이 맞았는지 재빨리 확인하지 못해 오심이 나오기라도 할까 항상 불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 이전에도 심판위원회에서 자체 징계를 내린 적이 있었다. 심지어 본인도 그 심판위원 중 한 명이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이슈를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그때는 나도 몰랐다. 심판위원장이 심판위원들에게 징계를 하자고 하니 당연히 되는 것으로 알았다.

만약 그 당시 징계를 받았던 심판이 당구연맹에 이의제기를 했다면 그때 알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기 때문에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거다.

만약 또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비슷한 직권남용, 월권 문제가 또 벌어질 것이고, 그때는 내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 부당한 징계와 치마 착용 강요에 대한 이의제기가 체육계 미투 운동과 맞물려 큰 이슈가 된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지금은 이게 류지원의 일이지만, 나중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벌어지는 부당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이 당구가 더 큰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선순환의 첫 시도라고 생각한다.

듣기 좋은 소리도 삼 세 번이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들은 지겨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더 안 좋은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거다.

심판의 오심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심판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 아니다.

결국 심판의 소양 부족은 선수의 경기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선수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심판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면 그 이익은 선수들이 볼 것이다. 선수들도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 본인에게 당구심판이란 무엇인가.

나의 일부다. 이 일이 일어나고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혹시 일이 잘못돼서 다시는 심판을 못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당장은 불이익을 받고, 한동안 심판으로 기용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류지원이 당구 심판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많은 비상식적인 일을 겪었다.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책보다 응원과 격려의 말 부탁한다.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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